[뉴스토마토 최승근기자] "올 것이 왔다."
검찰 칼끝 앞에 선 포스코의 내부 기류다. 포스코건설 비자금 조성 혐의에 대한 검찰 수사가 그룹 전체로 확대되면서 포스코의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포스코 내부에서는 정권 교체 때마다 반복되는 CEO 잔혹사가 재연될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이다.
특히 검찰 주도의 외풍이어서 수사 내용을 미리 알기 힘들뿐더러 현재 내부에서도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전전긍긍하는 모양새다. 오히려 검찰 수사 진척사항을 언론보도 등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다만 "올 것이 왔다"는 토로와 함께 한숨만이 난무하고 있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이어 재무구조 개선에 전력을 다하겠다는 그룹의 방침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앞서 검찰은 지난 13일 포스코건설 인천 송도사옥과 일부 임직원 자택에 대해 전격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이완구 총리가 대국민 담화에서 '부정부패와의 전쟁'을 선언한 지 하루 만이다. 특히 이날은 포스코 주주총회가 있었던 날로, 당혹감도 컸다. 검찰은 압수수색 직후 당시 비자금 조성에 관여한 것으로 의심되는 포스코 전·현직 임직원 10여명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내리는 등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은 포스코건설이 베트남 호치민 지역 건설공사와 관련해 하도급 업체에 실제보다 많은 금액을 지불하고 차액을 돌려받는 수법으로 100억원대 규모의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사건의 전말은 내부 관계자의 제보로 드러났으며, 포스코건설은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혐의를 입증할 물증도 상당 부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특히 그룹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비자금을 조성했거나 정·관계에 전달됐을 가능성도 열어놓고 있다. 자금의 흐름까지 보겠다는 것으로, 수사가 어디까지 확대될 지 가늠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포스코건설 임원들이 비자금을 조성했던 시기가 정준양 전 회장의 임기 내였다는 점에서, 자원외교 수사와 함께 검찰이 이명박 정부를 정면 겨냥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 전 회장은 MB 정권 최고 실세로 불렸던 이른바 영포라인의 힘을 빌려 포스코 수장에 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이 포스코 회장 선임 과정에서 면접을 보는 등 실력을 행사했다는 게 정설이다. 이 과정에서 윤석만 전 사장이 고배를 마셨고, 그의 입을 통해서도 상당 부분 증언이 쏟아진 바 있다. 박영준 전 차관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의 최측근이다.
때문에 재계 안팎에서는 영포라인의 전폭적 지원으로 윤석만 전 사장을 밀어내고 포스코 수장에 오른 정준양 전 회장이 그에 대한 보은 차원에서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면접 당시 이 같은 약속이 오갔다는 설도 여의도에 오랫동안 퍼져 있다. 통상 그룹의 건설 부문이 총수나 CEO의 비자금 창구로 활용돼 온 점도 이 같은 추측을 뒷받침한다.
이와 함께 검찰 수사가 정 전 회장 재임 당시 진행된 무리한 인수합병 등에 대한 수사로까지 확대되면서, 겨냥한 몸통이 누구냐는 얘기가 검찰 안팎에서 이어지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성진지오텍 인수 건. 지난 2010년 포스코플랜텍은 키코 사태로 부도 직전이었던 성진지오텍을 1600억원에 인수했다. 당시 성진지오텍의 부채 비율은 1600%에 달해 포스코의 인수를 두고 정권 실세가 관여했다는 의혹이 일었다.
이밖에도 정 전 회장은 재임 당시 사업 다각화를 이유로 문어발식 확장을 통해 포스코의 몸집을 크게 불렸다. 그가 취임할 당시 35개에 불과했던 포스코 계열사는 2012년 3월 기준 70개로 급격히 늘었다. 2009년 이후 3년간 외형 확장에만 무려 5조원 가량을 쏟아부었다. 재무구조는 극도로 악화됐고, 주가는 연일 바닥을 쳤다.
전임 회장에 대한 비리 문제로 검찰 수사가 정조준되면서 권오준 회장의 사업 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권 회장은 올해 회장 취임 2년차를 맞아 본격적인 재무구조 개선을 선언한 상태. 특히 이번 사건의 시발점이 된 포스코건설의 경우 최근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로부터 1조원의 투자를 받기로 예정돼 있다. 대우인터내셔널과 사우디아라비아 자동차 사업 문제도 연결돼 있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일련의 계획들이 무산되거나 지연될 경우 권 회장이 당초 계획했던 경영정상화 작업은 일대 차질이 불가피해진다. 업황이 여전히 침체인 가운데 국내에서는 현대제철에, 해외에서는 저가의 중국산에 밀려 설 자리조차 좁아졌다. 포스코가 한층 불안감에 떨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편으로는 검찰 수사의 초점이 전임 회장 시절 비위에 맞춰져 있는 만큼 권 회장으로서는 부담이 크지 않다는 반론도 있다. 검찰 수사에 오르내리는 것은 분명 부담이나, 이 기회를 통해 권 회장이 친정체제 구축을 가속화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한 관계자는 "취임 직후 큰 폭의 물갈이가 있었지만 (정준양) 라인 자체가 배제된 것은 아니다"며 "정준양 색깔 지우기의 명분으로도 활용 가능하다"고 말했다.
(사진=뉴스토마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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