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금복 누야하우스 대표.(사진=누야하우스)
향긋한 비누내음이 가득한 작업장에서 십 여 명의 직원들이 바쁘게 일하고 있다. 몇몇 직원들은 반복적으로 천연연료를 젓고 있고 또 몇몇은 비누를 갈거나 완성된 비누를 비닐봉투에 담고 있다. 지루할 법도 한 일이었지만 이들의 작업은 흐트러짐이 없다.
"얼핏 바라보면 일반인 같지만 대부분이 지적장애인들입니다. 이들은 반복 작업에 탁월한 능력을 갖고 있는 데다가 오히려 일반인보다 레시피에 따라 정확히 작업하기 때문에 작업 신뢰성도 높습니다."
서울 은평구 구상동 누야하우스 작업장에서 만난 이금복 대표는 직원들에 대해 이같은 설명했다. 누야하우스는 직원 51명 중 38명이 지적장애인으로 구성돼 있으며 이들이 제조한 친환경비누와 천연화장품을 판매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당초 누야하우스는 서울시 서부장애인종합복지관이 1997년부터 장애인 직업재활훈련을 위해 운영하던 보호 작업장이었다. 이후 2004년 이 대표가 시설의 원장으로 오면서 친환경 비누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운영 자체가 쉽지 않아 보이는 구성이지만 누야하우스는 친환경제품 사업을 시작한지 10여년 만에 10배 이상의 매출 성장을 달성했다. 2005년 당시 매출은 7000만원에 불과했지만 지난해 7억5000만원으로 급성장한 것. 영업이익률 20%를 넘기는 알짜배기 기업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누야하우스는 2007년 사업자 등록을 하며 친환경 제품 생산업체로 독립했고 2009년 예비사회적기업 등록을 거쳐 2011년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을 받았다.
◇장애인의, 장애인에 의한, 장애인을 위한 기업
사실 친환경 제품들은 기계 설비를 통한 대량생산이 어려운 만큼 오히려 직업훈련을 거친 지적장애인들이 작업하기에 유리한 특성을 갖는다. 하지만 일반인들에 비해 일에 대한 동기부여와 집중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지적장애인들을 직장인으로 변신시키는 데에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이 대표는 "지적장애인들은 작업 생산성이 일반인에 비해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누야하우스는 반복 훈련을 지속적으로 실시했고 지금은 국내 최대 생산량을 기록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지적장애인들의 직업훈련을 위해 이 대표를 비롯한 일반인 직원 13명이 모두 직업훈련을 전문으로 해온 사회복지사들로 이뤄져 있다. 이 대표는 30년간 활동한 베테랑 사회복지사 출신이다.
직원들의 직업훈련 또한 체계적이다. 이 대표는 "현재 훈련생들 20여명이 직업훈련을 받는 중으로 채용과정에서 실습기간을 거치며 직무분석 및 상황평가를 실시해 업무를 배정받는다"며 "정직원들 역시 고용유지가 쉽지 않기 때문에 매년 직무평가를 실시해 업무를 이어간다"고 말했다.
직업훈련의 성과는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누야하우스는 천연비누 12만개, 천연화장품 19만개를 생산·판매하는 성과를 올렸다.
즉 누야하우스는 장애인들의 취업훈련에서 시작해 수익을 창출하는 선순환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그런 만큼 수익은 다시 장애인들의 직업교육 비용과 임금으로 사용된다.
이 대표는 "매달 가족들과 함께 하는 가족회, 지역사회 적응 캠프, 체육대회 등을 통해 지속적인 교육활동을 전개하고 있다"며 "부모님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볼 때 큰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서울 은평구 구산동에 위치한 누야하우스에서 지적장애인들이 친환경 비누를 제조하고 있다.(사진=누야하우스)
◇"바꿔야 산다" 복지에서 경영으로
누야하우스의 사업 초반 운영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이 대표는 "사회적 기업 역시 기업이기 때문에 수익창출을 통해 성장을 도모해야 한다"며 "복지마인드를 갖고 운영했지만 이내 경영마인드 없이는 사회공헌이라는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토로했다.
이 대표가 가장 먼저 앞장섰다. 이 대표는 기업 경영과 함께 마케팅을 공부하기 위해 '사회적기업가 경영전문대학원(MBA)' 과정을 거쳤다. 현재는 누야하우스의 행정팀장이 같은 교육 과정을 거치고 있다.
다른 일반 직원들 역시 순차적으로 사회적기업 전문강사 교육을 받고 있다.
이와 함께 누야하우스는 마케팅 활동과 연구개발(R&D)을 통해 수익 강화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이 대표는 "판로 확대가 매우 중요한 만큼 박람회 참가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며 "또 천연화장품 전문업체인 닥터메이드로부터 무상으로 기술을 전수받고 고려대학교와의 업무협약을 통해 신제품을 개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누야하우스가 개발해 판매하고 있는 제품만 100여 가지가 넘는다. 황토·녹차·요쿠르트 등 천연연료로 기능을 추가한 기능성 비누와 과일·컵케익·도너츠·트리 등 디자인이 돋보이는 디자인 비누 등을 선보이고 있다.
또 천연화장품 브랜드인 '아인미'를 통해 스킨케어, 클렌징, 바디·헤어, 핸드크림 등도 제조·판매하고 있다. 이 대표는 "최근 선보인 헤어 미스트의 경우 지난해 10만개를 판매하는 쾌거를 올리기도 했다"고 귀띔했다.
◇여전히 여의치 않은 판로확대 "공공기관 나서야"
이같이 누야하우스가 장애인들에 대한 직업훈련 시스템과 높은 생산성, 경영마인드를 확보했음에도 이 대표는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는 일이 여전히 쉽지 않다고 말한다.
어려운 점이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에 이 대표는 지체없이 '판로 확대'를 꼽았다. 이 대표는 "누야하우스의 천연비누 생산량은 거의 국내 최대 수준이며 지속적인 R&D로 맞춤형 제품을 생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췄다"며 "하지만 매년 판로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난관에 부딪히고 있는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현재 누야하우스의 매출 중 70% 가량은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을 통해 올리고 있다. 고객사로부터 주문 제작이 들어오면 맞춤형으로 제품을 생산해 공급하는 방식이다.
주요 고객사들을 살펴보면 포스코, 신한은행 등 일반 대기업들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매년 재구매를 통해 매출에 가장 큰 기여를 하고 있는 곳은 아침고요수목원이다. 공공기관은 한국공항공사 한 곳에 불과하다.
이 대표는 "누야하우스는 중증장애인 시설이라 우선구매제도를 통해 판로를 확보하고 있지만 이 역시 강제사항이 아니라 단발성 구매에 그치고 있다"며 "공공기관과 공기업의 지속적 지원이 절실한 상태"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지역자치단체들 역시 사회적 기업들에게 힘을 실어줄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이 대표는 "은평구는 사회공헌에 높은 관심을 갖고 있어 누야하우스를 운영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며 "하지만 사회적 기업에 아예 관심이 없는 곳도 있어 사회적 기업 설립 자체가 힘든 경우도 많다"고 지적했다.
◇누야하우스에서 제작·판매하고 있는 디자인 비누 제품. 계란과 트리 등 다양한 디자인의 친환경 비누를 판매하고 있다.(사진=누야하우스)
남궁민관 기자 kunggij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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