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나볏기자] 17일(현지시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미 금융 규제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정비하자고 제안했다. 미국의 주요 금융기관들을 고꾸라지게 하고, 신용시장을 경색시키는 한편 시장 가치로 26조4000억달러의 자산을 파괴시킨 그간의 “연달았던 실수”를 뿌리뽑기 위해서다.
의회의 승인이 녹록치만은 않겠지만 만약 이번 오바마 대통령의 시장 규칙 정비 제안이 받아들여질 경우 이는 75년만에 가장 큰 규모의 대대적인 정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대형은행들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금융권을 둘러싼 규제가 여러 겹으로 추가될 것이기 때문이다. 규제안에 따르면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금융상품을 감시하는 기관이 새로 설립되며,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너무 커서 실패하게 내버려 둘 수 없는 기업들을 감독하게 된다. 아울러 헤지펀드와 프라이빗 이퀴티 펀드는 연방정부의 정밀한 조사를 받게 될 예정이다.
이날 오바마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성명을 통해 “이번 위기는 금융시스템 전체의 실패였다”며 “감시의 부재가 조직적인 금융 시스템 남용을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행정부의 이 같은 제안은 반세기래 최악의 경기 침체를 야기한 신용 경색 위기가 월가를 강타한지 1년 만에 나온 것이다. 지난해 9월 이래 그동안 미 정부는 수십억달러의 구제자금을 씨티그룹, 뱅크오브아메리카(BoA), AIG 그룹, 제너럴모터스(GM), 주택 모기지업체인 패니매와 프레디맥 등에 쏟아 부은 바 있다.
금융 규제 정책을 최우선 문제 로 두고 ‘완전 정비’에 나서겠다는 오바마 대통령은 이날, 올해 내로 규제 법안에 최종 사인을 하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규제안 발표는 경제에 대한 정부 권력의 확대를 비판하는 공화당과의 정치적인 전투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을 예고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OTS 없앤다
오바마 행정부가 이날 공개한 88쪽 분량의 금융규제 및 감독체계 개편안에 따르면, 오바마대통령은 우선 재무부 산하 지방저축기관 감독기관인 연방저축기관감독청(OTS)을 없애고, 대신 OTS와 연방금융감독기관인 연방통화감독청(OCC)을 합쳐 새 통합 감독기구인 ‘전국 은행 감독청(가칭)`을 출범시키자고 제안했다. 양 기관으로 나뉘어진 감독 체계를 일원화시킴으로써 금융 감독의‘사각 지대’가 생기는 것을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또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재무부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먼저 재무부의 경우엔 새로 설립되는 ‘금융서비스 감독 위원회(가칭)’의 위원장을 재무부 장관이 맡도록 해 FRB와 재무부가 공동책임으로 ‘시스템 리스크’를 감시할 것을 제안했다.
FRB에는 은행뿐만 아니라 보험사와 투자은행, 증권사 등 비은행 금융기관들에 대해 일정 금액의 준비금 유지를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이는 FRB의 감독권한이 전 금융권으로 확대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대형 금융회사에 대해서는 위기 재발을 막기 위해 자본기준과 유동성 기준이 종전보다 대폭 강화될 예정이다.
증권거래위원회(SEC)를 통해서는 헤지펀드와 사모펀드, 벤처캐피탈 등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자고 제안했다.
아울러 머니마켓 뮤추얼펀드에 대한 규제 개선, 신용평가회사에 대한 새로운 규제방안 도입도 제안됐다.
또 신용디폴트스와프(CDS) 등의 파생상품에 대해서도 포괄적인 규제가 적용될 예정이다. 이로 인해 이들 상품에 대한 과도한 투자가 금융회사의 장부상에 드러나지 않는 부실로 커지는 것을 방지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이밖에 오바마 대통령은 금융소비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소비자금융 보호국(CFPA, 가칭)’을 설립하자고 주창했다. 소비자금융 보호국을 통해 소비자들을 현혹하고 위험에 빠뜨릴 수 있는 모기지(주택담보대출)와 신용카드 등 여러 금융상품에 대해 감독하자는 취지다.
◇의회와 시장의 반응은?
이번 오바마 행정부의 개혁안이 의회의 최종 승인을 받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단체들은 이번 개혁안을 환영하고 있지만 공화당과 금융권의 경우, 미 은행들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지나치게 강화되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혁안은 의회의 승인을 받더라도 최소 수개월이 소요될 전망이다.
공화당의 존 베이너 하원 원내대표는 이번 개혁안에 대해 "일부 아이디어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공감하지만 금융산업에 대한 정부의 위상이 과도하게 커져 시장의 창의성을 제한할 수 있다는 점은 우려된다"고 밝혔다.
공화당의 젭 헨스얼링 하원의원의 경우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잘못된 진단으로 잘못된 처방이 나왔다"며 "문제는 오바마 대통령이 지적한 ‘규제완화’가 아니라 ‘덜 떨어진 규제’였다"고 지적했다.
금융권에서는 정부 규제 강화로 인해 은행들의 리스크 감내 여력과 레버리지가 줄어들어 결국 미 은행들의 경쟁력과 수익 창출 능력은 위축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리차드 보브 로치데일증권의 한 전문가는 이번 금융규제 개혁안에 대해 “너무나 대대적이면서도 포괄적인데다, 매우 비경제적"이라고 지적한 뒤, “앞으로 이같은 규제의 일환으로 자본확충 요구가 지속될 것이고, 이는 은행의 레버리지를 낮춰 결국 은행의 잠재적인 수익성을 훼손시킬 것”이라고 분석했다.
‘금융규제 개혁안`에 민감한 내용들을 다수 포함돼 있는 만큼 의회를 거치는 과정에서 통과 여부를 두고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는 점도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은행업종에 당분간 개혁안은 부담으로 작용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뉴스토마토 김나볏 기자 freenb@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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