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의선 도라산역에 그려진 벽화를 작가 동의 없이 철거한 국가의 행위는 작가의 저작인격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번 사건은 저작물인 미술품이 표현된 물건을 국가가 폐기한 경우 그 물건에 대한 소유권을 국가가 가졌더라도 작가에 대한 동의를 받지 않았다면 예술의 자유 등 작가의 인격적 이익을 침해한 것이므로 배상해야 한다는 취지의 첫 판결이어서 주목된다.
대법원 1부(주심 김소영 대법관)는 27일 작가 이반(75)씨가 '경의선 도라산역에 그린 벽화를 동의 없이 철거한 것은 부당하다'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국가에게는 문화국가 실현을 위해 노력하고 예술의 자유를 보장해야 하는 의무가 있으므로 저작권 있는 저작물을 폐기하는 행위는 비록 국가가 소유권을 가지고 있더라도 작가가 가지는 예술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어 신중해야 한다"며 "다만 예술의 자유가 무제한적인 기본권은 아니므로, 저작물이 화체된 유체물에 대한 소유권의 행사를 부당하게 제약하여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렇다면 국가가 스스로 의뢰해 통일 염원을 상징하는 특별한 의미를 담아 도라산역이라는 공공장소에 제작·설치돼 수많은 관광객이 관람해왔고 반복·재현이 사실상 불가능한 벽화를 불과 3년도 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작가에게 아무런 통보 없이 철거해 소각한 행위는 위법하다"며 "국가는 벽화 폐기행위로 작가가 입었을 정신적 고통에 대해 국가배상법에 따라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이어 "작가가 자신의 저작물에 대해서 가지는 인격적 이익에 대한 권리는 저작권법 규정에 해당하는 경우로만 한정되지 않고 또 저작권법상 규정된 저작인격권이 침해되지 않았다고 해서 법적으로 보호해야 할 작가의 인격적 이익에 대한 침해가 없었다고도 볼 수 없다"며 "원심이 벽화 폐기행위에 대해 동일성유지권을 침해하지 않았다고 보고 이와는 별도로 법적으로 보호할 인격적 이익 침해를 인정한 것은 법리를 오해한 위법이 없다"고 덧붙였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저작인격권 침해와 작가의 예술의 자유 등 법적 보호대상이 되는 인격적 이익에 대한 침해여부를 규정짓는 가이드라인을 최초로 제시한 것"이라며 "헌법상 가치를 바탕으로 개별 법률의 해석을 통해 국민의 권리를 구제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이번 판결의 의미를 설명했다.
이씨는 2006년 3월 국가로부터 작품을 의뢰받고 2007년 5월 도라산역사 안 벽면과 기둥들에 포토콜라주 기법을 활용해 벽화 14점을 제작·설치했다. 이씨의 벽화는 독특한 기법을 사용한 예술품으로 반복·재현이 불가능했으며 관광명소로도 널리 알려져왔다.
그러나 국가는 2010년 2월 벽화를 교체하기로 하면서 이씨에게 그 사실을 통지하거나 벽화 보존에 대한 대책 강구 없이 벽화에 물을 뿌려 작게 절단해 철거하는 등 벽화를 크게 손상했다. 이에 이씨는 자신의 저작물에 대한 인격권이 침해됐다며 3억원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냈다. 1심은 이씨의 청구를 기각했으나 항소심은 이씨 주장을 일부 받아들여 국가에게 1000만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작가 이반 교수 제작, 도라산역 마지방의 벽화.사진제공/대법원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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