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다섯번 째 만남을 갖는다. 지난해 11월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 이후 약 1년만이다. 명실상부한 세계의 양대 축인 두 나라는 지난 1년 동안 미묘한 긴장 관계를 이어왔다. 중국은 불안한 국내 경제와는 별개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을 공식화하며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해상실크로드) 프로젝트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이달 초에는 항일전쟁 및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식을 통해 최신 무기들을 선보이는 사상 최대 규모의 열병식을 거행했다. 새로운 패권 국가를 향하는 야심을 엿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중국의 굴기에 미국은 불쾌감을 드러냈다. 사이버 안보와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 등 다양한 각도에서 중국을 압박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시진핑 주석의 미국행은 남다른 의미를 갖는다. 일부 의제를 제외하고는 구체적인 성과를 도출하기 어려울 것이란게 중론이지만, 두 정상이 서로 다른 부분을 솔직히 인정하고 '신형 대국관계'를 어떻게 이어갈 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25일(현지시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5번째 정상회담을 갖는다. 전문가들은 주요 의제에 양국의 입장 차이로 구체적인 성과 도출은 어려울 것으로 보고있다. 사진은 지난해 11월 중국 베이징에서 만난 두 정상의 모습. (사진=뉴시스/AP)
지난 22일(현지시간)부터 약 일주일간 미국을 국빈 방문 중인 시진핑 주석은 25일 백악관 남쪽 잔디 광장에서의 환영 예식을 시작으로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진행한다. 한 시간 안팍의 단독 회동을 한 후 관료들을 대동한 회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이후에는 공동 기자회견을 갖는다. 세간의 관심사는 미국이 자신들의 안방을 2년 만에 찾은 중국 최고 지도자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냐는 것이다. 더욱이 실무 회담 수준이었던 지난 2013년 캘리포니아에서의 만남보다 국빈 방문인 이번 회담의 격이 높아 심도 깊은 이야기들이 오갈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보고 있다. 중국 지도자의 국빈 방문은 2011년 후진타오 전 주석 이후 4년 만이다.
그러나 이번 정상회담이 순항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기후변화 대응이나 북핵 문제 해결 등의 이슈에서는 의견 조율이 가능할 것으로 보이지만 사이버 해킹이나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인권 문제 등에서는 첨예한 입장 차이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중국이 가장 큰 기대를 보이고 있는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중국 정부가 "위안화의 추가 절하는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잡음이 크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미국은 "수출 촉진을 위한 경쟁적 절하에 반대한다"며 중국의 움직임을 예의주시 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선 후보가 "미국 경제가 더 늦기전에 중국과 결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미국 내 중국 위협론이 높아지는 점도 장애물이다. 구체적인 성과 없이 입장 차이만 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다수를 차지하는 배경이다.
◇중국 매체 "증신석의의 여행"
이번 정상회담이 시 주석과 오바마 대통령의 동상이몽을 재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이란 점은 각국 주요 언론의 보도를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다. 인민일보, 신화통신 등 중국 관영 언론들은 대체로 경제·무역 합작에 초점을 맞추고 사이버 해킹과 인권 문제 등 갈등 현안을 외면하고 있는 반면 워싱턴포스트, LA타임즈 등 미국 언론들은 사설이나 칼럼을 통해 주요 이슈에 눈감은 중국의 모습을 비판하고 있다.
중국 매체들은 시 주석의 미국 방문을 '증신석의(增信釋疑)'라는 네 글자로 압축적으로 표현했다. 양국의 신뢰는 높이고 의심은 푼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들이 내세운 주요 의제는 세계 경제 성장과 평화 발전, 기후변화, 이란과 북한의 핵 문제, 아프가니스탄 문제, 중국인의 미국 여행 및 유학에서의 새로운 조치 등에 그쳤다. 그 중에서도 경제 협력 부분에 집중했다. 지난 5년간 중국의 대미 투자는 9배 증가했고 중국 기업의 미국인 고용은 5배가 늘었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의 방문으로 양국의 우정이 심화되고 신형 대국 관계 건설의 새로운 전기가 되길 희망한다고 전했다. 사이버 보안이나 남중국해 영유권, 중국 내 인권 탄압 등 의심을 풀어야 할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중국의 이 같은 '눈가리고 아웅'식의 입장은 시 주석이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진행한 서면 인터뷰 내용에서도 묻어났다. 중국 외교부가 초안을 작성하고 시 주석이 최종 수정을 한 것으로 알려진 이 인터뷰에서 시 주석은 "중국과 미국은 현재 북핵, 이란 핵, 이팔분쟁, 기후변화, 주요 전염병 등 일련의 국제 현안에서 긴밀한 공조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서로의 입장이 어긋나는 부분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일부 문제에서 생각과 방식에 차이가 있긴 하지만 보완점을 찾아 최선의 방법을 이끌어내고 있다"고만 에둘러 표현했다. 남중국해나 사이버안보 등을 구체적으로 거명한 질문에도 "양국 관계는 대국적인 관점에서 바라봐야지 세세한 분쟁에 집착해서는 안된다"고 원론적인 수준의 의견을 전했다. 남중국해에서의 인공섬 건설은 군사적 목적이 아닌 섬 거주민에 대한 서비스 제공 목적이며 사이버 해킹은 중국도 피해자라는 기존의 입장을 되풀이했다. 의심을 풀려는 시도는 보이지 않았다.
◇"시진핑 옆에 류샤오보 자리 만들어라"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중국이 알고도 모른척 하는 곳을 집요하게 파고 들었다. 양측이 첨예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는 해킹과 남중국해 문제는 물론 중국이 "내정간섭"이라며 민감하게 반응하는 인권 문제도 크게 부각시켰다. 심지어 워싱턴포스트는 사설을 통해 "시진핑 환영 만찬에 류샤오보를 위한 자리도 마련해 둬라"고 일침을 가했다. 류샤오보는 지난 2010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인권운동가다. 2008년 12월부터 수감 중이라 노벨평화상 시상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현재 그의 부인인 류샤도 5년 째 가택 연금 중이다. 남편 면회를 제외한 외부 활동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이외에도 워싱턴포스트는 해외에서의 중국 민주화 운동을 이끌다 베트남 여행 중 중국으로 납치돼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왕빙장, 재판 없이 16개월때 구금 중인 인권변호사 푸즈창 등의 이름을 나열하며 환영만찬에 초대하고 싶은 사람들이 수 없이 많다고 꼬집었다. 이들에 따르면 시진핑 정부 출범 이래 정치적 탄압을 받은 티벳 관련 인사만도 2000명에 이른다.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자국 국민을 투옥시킨 정부가 국제 사회의 일원으로 존경받기 위해서는 더 많은 길을 가야한다"는 장기복역수 딸의 과거 기고문 내용을 인용해 중국에 대한 시선을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시애틀타임즈는 현재 중국 정부가 추진 중인 외국계 비정부기구(NGO)에 대한 규제 강화가 인권 문제와 관련한 또 다른 쟁점이 될 수 있다고 전했다. 골자는 외국계 NGO를 관리하는 부처를 민정부에서 공안부로 변경하겠다는 것이다. 이 경우 빌앤멀린다게이츠재단과 같은 자선단체는 물론 무역협회, 공중보건기구, 인권기관 등이 모두 공안부의 관리 대상이 된다. 외국계 NGO를 잠재적인 범죄자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고조되는 이유다. 티벳, 타이완 등 지역 문제와 민주화 개혁 등과 관련된 중국 내 인권변호사와 인권운동가들의 운신의 폭이 줄어들 것이란 우려도 함께 제기된다.
◇"차이 인정하는 솔직한 태도 필요"
이처럼 시진핑과 오바마는 같은 자리에서 서로 다른 생각을 할 공산이 크다. 국제관계 전문가들은 회담에서 양국이 원하는 것이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화해와 협력은 커녕 오해만 더 깊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홈그라운드에서 진행되는 정상회담에 미국은 자신들의 입장을 분명히 표시할 것이며 상징적인 의미를 중시하는 중국은 체면을 지키는 선에서 대화를 마무리 할 것이란 시각이다. 이번 정상회담은 양국 관계의 마찰을 해결하지도, 관계를 악화일로로 밀어넣지도 않는 그저 '외교의 장'이란게 다수의 의견이다. 때문에 양국 정상이 견해 차이가 있었던 부분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이를 줄여가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솔직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성공적인 회담을 위한 제일의 조건으로 꼽힌다. 데이비드 샴보 미국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의견 충돌을 숨기거나 대중앞에서 적대적인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좋은 모습만 보이려 한다면 회담은 실패로 보는 것이 옳다"고 진단했다. 공고한 관계는 상대방의 우려를 경청하고 이에 합당한 반응을 내놓는 데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바크만 워싱턴대 잭슨스쿨 교수도 "미국과 중국은 글로벌 현안에서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에 대한 이해에 도달해야 한다"며 "그렇지 않을 경우 관계는 나빠질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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