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컨설팅 기업에서 잘나가는 컨설턴트로 근무하던 아디 나가라씨는 가족과의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에 과감히 회사를 그만뒀다. 가족들이 있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돌아온 후 그의 삶은 훨씬 여유롭고 윤택해 졌다. 이전보다 더 많은 보수를 받으면서도 본인이 원할 때만 일을 하기 때문이다. 그가 주로 하는 일은 인도네시아의 산업별 분석 정보를 미국에 위치한 컨설팅 기업으로 보내주는 것이다. 이 모든 일은 자카르타에 있는 시원한 에어콘이 나오는 그의 방에서 이뤄진다.
미래의 일자리로 주목받는 '휴먼 클라우드'의 한 단면이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탄력적으로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지만 전통적인 회사의 개념을 바꾼다는 점에서 근로자 권익 보호가 어려울 수 있다는 단점도 안고 있다.
휴먼 클라우드가 보편화되면 물리적인 사무실의 기능은 크게 줄어들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전망했다. 사진은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 금융센터에 밀집한 고층 건물들의 모습. 사진/뉴시스
기술의 발달과 혁신적 서비스의 등장으로 근로 형태도 다원화되고 있다. 우버나 에어비앤비 등 공유형 서비스에서 비롯된 수요자 기반의 일자리에서 더 나아가 최근에는 프로젝트 단위로 가상의 인력풀에서 필요 인력을 조달하는 '휴먼 클라우드'가 노동 시장의 새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다. 휴먼 클라우드는 글자 그대로 사람이 매개가 되는 클라우드 컴퓨팅 시스템을 의미하는데, 산업계에서 말하는 클라우드 컴퓨팅의 정의를 살펴보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클라우드 컴퓨팅은 인터넷 상의 서버에 정보를 영구적으로 저장하고 데스크톱, 태블릿PC, 노트북, 스마트폰 등 IT 기기의 클라이언트에는 일시적으로 보관되는 컴퓨터 환경을 일컫는다. 다시 말해 이용자의 모든 정보를 인터넷 상의 서버에 보관하고 이 정보를 각종 IT 기기를 통해 언제 어디서든 꺼내볼 수 있다는 개념이다. 정보를 보관하는 곳이 구름과 같은 무형의 형태라는 점에서 '클라우드'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가상의 서버에서 데이터 저장, 처리, 네트워크, 콘텐츠 사용 등 IT 관련 서비스를 한번에 제공한다는 측면에서 '인터넷을 이용한 IT 자원의 주문형 아웃소싱 서비스'라고 불리기도 한다.
휴먼 클라우드는 클라우드 컴퓨팅의 정의에 등장하는 정보를 사람으로 치환하기만 하면 된다. 즉, 가상의 공간에 노동력 정보를 저장하고 고용주(클라이언트)들이 업무 성격에 따라 필요한 인재를 일시적으로 채용하는 식이다. 언뜻보면 인력시장이나 구인구직 사이트와 흡사한 것처럼 보이지만, 피고용인들이 특정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고 온라인으로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차별점이다. 누구든지 적합한 능력만 갖고 있다면 전세계 어디에서나 시간의 제약 없이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 휴먼 클라우드로 구할 수 있는 일자리는 단순하게는 온라인 상의 전화번호부 검색, 스프레드 시트에 정보 입력 등 단순한 것에서부터 단기 컨설팅 프로젝트 참여, 프로그래밍 코드 입력 등 높은 수준의 업무 능력이 필요한 것까지 매우 다양하다.
◇미래 일자리로 주목받는 '캐주얼 노동' 대표주자
휴먼 클라우드는 노동시장 유연화와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 기술의 발전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서비스들이 다수 생겨난 것이 출발이다. 인적자원 관리업체 허불(hubbul)은 수요자 기반(on-demand) 컴퓨팅이 웹으로 가능한 인프라를 빠른 속도로 보급시킨 것처럼 우리가 '일'이라 부르는 모든 환경을 할 수 있는 환경도 진화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사람이 곧 일자리가 되고 일자리 자체가 회사가 돼 직장에 대한 전통적 개념이 완전히 파괴된다는 것이다. 사무실, 책상, 컴퓨터 등 물리적 공간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출퇴근 러시아워에 시달릴 필요도 없어질 것이란 전망이 이어진다. 스카이프, 자이브, 야머 등 기존의 서비스들이 공간의 제약을 완화하는데 그쳤다면 휴먼 클라우드는 일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 사람들의 삶을 나아지게 하는데 궁극적인 목표가 있다는 것이다.
허불은 또 서비스로서의 소프트웨어(SaaS)와 서비스로서의 플랫폼(PaaS)이 나름의 생태계를 구축했듯 휴먼 클라우드도 소프트웨어로서의 인력(HaaS)으로 자리잡을 날도 머지 않았다고 내다봤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즈(FT)가 휴먼 클라우드를 집중 조명하며 "휴먼 클라우드는 이미 우리 삶에 가까이 와 있고 표준이 될 날도 멀지 않았다"고 언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제로 휴먼 클라우드의 대표기업으로 꼽히는 미국의 업워크는 창업 후 10년 만에 10억달러의 매출에 도달했으나 100억달러를 달성하는 것에는 6년 이면 충분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고용주와 근로자로부터 총 10%의 수수료를 공제하는 이들은 "이 자리까지 오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변곡점을 지난 만큼 조만간 주류로 발돋움 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지역·인종·성 차별 없는 실력 중심 사회 기여
휴먼 클라우드가 보편화 됐을 경우 가장 큰 변화는 근로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서 일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전세계 어디에 있든 인터넷만 연결된 곳이라면 업무를 분담할 수 있는 이 시스템에서 물리적 사무실은 회의와 토론을 위해서만 일시적으로 사용된다거나 여러 기관과 공유해도 무방한 새로운 기능과 의미를 부여받게 될 것이다. 인력을 소싱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직원들이 어떻게 생겼고 어디에 살고 있는지 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는 것인데, 거주 지역이나 교육 수준, 성, 인종 등의 차별 없이 실력으로만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업워크가 미국 다음으로 많은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는 곳이 인도, 필리핀, 우크라이나, 파키스탄 등지라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능력에 기반해 채용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기술 부족이나 숙련된 이주 노동자들의 실업 공백을 완화시킬 수도 있으며, 생산의 주도권을 근로자가 쥘 수도 있다. 데니스 페넬 세계고용서비스연맹(Ciett) 매니징디렉터는 "휴먼 클라우드는 컴퓨터와 개인의 두뇌, 일을 할 수 있는 와이파이 환경만 갖춰져 있으면 가능하기 때문에 사람이 생산의 주체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진단했다.
휴먼 클라우드로 일자리를 구했던 사람들도 대체로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보수를 받는 전문직이든 특별한 능력이 필요하지 않은 단순 노동직이든 기존의 고정 일자리와 비교해 잃는 것보다는 얻는 것이 많다는 의견이다. 5~7달러의 시급으로 웹페이지나 동영상을 볼 때 시선을 주로 어디에 두는지를 연구하는 프로젝트에 피실험자로 참석한 한 청년은 FT와의 인터뷰에서 "근로자를 사람이 아닌 숫자로만 대했던 다른 곳과는 달리 휴먼 클라우드는 내가 원할 때 쉴 수 있고 밥을 먹을 수도 있다"며 "많은 돈을 주지는 않지만 훨씬 인간적"이라고 밝혔다.
◇고용 불안·노동력 착취 가능성 '고개'
휴먼 클라우드는 전통적 노동 시장의 범주를 벗어난 새로운 개념이기 때문에 예상되는 문제들도 적지 않다. 가장 먼저 고용주와 근로자에 대한 신뢰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오로지 온라인 상에 있는 정보로만 서로를 인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업워크나 프리랜서 등 대표 기업들은 참여자들의 평가를 정략화 할 수 있는 별점 시스템을 도입했다. 평판이 좋은 근로자의 경우 다소 높은 임금을 요구해도 고용주들에게 선택될 수 있고, 반대로 평판이 좋은 고용주는 상대적으로 적은 보수를 제시하더라도 양질의 근로자들이 지원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됐다. 이 밖에 시장 참여자들이 클라우드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편의성을 제고하고 프로젝트 구성원끼리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들도 해결돼야 할 장애물로 지목됐는데, 대부분이 기술적으로 충분히 개선될 수 있는 부분이다.
이에 반해 근로자들의 고용 형태에 대한 논란은 쉽게 봉합되지 않을 수 있다. 우버에서 촉발된 일용직 경제의 그늘이 계속해서 노동계의 이슈로 작용하는 것과 같을 것이란 의견이다. 유연한 고용 시장이라는 새로운 트렌드가 최저 임금, 규제 공백 등의 틈을 파고들어 기업에게만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휴먼 클라우드로 고용된 근로자들에 대한 사회복지, 조세 등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담론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노동력 착취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비판이 커지는 이유다. 앞서 워싱턴포스트가 "오바마케어라 불리는 부담적정보험법이 발효되면서 직원 보험비 부담이 늘어난 기업들이 프리랜서나 독립계약자를 채용하는데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전한 것도 이 같은 우려를 높이는 배경이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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