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은행의 계좌이동제 대응 전략, 파괴적 혁신이 필요하다
송치훈 우리금융경영 수석연구원
2015-10-27 10:13:55 2015-10-27 10:13:55
계좌이동제가 페이인포(www.payinfo.or.kr) 사이트를 통한 자동이체 변경 서비스 개시로 10월30일부터 본격 시행된다. 대상이 되는 개인고객 입출금계좌는 시장점유율 변화가 연간 1%포인트에도 미치지 못하는 비경쟁적 시장인데, 주거래은행 변경 시 7~8개에 달하는 자동이체를 소비자가 직접 일일이 변경해야 했기 때문이다. 계좌이동제는 이러한 번거로움을 덜어줌으로써 은행간 경쟁환경을 조성하여 금융경쟁력 강화를 도모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된 것이다.
 
지난 3월 우리은행이 최초로 주거래고객 상품을 출시한 이래 주요 은행들이 관련 상품을 경쟁적으로 출시하면서 계좌이동제에 대비하고 있다. 영국에서 후발은행인 산탄데르와 할리팩스가 계좌이동제를 계기로 고객 기반을 크게 확대한 것으로 나타나 계좌이동제에 대한 대형 시중은행의 긴장감이 한층 높아진 것도 영향을 준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최근 출시되는 은행들의 주거래 상품은 서로 비슷한데다 가격경쟁력을 핵심으로 내세우고 있어 제도 도입 취지인 금융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주거래 상품은 급여 이체, 카드 결제, 관리비 및 공과금 자동이체 등으로 주거래 계좌 요건을 갖추면 송금 및 출금 수수료를 면제해주고, 예·적금 및 대출 우대금리를 제공하는 것을 기본 골자로 한다. 주거래 고객에게 금전적인 혜택을 돌려주겠다는 것인데, 상품 구성이 비슷하다 보니 소비자 입장에서 차이점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또한 엄청난 마케팅비를 퍼붓는 출혈경쟁까지는 아니더라도 저금리 장기화로 이익기반이 약화된 상황에서 이러한 가격 중심의 대응전략이 얼마나 지속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결국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한데, 성숙 단계에 들어선 은행 산업의 특성상 상품과 서비스가 이미 범용화되어 이마저도 쉬운 일이 아니다. 이와 관련하여 파괴적 혁신 이론으로 유명한 하버드 경영대학원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의 Jobs-to-be-done 방법론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크리스텐슨 교수는 소비자가 어떤 제품을 구매하는 이유는 그 제품을 활용해 이루고자 하는 어떤 목적(jobs)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며, 범용화된 시장에서 차별화를 위해서는 그 목적에 집중한 상품개발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례로 전동드릴을 구매하는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것(jobs)은 벽에 뚫린 구멍이지, 높은 RPM의 전동드릴이 아니라는 것이다. 차별화를 위해서는 목적 달성에 장애가 되는 요소, 이를 테면 소음이나 분진을 제거한 제품 출시가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은행의 경우는 어떨까. 은행 수수료를 면제 받기 위해 은행 거래를 하는 고객은 없을 것이다. 은행 거래는 결국 소비자가 갖고 있는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며, 은행 서비스가 목적 달성에 차별화된 기여를 하지 않는 이상 거래비용은 최소화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인 것이다.
 
우리나라 금융소비자는 전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통신인프라를 기반으로 실시간 금융서비스를 거의 무료로 이용하면서도 금융산업 경쟁력은 아프리카보다도 낮다고 평가한다. 은행이 그동안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해온 바가 금융소비자가 바라는 것과는 방향이 달랐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결과이다.
 
계좌이동제가 이러한 괴리를 줄여나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우리나라에서 은행을 이용하는 수많은 직장인, 주부, 자영업자, 학생, 은퇴자가 은행 거래를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을 이해한다면 이에 따른 차별화도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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