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재편, 구조조정이 산업계 최고 이슈가 되면서 대기업의 '혁신'은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됐다. 하지만 대기업은 상대적으로 의사결정 속도가 더디고 변화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스타트업 기업이 가진 혁신의 민첩성을 배우려는 대기업이 나타나고 있다.
LG경제연구원은 최근 '대기업, 스타트업에서 혁신 배운다' 보고서에서 GE, 소니, 코카콜라 등의 사례를 들며 이같은 흐름에 대해 설명했다. 이 보고서는 스타트업이 시장의 움직임에 재빠르게 움직이고 환경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민첩성'을 최대 장점으로 꼽았다.
◇대기업 혁신 걸림돌…'경직된 구조·이해관계자 갈등 조절'
이와 반대로 대기업은 신속한 변화가 쉽지 않다. 일단 해당 기업이 현재의 자신을 부정하는 작업부터 시작해야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대기업은 존재만으로 하나의 성공을 상징하고 기존 방식을 통해 성과를 냈기 때문에 혁신만을 위해 현재 전략이 틀렸다고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
이미 잘 다듬어진 내부 프로세스도 혁신에 걸림돌이다. 기존의 프로세스는 오랜 기간에 걸쳐 최적화됐고 자원이 낭비될 여지를 가능한 줄였기 때문에 효율적이라고 판단한다. 기존 프로세스를 개선할 수도 있지만 그 시간만큼 일이 더 늦어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대기업 내의 수많은 이해관계자들 사이에서 갈등을 해결하고 조정하는 일도 남아 있다. 혁신이 기업 전체 관점에서 득이 될 수 있어도 기업 내 누군가는 일거리가 줄거나 일자리 자체에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혁신안 가운데 과거에 경영진의 반대 때문에 실패했던 방안이 있다면 더욱 어렵다.
전재권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대기업에서의 혁신은 백지에 새로운 글을 쓰는 일이 아니라 기존의 글을 가능한 유지하면서 새롭게 써야 하는 모순된 작업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GE·코카콜라, ‘생존’위해 스타트업에 손 내밀어
이렇다보니 GE, 코카콜라 등 글로벌 대기업들은 경직성을 없애기 위해 스타트업 기업에서 생존방식을 터득했다.
GE는 오랜 역사를 가진 대기업이지만 스타트업 기업에게서 생존 방식을 활발하게 찾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이다. 지난 2012년, 스타트업 구루인 에릭 리스의 도움으로 기존의 제품 개발 프로세스를 개선해 신속한 제품 개발을 가능하게 해주는 패스트웍스(FastWorks)라는 프로그램을 도입한 바 있다. '린 스타트업 방식'을 적용한 패스트웍스는 완성도는 낮지만 어느 정도 기능이 구현된 제품을 빨리 만들어내는 장점이 있다. '린 스타트업 방식'이란 시제품으로 우선 제조한 뒤 시장의 반응을 통해 제품에 반영하는 전략이다.
고객에게 피드백을 받아 수정하는 과정을 반복해 제품 개발방향을 수시로 전환하기도 한다. 실제 가스 터빈 개발기간을 5년에서 3년으로 단축시켰고, 이를 전사적으로 확대 적용해 전 직원을 대상으로 훈련을 진행했으며 300여개 이상의 프로젝트가 실시되고 있다.
이에더해, GE는 작년 4월 고객과 시장에 보다 더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 ‘퍼스트 빌드(First Build)’라는 자회사를 설립했다. 퍼스트 빌드는 내부 구성원들뿐만 아니라 외부 일반인들이 참여하는 방식을 통해 신속한 생산을 목적으로 하는 소규모생산에 힘을 쏟는다.
이 과정에 내·외부 전문가의 아이디어를 들을 수 있고, 소량생산 방식을 통해 신속한 제품 개발도 가능하다. 특히 별도의 브랜드를 사용하는 자회사로서 사업전략을 시도해 볼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설립 이후 1년동안 800여개의 아이디어가 제안됐고, 이 중 8개가 상품을 출시됐다.
코카콜라는 한발 더 나아가 '스타트업 경험이 있는 기업가’에게까지 범위를 넓혔다. 지난 2013년 ‘파운더즈(Founders)’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스타트업 경험이 있는 기업가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코카콜라는 기업가들이 경험한 스타트업 기업의 일하는 방식에 주목하고 있다. 코카콜라 혁신 담당임원인 로스 킴벨은 " 기존의 전통적인 마케팅과 유통 방식에서 벗어나 소셜, 스마트기기 등의 매체를 활용한 새로운 방식을 발굴하기 위해 적은 비용으로 최대한 빠르게 실행하는 린 스타트업의 방식을 체득하고 있는 기업가들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스타트업과 파트너십을 유지하는 경영방식도 독특하다. 코카콜라와 파트너십을 맺은 스타트업 기업들은 위탁경영이 아닌 자신들의 소유로 할 수 있는 새로운 법인을 갖게 된다. 공동 프로젝트에 대한 지적 재산권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이 독특하다. 이를통해 스타트업 기업은 자기 기업을 매각하지 않고도 홍보, 유통 등 코카콜라의 방대한 자원을 활용할 수 있다.
소니는 지난 7월 ‘퍼스트 플라이트’라는 온라인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을 만들어 제품 개발에 대한 의사결정을 대중에게 맡기기 시작했다. 소니는 구성원들의 아이디어 중 잠재력 있는 아이디어를 웹사이트에 공개하고, 투자자들이 개발할 제품을 선택하면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투자자의 실시간 피드백을 통해 개발하는 동시에 경영진 보고 및 의사결정에 걸리는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전 책임연구원은 스타트업 기업의 방식이라고 무조건 도입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이같은 흐름이 향후 대기업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인지, 아니면 다양한 혁신 시도들과 마찬가지로 반짝하고 사라질 경영 사례로 그칠 지는 지켜볼 필요가 있다”면서 “스타트업 기업과 대기업이 가진 규모, 사업영역, 인적 구성 등 근본적인 차이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6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2015 크리에이티브 스타트업 코리아'에서 해외 투자자들과 국내 스타트업 관계자들이 상담 및 전시 소개 등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뉴시스
김민성 기자 kms0724@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