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한반도 정세는 동북아 국가들의 내부 정치가 미치는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4월 한국 총선, 5월 북한 당대회, 7월 일본 참의원 선거, 11월 미국 대선 등 정치이벤트들은 정세를 좌우하는 변수가 되기도 하고, 정세 변화의 변곡점이 되기도 할 것이다. 거세지는 미·중 경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한반도가 그곳에서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남·북한 최고지도자들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남·북이 새해를 맞아 주고받은 메시지는 나쁘지 않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1일 신년사에서 남북관계 개선을 강조했다. 남측에 대한 비난이 없지는 않았지만 통상적인 수준이었고, 대남 발언에서 “관계 개선”이란 표현을 다섯 차례나 썼다. 또 그는 “남조선 당국은 지난해 북·남 고위급 긴급접촉의 합의(8·25합의)정신을 소중히 여기고 그에 역행하거나 대화 분위기를 해치는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도 말했다. 8·25합의에 따른 지난달 제1차 당국회담이 결렬되긴 했지만 그것으로 끝은 아니라는 의미로 풀이됐다.
아울러 김 제1위원장은 “조선반도의 평화와 지역의 안정을 위해 인내성 있게 노력하는 것은 우리의 일관한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핵·경제 병진노선' 등 핵 능력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남측은 물론 중국, 미국 등을 향해 ‘7차 당대회를 앞두고 핵실험이나 미사일 발사 등을 시도할 뜻은 없다’는 메시지로 해석된다.
정부도 화답하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정부 당국자는 이날 “북한도 (신년사에서) 8·25합의를 비롯한 남·북 합의를 존중하고 남북관계 개선의 길을 열어나가겠다고 밝혔다”면서 “남·북간 대화의 문을 열어놓고, 평화통일의 한반도 시대를 향해 나아가겠다는 정부의 입장은 확고하다"고 논평했다. 박근혜 대통령도 신년 조찬에서 “더 이상 한반도에 긴장과 도발이 없도록 평화통일을 향해서 더욱 큰 발을 내딛는 한해가 되도록 모두 노력해 달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곧 대화국면이 펼쳐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지는 않는다. 남·북의 신년 메시지는 ‘자극하지 않겠다’에 그칠 뿐 ‘적극 대화하자’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김 제1위원장이 ‘인민생활 향상’을 유난히 강조하며 2016년의 의미를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가 열리는 뜻깊은 해”로 규정한 것으로 볼 때, 적어도 상반기에는 경제에 올인 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통일연구원은 신년사 분석보고서에서 “2016년도 국가정책의 최우선순위로 인민생활 향상을 들었고 그 성패로 당대회를 평가받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고 설명했다.
대화 의지가 크지 않은 것은 총선을 앞둔 박근혜 정부도 마찬가지다. 만약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의 실적을 총선 때 내세워야 한다면 북한의 금강산관광 재개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현 정부를 지탱하고 있는 보수층이 원하는 바가 아니어서 총선 전략이 될 리 만무하다. 남북대화를 시도했다가 허탕을 치거나 북한의 협상기술에 말려 허점만 노출하느니, 긴박한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 대화를 유보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2월 말부터 시작되는 한·미 군사훈련 기간에는 대화가 단절된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결국 남북대화가 본격적으로 재개된다면 5월 당대회 이후일 수밖에 없다. 통일연구원은 “남·북한은 상반기부터 민간교류를 점차 늘려 당대회 이후 대화국면으로 접어들 가능성이 있다”며 “북한은 당대회를 준비해야 할 뿐만 아니라 김양건 대남 비서 사망(12월29일) 이후 대남정책을 담당할 새로운 진용을 구축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대화국면이 열리더라도 남북관계를 크게 바꿔보겠다는 두 정상의 의지가 강하지 않다면 남·북은 미·중 갈등의 자장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남중국해 신경전을 통해 드러났던 미·중의 갈등은 올해 더 확대될 것이며, 그런 가운데 ‘우군’ 확보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질 것이 확실시되기 때문이다.
우선 미국은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 10개국을 끌어안아 대 중국 ‘포위 벨트’ 구축을 시도한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아시아판 유럽연합(EU)을 지향하는 ‘아세안 공동체’를 출범시킨 10개국 정상들을 오는 2월 미국으로 초청해 정상회의를 개최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미국은 또 3월 핵안보정상회의 때 한·미·일 정상회의를 열어 중국을 겨냥한 3각 군사협력을 심화시킨다는 구상도 갖고 있다. 미국이 이처럼 대 중국 견제·포위에 적극 나서는 것은 11월 대선과 무관치 않다. 여야 대선주자들 모두 대 중국 강경정책을 촉구하는 분위기 속에서 오바마 대통령도 한·미·일 3각 협력 구축이라는 ‘업적’을 남기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이에 질세라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도 신년사에서 “세계인을 향해 구원의 손길을 뻗으며 친구를 늘려나가겠다”고 선언했다. 시 주석은 새해 첫날부터 새로운 핵무기 운용부대인 '로켓군' 창설대회에 참석함으로써 미국의 군사력을 추격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드러냈다.
이같은 동북아 정세의 변수 가운데 하나는 7월 일본의 참의원 선거다. 연립여당이 참의원 의석 3분의 2 이상을 차지해 중·참의원 모두에서 개헌안 발의 정족수를 확보하게 되면 아베 신조 총리는 ‘전쟁할 수 있는 일본’을 위해 개헌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중국을 크게 자극해 동북아 긴장은 한껏 고조될 전망이다.
아울러 3각 군사협력을 빨리 구축하길 원하는 미국의 압력에 의해 도출된 한·일 위안부 합의도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이 제시해온 “피해자들이 수용할 수 있고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는 해결 방안”이란 기준에 한참 못 미치는 합의에 대한 국내의 반대여론이 커진다면 미국의 3각 협력 드라이브에 제동이 걸릴 수밖에 없다.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
2016년 새해 첫날인 1일 오전 경기도 파주시 임진각을 방문한 한 부부가 북녘땅을 바라보고 있다. 남·북은 신년사를 통해 대화 메시지를 주고받았지만, 실질적인 대화는 5월이 지나서야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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