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재판을 받고 있는 수형자에 대한 사복착용 규정을 준용하지 않은 형집행법 88조는 헌법에 불합치 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헌법재판소는 그러나 같은 규정이 민사재판 당사자로 출석하는 수형자에 대해 사복착용 규정을 준용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무고죄로 수감 중인 김모씨가 "사복착용 규정을 준용하지 않음으로써 결과적으로 사복착용을 불허한 형집행법 88조는 무죄추정 원칙에 위반된다"며 낸 헌법소원심판 사건에서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헌법 불합치로 결정했다고 4일 밝혔다.
재판부는 다만, 단순 위헌으로 결정했을 경우 발생할 법정공백을 막기 위해 해당 규정을 올해 12월31일까지 한시적으로 유지하기로 했다. 국회가 이 시점까지 개정안을 정하지 않으면 해당 조항은 효력을 잃게 된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비록 수형자라도 별도의 형사재판에서만큼은 미결수용자와 같은 지위에 있다"며 "이런 수형자가 형사재판 출석시 아무런 예외 없이 사복착용을 금지하고 재소자용 의류를 입게하는 것은 소송관계자들에게 유죄의 선입견을 줄 수 있는 등 무죄추정 원칙에 위반될 소지가 크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또 "이는 이미 수형자의 지위로 인해 크게 위축된 피고인으로 하여금 인격적 모욕감과 수치심 속에서 형사재판을 받도록 하는 것으로써 피고인의 방어권을 필요 이상으로 제약하기 때문에 실체적 진실의 발견을 저해할 우려가 크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민사재판 당사자로 출석하는 수형자에게 사복착용을 불허하는 것은 기본권 침해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민사재판에서 법관이 당사자의 복장에 따라 불리한 심증을 갖거나 불공정한 재판진행을 하게 될 우려가 있다고 볼 수는 없다"며 "심판대상조항이 민사재판에 당사자로 출석하는 수형자의 사복착용을 불허하는 것으로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되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형자가 민사법정에 출석할 때에는 교도관이 반드시 동행하기 때문에 수용자 신분이 드러난다"며 "그렇다면 재소자용 의류로 인해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이 제한되는 정도는 제한적이고, 심판대상조항이 민사재판에 당사자로 출석하는 수형자에 대해 사복착용을 불허하는 것은 청구인의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재판관 이정미·이진성·강일원 재판관은 "재소자용 의류 착용으로 소송관계자들에게 부정적 인상을 주거나, 수형자가 수치심, 모욕감을 갖고 그로 인해 소송 수행에 있어 위축감을 느끼며 어려움을 겪는 것은 형사재판인지 민사재판인지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며 위헌 의견을 냈다.
김씨는 무고 등 혐의로 기소돼 2013년 9월 징역 3년형이 확정됐는데, 구치소에 수용되어 있는 동안 자신의 별건 형사재판과 민사재판에 출석하면서 사복을 입고 법정에 출석하다가 형 확정 후 사복착용을 불허 당하자 인격권 등을 침해당했다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 사진/헌법재판소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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