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을 끌어온 삼성전자 백혈병 사태가 12일 예방대책과 관련해 교섭주체 간의 합의로 최종 타결 국면에 진입했다. 삼성전자는 이날 반도체사업장의 안전을 살피는 옴부즈만 제도를 도입키로 하고 합의문에 서명했다.
논란도 여전하다. 3가지 주요 의제 가운데 '사과'와 '보상'을 제외한 '대책'만이 합의되면서 "반쪽짜리에 그쳤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이미 사과가 선행된 데다 합의 또한 개별적으로 진행되고 있어 최종타결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삼성전자, 가족대책위원회(가대위),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반올림) 등 3개 교섭주체의 시각차와 함께 갈등의 골마저 드러나면서 최종 타결까지는 시일이 더 걸릴 전망이다.
재해예방대책 합의…반올림도 긍정적 평가
우선 삼성전자 반도체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등 직업병과 관련해 조정협상의 주체인 삼성전자, 가대위, 반올림이 예방대책에 서명한 것은 지난 9년간 해묵은 '갈등'을 넘어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는 의미가 크다. 논란은 지난 2007년 반도체공장 근로자 황유미씨의 사망으로 촉발됐다. 부친 황상기씨는 딸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리려 노력했고, 이는 영화 '또 하나의 약속' 배경이 됐다.
삼성전자는 이날 합의된 재해예방대책에 따라 ▲옴부즈만위원회 설치 ▲보건관리팀 조직 규모와 역할의 강화 ▲건강지킴이센터 신설 운영 ▲건강연구소를 통한 조사 및 연구활동 등 내부 재해관리 시스템을 보강하게 된다.
옴부즈만위원회는 위원장 1명과 위원 2명으로 구성된다. 위원장은 이철수 서울대 법학과 교수가 맡는다. 이 교수는 노사관계학회 등에서 활동한 노동법 전문가다. 나머지 위원 2명은 위원장이 선임한다. 옴부즈만위원회는 삼성전자 반도체 생산현장에 대한 종합 진단을 실시하는 권한을 갖는다. 진단 결과를 토대로 개선안을 만들고 이행 점검까지 맡게 되며, 역학조사를 통해 건강검사 체제 개선과 건강증진 대책에 대한 사항을 삼성전자에 요구할 수 있다.
이에 대해 당사자들 모두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김지형 조정위원장은 “재해예방 의제는 가장 민감한 부분이기 때문에 합의 도출 예정시한(2015년 12월24일)도 넘기며 진통 끝에 매듭지었다”며 “이를 계기로 조정 3주체의 입장차가 큰 나머지 조정 의제에 대해서도 원만한 합의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강경했던 반올림 측도 "미흡하지만 10년 가까이 끌어온 협상인 데다, 앞으로 추가환자 발생을 막는다는 점이 중요하다"며 합의내용을 존중했다.
엇갈리는 '합의' 해석…쟁점은 '사과'와 '보상'
문제점도 여전했다. 특히 직업병에 대한 '사과'와 '보상'에 대해서는 여전히 각 주체 간 골이 깊다. 황상기씨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사과와 보상에 대해서는 삼성전자 측이 대화를 거부해 전혀 논의된 바가 없다"며 "최종 합의안이 나올 때까지 삼성전자 본관 앞에서 투쟁은 계속될 것"이라고 강경입장을 고수했다.
이날 합의에 대한 해석을 놓고도 이견을 보였다. 보상과 사과 논의에서는 일절 진전이 없다는 반올림 측의 주장과 달리, 현재 보상신청자 150명 가운데 100명 이상에게 삼성전자가 마련한 보상금과 사과문이 전달됐다. 삼성전자는 권오현 대표이사 부회장이 직접 사과를 한 만큼 더 이상의 사과보다는 서둘러 보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반올림 측은 직접사과와 함께 보상 대상자에 대해서도 확대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장하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삼성전자가 타결이라고 호도하는 측면이 있다"며 "오랜기간 고통 받은 피해자들을 고려해 나머지 사과와 보상 의제도 서둘러 합의안을 도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한편에서는 반올리의 양보 없는 '떼쓰기'가 지리멸렬한 논의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가대위 측 관계자는 "합의는 양보와 타협이 핵심인데, 지난 9년간 (반올림은) 결론이 도출될 만하면 또 다른 보상을 요구해 협상을 어렵게 했다"며 "왜 일반 피해자와 반올림이 와해가 됐는지 깨달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현재까지 100명 이상이 보상을 받았고, 최종 의제인 예방대책도 합의가 됐는데 다시 사과와 보상 문제를 제기하는 건 9년 전으로 돌아가자는 얘기"라며 불편한 속내를 감추지 않았다.
삼성전자가 핵심기술 유출 우려에도 사업장 내 직업병을 종합진단하고 감시하는 옴부즈만위원회 설립을 전격 수용한 만큼 사과와 보상 문제에 대해서도 반올림 측의 입장 변화와 대타협의 정신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최종합의냐, 아니냐를 놓고 해석이 명확히 엇갈리는 가운데 삼성전자가 조성한 1000억원의 공익기금을 어떻게 분배할지, 추가 발병자가 나올 경우의 보상방법 등도 과제로 남았다.
삼성전자 반도체사업장에서 발생한 백혈병 등 직업병 문제와 관련해 삼성전자와 가족대책위원회,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등 3개 교섭 주체가 12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법무법인 지평에서 '재해예방대책'에 관한 최종 합의서에 서명했다. 사진/뉴시스
김민성 기자 kms0724@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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