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하면 중독자, 불법 약물 등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많지만, 마약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전부터 사용된 매우 효과적인 진통제이다. 무려 5000여년전 수메르인들이 사용한 기록이 있으며, 기원전 1552년 기록인 에버스 파피루스에도 마약의 효과에 대한 기록이 있다. 의료 목적으로 사용되는 마약성 진통제는 ‘아편양 제제(Opioids)’라 부른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아편은 양귀비에서 추출되는 마약성분을 의미하는데, 아편양 제제라 함은 대표적인 마약성 진통제인 ‘모르핀’과 유사한 효과를 나타내는 물질들의 총칭이다.
인체는 자체적으로 진통 등의 목적으로 모르핀과 유사한 물질을 생산한다. 엔케팔린, 다이놀핀, 엔돌핀 등이 대표적인데, 이들을 인체 내의 모르핀이라는 뜻인 ‘엔돌핀’이라고 한다. 모든 아편양 제제는 인체 내 엔도르핀 수용체에 결합하여 진통효과를 발휘하는데 Mu, Kappa, Delta, Sigma 수용체 등이 존재하며 이들 중 Mu 수용체가 진통효과와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다. 아편양 제제는 통증의 시작 부위인 말초에서 통각 수용기의 반응성을 떨어뜨려 효과를 발휘하기도 하지만 주된 기전은 척수, 뇌간 등의 통증의 상행성 경로 혹은 하행성 경로에 작용하여 통증 정도를 조절함으로써 효과를 나타낸다. 또한 뇌의 변연계 등에 작용하여 감정조절 등을 통해 통증의 인식 정도를 조절한다.
아편양 제제가 급성 열상 등에 의한 통증보다 만성통증, 신경병성 통증 등에 더 효과적인 것은 바로 이런 작용기전과 관련이 있다. 하지만 조직의 직접손상으로 인한 급성통증에 아편양 제제가 효과가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전쟁중 발생한 총상, 절단사고 등 인간이 가장 견디기 힘든 종류의 극심한 통증에 모르핀 등 아편양 제제는 어떤 종류의 진통제 보다도 효과적이다. 또한 말기 암 환자 일부는 사망 때까지 극심한 통증에 시달리는데 이 경우에도 아편양 제제의 투여가 효과적이다. 이처럼 통증 치료에 효과적인 아편양 제제이지만 때로는 중독, 금단증상, 호흡억제 등 다양한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정말 심한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전문 의사의 적절한 판단에 의해 적절한 방식으로 투여된 경우 중독 같은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의존성(Physical dependence)은 정상적인 생리학적 적응반응의 일종이며 환각, 행복감 등 정신적 효과를 기대하고 약물을 강박적으로 탐닉하는 중독과는 전혀 다른 것이며, 급작스런 투약 중단이나 감량 혹은 길항제의 투여 등 금단증상의 악화요인을 숙지함으로써 위험을 줄일 수 있다.
아편양 제제는 종류에 따라 각 수용체에 대한 결합력이 차이가 나며 이로 인한 진통효과도 큰 차이를 보인다. 뿐만 아니라 경구, 정맥내, 피하 등 투여 방식에 따라서도 발현시간, 작용시간 등에 큰 차이가 난다. 갑자기 발생한 급성 통증을 빠르게 조절하려면 모르핀 등을 정맥내로 투여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하지만 정맥내 투여방식은 속효성인 장점이 있으나 급격한 약물농도 변화가 발생하며 이로 인한 행복감(Euphoria) 발생 가능성이 크고, 반복적인 행복감 경험은 중독의 발생과 관련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장기간 지속적인 진통효과가 필요한 만성통증, 암성 통증 등의 경우에는 발현시간은 늦지만 약물농도가 안정적이며 오래 지속되는 방식인 패치형 투여 방식 등이 유리하다.
아직도 상당수의 의사들은 화끈거리거나 저리는 양상의 통증은 신경병성 통증 (Neuropathic pain), 찌르는 듯한 양상의 통증은 통각 수용 통증(Nociceptive pain) 으로 분류한다. 신경병성 통증에는 프레가발린, 가바펜틴, 아편양 제제 등을 투여하고 통각 수용 통증에는 비스테로이드성 소염 진통제(NSAIDs), 스테로이드 등을 처방한다. 하지만 전형적인 신경병성 통증 환자라도 외상에 의해 통증이 악화된 경우는 기존 약물의 증량보다는 일시적인 NSAIDs 병용투여가 더 효과적이다. 또한 통증 약상은 전형적인 통각 수용 통증이지만 NSAIDs 등에 대한 효과가 좋지 않은 경우에는 신경병성 통증이 동반되었을 가능성을 의심할 필요가 있으며 아편양 제제의 병행투여 혹은 약물교체를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좋다. 수술 후 통증, 외상으로 인한 조직손상 등 명백하게 통각 수용성 통증 발생 요인이 있는 경우 통증 정도가 심하거나 장기간 진통제 투여가 불가피한 경우도 아편양 제제의 병행투여가 도움이 된다.
치명적인 신경독인 보툴리눔 독을 주름살 펴는데 안전하게 사용하듯이 아편양 제제도 전문가가 적절히 사용한다면 어떤 종류의 진통제보다도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다.
◇ 최석민 자인메디병원 척추센터장
- 중앙대학교 대학원 의학박사
- 중앙대 부속병원 척추 전임의
- 우리들병원 전임의
- 광명성애병원 척추센터장
- 명지성모병원 척추센터장
- 명지성모병원 진료부장
- 명지성모병원 국제진료센터 소장
- 검단 탑병원 척추센터 과장
- 김해 중앙병원 척추센터 과장
- 신경외과 학회 서울-경인지회 운영위원
- 건강보험 심사평가원 자문위원
- 대한 신경외과 학회 정회원
- 대한 척추 신경외과 학회 정회원
- 대한 통증학회 정회원
- AO spine 정회원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강진규 온라인뉴스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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