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 또는 시청자인 국민은 ‘살아있는 권력’이 기획한 ‘잔혹사’를 종종 왜곡된 채로 기억한다. 사건을 처음 접하는 계기가 검찰 수사 보도이고 그만큼 임팩트가 강렬하기 때문이다. 재판과정이나 결과보다 수사 초기 검찰발로 나온 ‘~카더라’ 보도의 위력은 그만큼 대단하다. 그리고 생각보다 자주 진실을 감춘다.
가깝게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법정에 선 사건이 그 예다. 국민은 한 전 총리가 ‘곽영욱 사건’재판에서 왜 무죄가 확정됐는지, 무죄 확정 뒤 왜 ‘한만호 사건’으로 다시 법정에 섰는지, ‘한만호 사건’재판에서는 어떤 과정을 거쳐 징역형이 선고됐는지 주목하지 않는다. ‘한명숙 뇌물 5만 달러’, ‘한명숙 불법정치자금 9억원’만 기억할 뿐이다. 그 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의혹사건'이 비슷한 예다.
신간 <무죄-만들어진 범인 한명숙의 헝거게임 그 현장의 기록(강기석 지음. 레디앙)>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 30년 넘게 기자로 활동한 지은이가 ‘곽영욱 사건’과 ‘한만호 사건’ 등 총 40여 차례에 이르는 공판을 빠짐없이 기록하고 분석한 참관기다. 그는 공판 기록과 분석 결과를 증거로 이 같은 왜곡의 저변에는 ‘권력-검찰-법원-언론’으로 이어지는 견고한 메커니즘이 도사리고 있다고 말한다. 또 이 맥락에서 그가 본 한 전 총리 사건을 이렇게 규정한다.
“한명숙 전 총리를 엮은 검찰의 수법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와 닮아도 너무 닮았다. 수사 중이거나 구속 상태에 있는 비리 경제인을 통해 단서를 끌어내고, 사실을 왜곡하고 부풀리고 때로는 조작까지 하고, 수구 언론을 통해 흘리면서 인민재판식으로 범죄 혐의를 기정사실화하는 일련의 과정.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가 그랬고 한 전 총리가 연루된 곽영욱, 한만호, 두 개의 사건이 다 그랬다.”(본문 중에서)
지은이는 “검찰과 언론이 노리는, 일반 대중이 속아 넘어가기 쉬운 선입견이 검사가 유죄를 입증해야 유죄가 되는 것이 아니라 피고인이 무죄를 입증하지 못하면 유죄라는 착각”이라며 “한 전 총리에게 유죄를 선고한 논리구조가 정확히 그랬다”고 적고 있다.
그는 이 논리구조를 “1억원짜리 수표에 관한 한 전 총리의 비서와 여동생의 진술에 신빙성이 없으니 이 수표는 한 전 총리가 여동생에게 준 것이 틀림없고, 이 1억짜리 수표는 한만호가 처음 조성한 3억 중에 포함돼 있으니 한 전 총리가 3억을 받은 것이 틀림없고, 그 후 6억을 조성한 수법이 처음 3억을 조성한 수법과 똑같으니 한 전 총리가 총 9억원 전부를 받은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는 논리”라고 정리하고 있다. 1심은 이 논리를 받아들이지 않고 한 전 총리에게 무죄를 선고했으나 2심과 대법원은 유죄를 선고했다. 지은이는 이 모든 과정들을 책에 고스란히 담으면서 한 전 총리는 권력과 검찰, 사법부, 언론에 의해 '만들어진 범인'이었으며, 처음부터 ‘무죄’였다고 결론 낸다.
지은이는 전 경향신문 기자로, 뉴욕특파원, 논설위원, 편집국장, 대기자를 거쳐 초대 신문유통원장을 역임했다. 2009년에는 노무현재단 상임 운영위원으로 활동했다. 한 전 총리는 노무현재단의 초대 이사장을 지냈다.
그는 “내 참관기를 읽은 사람들 중 어떤 이는 편파적이고 선입견에 사로 잡혀 있는 것 같다고 평하기도 했다”며 “나는 한 전 총리에 대한 검찰의 표적수사가 정치탄압이라는 선입견이 있었기 때문에 일정한 편파성을 지녔을 것이다. 일정부분 맞는 말”이라고 고백했다. 그러면서도 “그 선입견은 무죄추정의 원칙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내가 부주의하거나 몰라서 사실을 빼먹었을지는 몰라도 맹세코 사실 아닌 것을 사실처럼 쓰거나 왜곡하지는 않았다”고 강조했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됐다. 1부 ‘만행의 현장, 공판 참관기’가 상당부분을 차지하지만 2부 ‘정권의 절대 무기, 정치 검찰’, 3부 ‘언론, 범인 만들기 공범’이 함께 편성되면서 ‘권력-검찰-법원-언론’으로 이어지는 왜곡의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와 설득력을 더했다. 3부는 ‘야만의 언론’ 저자인 김성재 전 한겨레 기자가 대표 집필했고, 김인회 인하대법학전문대학원 교수(한국미래발전연구원 원장)가 감수했다.
무죄-만들어진 범인 한명숙의 헝거게임 그 현장의 기록. 사진/레디앙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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