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대기업 로열더치셸(이하 '셸')이 지난 1월 시그와치가 발표한 '2015년 가장 비난받는 기업' 1위에 올랐다. 셸은 4년 연속해서 가장 비난받는 글로벌 기업으로 꼽히는 불명예를 안았다. 시그와치는 전 세계 비정부기구(NGO)의 활동을 조사하는 연구 기관이다. 매년 6000개 이상의 NGO로부터 활동 자료를 모아 요약 분석한 보고서를 발간한다. 최근에는 '2015년 가장 비난받는 기업과 가장 칭송받는 기업 목록'을 발표했다. '2015년 가장 칭송받는 기업' 1위는 다국적 식품 기업 네슬레가 차지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최근 기업의 명성과 경영전략이 NGO에 의해 좌우되는 현상을 사례와 함께 소개했다.
2015년 5월 미국 워싱턴주 벨링험 항구에서 한 환경 운동가가 로열더치셸의 시추선에 매달려 북극해 시추사업에 반대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AP
지난해 9월 다국적 석유 메이저 셸은 환경오염 논란을 일으켰던 북극해 석유개발 사업을 포기했다. 알래스카 북서쪽 연안 축치해의 석유 매장량이 개발 이익을 보장할 만큼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 연이은 유가하락의 압박도 70억달러 이상을 쏟아 부은 사업에서 철수하는 이유가 됐다. 2007년 북극 석유개발 사업을 뛰어든 셸은 2012년에 굴착시험 도중 원유 유출을 막는 오염물질 차단 돔이 훼손돼 시추 계획을 연기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5월 24년만에 처음으로 북극해 시추를 허가했으나 셸의 사업 중단 이후 입장을 번복, 북극해 석유 개발 사업에 대한 엄격한 입장으로 돌아갔다.
셸이 막대한 손실을 떠안으면서 북극해 유전개발을 포기한 데는 엄격해진 환경 규제가 큰 영향을 미쳤다. 미 어류야생동식물보호국이 바다코끼리 및 해양포유류 보호를 위해 두 시추지점 사이에 최소 15마일을 유지해야 한다고 발표했을 때 셸의 북극해 사업은 이미 탄력을 잃었다. 당초 셸이 계획한 간격은 9마일이었다. 셸은 변덕스런 환경 규제 때문에 사업이 무산됐다고 주장했으나, 텐지 웰란 미 뉴욕대 교수 겸 지속가능발전센터장은 그린피스 등 NGO의 압박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그린피스의 정밀 조사가 관련 규제를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말했다.
셸의 북극해 시추는 애초부터 환경파괴와 해양오염을 우려하는 그린피스 등 NGO의 거센 반발을 받았다. 2012년부터 축치해 시추사업을 반대한 그린피스 환경운동가들은 북극으로 향하는 석유시추선을 점거하고, 미 오리건주 포틀랜드 항구를 떠나는 쇄빙선을 막기 위해 다리에서 뛰어내리는 등 시추사업을 저지해 왔다. 지난해 9월에는 런던 로열더치셸 본사 앞에 커다란 북극곰 모형을 세우고 항의 농성을 펼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셸은 성명을 통해 북극해 시추의 중단을 알렸다.
시추사업에서 철수한 후에도 셸의 고난은 계속됐다. 나이지리아에서 일어난 석유 유출 사고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고 은폐하려 했다는 이유로 셸은 국제앰네스티와 환경인권개발센터로부터 고발당했다. 게다가 셸의 2015년 이익은 전년도에 비에 87% 감소했다. 대외적으로는 셸의 이익 급감이 유가하락 때문이라고 알려졌지만, 웰란 교수는 수년 간의 부정적인 언론보도가 기업가치에 반영되기 시작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기업이 대중의 이익과 관심에 반하는 방향으로 나가면 장기적으로 그 값을 치르게 된다" 고 강조했다.
NGO, 기업의 경영 전략을 바꾸다
셸의 사례를 보면 NGO가 기업의 명성과 가치를 좌우함을 알 수 있다. 시그와치가 발표한 '비난받는 기업' 목록을 보면, 1~10위에 에너지 회사가 5개나 들었다. 기후변화의 재앙을 거론하며 화석연료의 채굴을 반대하는 환경 단체들과 근본적인 갈등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로버트 블러드 시그와치 대표는 "NGO가 기업의 명성을 높이는 발전적인 파트너가 될 수 있지만, 지금 에너지 회사들과 NGO의 관계는 교착상태"라고 말했다.
맥도날드는 NGO의 개입을 통해 변화를 이끌어낸 성공사례로 평가받는다. 지난 2012년 맥도날드에 달걀을 납품하는 농장에서 찍은 몰래카메라 영상이 공개되면서 맥도날드의 동물복지 실태가 공개된 바 있다. 암탉들은 더럽고 비좁은 철망에 갇혀 알을 낳았고 이후 비닐봉지 안에서 질식해 죽었다. 맥도날드가 아침메뉴를 위해 연간 2조개씩 구매하는 달걀이 어떻게 생산되는지를 보고 전 세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후 맥도날드는 동물 복지 향상과 항생제 사용 절감에 나섰다. 특히 향후 10년간 좁은 철장에 갇혀 움직이지 못하는 암탉이 낳는 달걀 사용을 줄이겠다고 밝혔다. 이후에도 맥도날드는 시간제 직원의 수당 인상 등을 추진했고 지난해 칭송받는 회사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시그와치의 칭송받는 회사 목록에서 맥도날드는 북미지역 1위, 전 세계 3위에 오르며 정크푸드 회사라는 오명을 씻었다.
네슬레는 시그와치 보고서에서 2년 연속 가장 칭송받는 기업 1위에 올랐다. NGO들은 네슬레가 삼림파괴 방지 노력 등 기후변화 개선에 애쓰고 있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네슬레는 특히 태국지사의 생산공급 관리망에 있던 노예 관행을 자발적으로 알려 ‘게임체인저’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반면 2015년 비난받는 기업 5위에 오른 석유 메이저 엑손모빌은 부정직한 행위를 저지른 대가를 치렀다. 미 뉴욕주 검찰은 엑손모빌이 화석연료 사용에 따른 기후변화 영향을 사실과 다르게 조작해 투자 유치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었다는 의혹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대중이 단지 환경오염을 유발한 회사를 질타하기보다는, 환경오염 사실을 감추고 거짓 보고하는 기업에 더 분노한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다.
NGO 파트너십을 통해 기업 명성을 관리해야
다국적 식품 제조업체의 경우 생산공급 관리와 관련한 소송이 늘고 있다. 2015년 8월 소비자 단체들은 다국적 기업의 납품업자들이 동남아시아 수산 사업과 서아프리카 코코아 재배 사업에서 밀거래와 아동 노동 착취를 일삼았다고 고발했다. 같은 해 11월 월마트 주주들은 강제노동에 의존하는 월마트의 글로벌 공급망을 문제 삼으며 장부 기록을 요구했다.
식품 제조업 이외에도 코발트를 원료로 쓰는 IT 기업들도 소비자단체로부터 고발당할 위기에 처했다. 코발트는 리튬배터리에 쓰이는 주요 원료로 최근 수요가 늘고 있는 광물자원이다. 지난 1월 국제앰네스티와 아프리카자원보고는 코발트 산업에 대한 공동조사 결과를 공개했는데 전체 코발트 생산량의 절반이 콩고민주화공화국에서 생산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콩고는 불안한 정치상황 때문에 아동 노동과 밀거래가 심각한 상태다.
이들 기업들은 문제해결을 위해 NGO와 동반관계를 형성하거나 산업 전반의 협력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이후 생겨난 기업과 NGO의 파트너십은 국제적 자원분배, 인권, 지속가능성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 이슈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법으로 평가받고 있다. 2016년 시그와치 보고서에 따르면, 네슬레, 막스앤스펜서, 맥도날드 등이 이미 NGO와 협력하고 있다.
누구나 NGO가 될 수 있는 시대 열려
IT기술 발전은 NGO 활동을 촉진시키고 있다. 소셜 미디어는 사회적 이슈에 관한 여론의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대중은 온라인에서 쉽게 좋아하는 활동 단체를 찾아 후원에 참여할 수 있다. 스스로 활동가가 되기도 쉽다. SNS 등을 통해 활동 계획을 알리고 사람들의 참여를 유도할 수도 있다. 누구나 NGO가 될 수 있는 시대에 돌입한 것이다.
최근 유투브에서는 유니레버를 고발하는 동영상이 인기를 끌었다. 전 직원과 NGO 활동가가 함께 만든 이 동영상은 유니레버가 수은으로 오염시킨 인도 남서부 지역을 자체적으로 정화할 것을 '랩'으로 촉구하는 내용이다. 푼돈을 들여 하루 만에 제작된 이 영상은 300만이상의 시청 건수를 기록했다. 유니레버는 즉각 이 문제를 확실히 해결하겠다고 대응했다.
창의적인 웹사이트나 자체제작 영상, 온라인 청원 등이 쉽게 확산되는 IT문화로 인해 NGO 활동은 힘을 얻고 있다. NGO는 기업의 명성에 영향을 주는 감시자이자 파트너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NGO와 관련하여 기업은 새로운 전략으로 '명성'관리에 나설 때다.
신지선 토마토CSR연구소 연구위원 jise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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