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불행한 기억에서 눈 돌리지 말자
2016-04-20 06:00:00 2016-04-20 06:00:00
현재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중인 드라마 기억은 알츠하이머 치매에 맞서 자신의 기억을 지키려는 한 중년 변호사의 이야기다. 유명 로펌에서 잘 나가던 변호사이던 주인공은 청천벽력 같은 발병 사실에 낙담하면서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잃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세속적 성공을 위해 오랫동안 잊고자 했던 해묵은 기억들을 하나 둘씩 되살리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두뇌에 치명적인 질병인 알츠하이머가 그동안 망각된 기억을 일깨우는 계기가 된 것이다.
 
잊혀진 기억을 되살리는 것은 고통스럽다. 되짚으면 되짚을수록 과거의 잘못이 떠올라 스스로를 괴롭게 한다. 하지만 때로는 기쁘고, 때로는 부끄러웠던 사건 하나하나가 자신을 만들어온 역사이기에, 기억을 놓치지 않고 망각을 극복하려는 노력은 더더욱 절실하다.
 
우리 사회에도 아프지만 결코 잊혀져서는 안될 기억들이 있다. 가깝게는 세월호 비극에서부터, 광주 민주화 항쟁과 4 ·19 혁명, 한국전쟁, 일본군 위안부 문제 등 우리 역사와 맥락을 함께 한다. 이 기억들은 길게는 70여년 이상 흘렀음에도 현재 진행형이다. 제대로 매듭을 짓지 못하고서는 그 상처는 아물 수가 없다.
 
하지만 사회 한 켠에서는 이같은 기억을 역사의 뒤안길로 흘려보내자는 목소리도 끊이지 않는다. 계속되는 문제제기가 국민 통합과 경제 발전에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면서 발목잡기라는 폄하도 서슴지 않는다.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와 한일 청구권 협정을 체결하면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함께 넘겨버렸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세월호 진상 조사와 관련해서도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면서 의혹만 키워 왔다.
 
이런 가운데 최근 방송된 한 시사 프로그램에서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의혹이 재조명되면서 다시 한번 국민들을 충격에 빠뜨리기도 했다. 본질에 다가서지 못하고 미봉책으로 가려진 기억은 두고두고 상처로 남는다.
 
4·13 총선의 결과를 두고 정치권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여당의 압승과 야권의 궤멸이라는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수십년간 굳건하게 유지됐던 지역구도도 어느정도 균열점이 생겨났다. 지역구도 완화는 이제 피할 수 없는 추세가 될 것이다.
 
이같은 국민의 결정을 두고 여야의 해석은 제각각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의 정치가 실패했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기존 정치에 대해 사형선고를 내렸다. 선거에 참패한 여당은 물론이고, 승리를 거머쥔 야당들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번 결과를 놓고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정치인은 하나도 없다. 정치권에는 크나큰 숙제가 떨어졌다. 국민의 메시지를 수용하고 실천하지 못한다면 내년의 대선에서는 더욱 엄혹한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반대로 생각하면, 정치권에는 새로운 기회다. 새 판을 만들어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숨은 민의를 대변할 수 있는 장이 열렸다. 우리 사회의 아픔을 되새기고 이를 치유할 통합의 정치를 펼칠 수 있게 됐다. 감추고 싶은 기억을 되살려 정면으로 응시하는 것만이 불행한 과거의 악몽을 극복하는 단 하나의 길이다.
 
손정협 증권부장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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