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칼럼)자기 복제의 덫에 빠진 한류 예능
2016-05-19 14:11:19 2016-05-19 14:11:19
우리 예능 프로그램들이 해외에서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특히 중국에서의 인기가 폭발적이다. 국내 예능 프로그램들은 현지 동영상 사이트에서 가장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콘텐츠다. 포맷 수출의 방식을 통해 국내 예능 프로그램이 현지에서 리메이크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방송가에서는 "이대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머지않아 한류 예능이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유가 뭘까.
 
최근 각 방송사는 잇따라 음악 예능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프로그램마다 콘셉트는 조금씩 다르지만, 가수가 출연해 노래를 부른다는 기본 포맷은 같다. 1주일 내내 음악 예능 프로그램이 전파를 탄다. 화요일에는 JTBC '투유 프로젝트-슈가맨'이 전파를 타고, 수요일에는 SBS '보컬전쟁: 신의 목소리'가 방송된다. 또 금요일에는 MBC '듀엣가요제', 토요일에는 KBS '불후의 명곡'이 방송된다. 일요일에는 MBC '복면가왕'과 SBS '판타스틱 듀오'가 동시간대 시청률 경쟁을 펼치고 있다. 오는 7월에는 또 다른 음악 예능 프로그램인 Mnet '너의 목소리가 보여3'가 방송을 시작할 예정이다.
 
요리 예능 프로그램 역시 넘쳐난다. 현재 JTBC '냉장고를 부탁해'를 비롯해 '쿡가대표', SBS '백종원의 3대 천왕', tvN '집밥 백선생2' 등 비슷한 포맷의 요리 프로그램들이 전파를 타고 있다. 출연진도 비슷하다. 외식 사업가 백종원과 인기 셰프인 최현석, 오세득, 이연복, 이원일, 이찬오 등이 2개 이상의 프로그램에 출연 중이다.
 
이런 상황을 두고 "시청률 올리기에만 급급한 방송사들이 찍어내듯 비슷비슷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슷한 포맷의 프로그램들이 연이어 방송되다 보니 표절 의혹이 일기도 하고, 방송사 간의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정해진 제작비로 최대 효율을 내야 되는 상황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예능 제작 관계자들의 항변이다. 하지만 방송가의 베끼기식 제작 행태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다.
 
중국의 국내 예능 인력 빼가기가 가속화되면서 위기감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중국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최근 국내 유명 연출자 모시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국내 카메라 감독, 메이크업 아티스트 등에 대한 러브콜도 이어지고 있다. 중국의 자본 공세에 국내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휘청이기 시작했다. 중국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원하는 것은 자신들의 손으로 국내 예능 프로그램과 같은 질 높은 문화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이다. 우리의 제작 노하우를 바탕으로 탄생한 중국 예능 프로그램이 국내에 역수입되는 날이 머지않아 올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한때 홍콩 영화는 아시아를 호령했다. 하지만 90년대 중반부터 몰락의 길을 걸었다. '다양성의 실종'이 이유였다. 성공에 취한 홍콩 영화 업계는 베끼기식으로 비슷비슷한 작품들을 내놨고, 결국 아시아 영화팬들의 외면을 받았다. 자기 복제를 반복하고 있는 국내 예능 역시 홍콩 영화의 뒤를 따르지 말라는 법은 없다. 샴페인을 터트리고 있을 때만은 아니다.
 
정해욱 문화체육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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