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원석기자] 전문화와 세분화, 분업화는 전세계 제약업계 트렌드다. 제약산업은 전통적으로 한 회사가 신약후보 발굴에서부터 임상, 허가, 판매까지 모두 진행하는 폐쇄적 의약품 개발 전략을 보였다. 모든 제품을 자체적으로 생산하고 모든 정보를 엄격히 통제했다.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의약품 시장 성장률이 둔화되자 R&D 생산성 확대와 비용 절감이 화두가 되면서 전세계 제약업계가 개방형 구조로 변화를 맞이했다.
1990년대 블록버스터 치료제의 연이은 출시로 호황을 맞이했던 전세계적 의약품 시장은 2000년 후반 무렵부터 하향길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IMS데이터에 따르면 2000년대 7~8%에 달하던 전세계 의약품 성장률은 매년 하락해 2012년 3%까지 떨어졌다. 2013년에는 5%대로 회복했다. 성장률 하향 추세는 국내에도 마찬가지였다. 2000년대 연평균 9%대에 이르던 국내 의약품 시장 성장률은 2013년 0.5%까지 하락했다
R&D 투자 규모가 갈수록 커졌지만 오히려 생산성은 떨어졌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따르면 1996~2004년 신약 1개당 개발 비용은 9억달러에서 2009~2013년 17억달러로 증가했다. 1996~2004년 해마다 평균 36개의 FDA 신약허가가 나왔지만 2005~2010년 22개로 감소했다. 2014년에는 바이오신약이 대거 허가를 받으면서 50개로 다시 늘었다.
성장률 둔화에 따라 한 제약사가 단독으로 신약개발의 모든 것을 진행하기보다는 전문화된 집단을 활용하는 전략이 글로벌 시장에 대두됐다. 성장률 둔화에 따라 수익성 악화로 인한 비용절감 때문이다. 핵심역량에 집중하고 비핵심 분야는 아웃소싱을 하는 사업구조가 대세로 자리잡았다.
신약후보물질 탐색 및 발굴, 임상시험 등 신약개발의 일정 단계를 임상대행업체(CRO)에 아웃소싱하는 업체가 늘었다. 자사 영업부를 축소해 외주를 주는 영업·판매대행(CSO)도 성행했다. 의약품 제조 비용을 줄이기 위해 생산설비의 외주화(CMO)도 활성화됐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CRO, CMO, CSO 등 글로벌 아웃소싱 시장은 2011년 850억달러(99조5265억원)에서 2015년 1500억달러(175조6350억원)에 육박한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제약업계도 아웃소싱이 확대됐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임상대행 시장은 4000억원대로 추산되며, 40개가량의 업체가 있다. 국내 20여개사가 1000억원 시장을 차지하고 있다. 생산대행 시장은 1조원 규모로 알려진다. 업체수는 100여개 이상이다. 판매대행 시장은 소규모 수백개 업체가 산재해 있어 추산이 어렵다. 최근에는 특허분석, 제품개발기획 등 신약개발 과정의 전분야에 걸쳐 아웃소싱이 일어나고 있다. 새로운 플레이어들도 등장하고 있다.
셀트리온제약(068760)과
한미약품(128940)은 복제약 생산대행 사업에 뛰어들었다. 셀트리온제약은 지난해 3월 연면적 3만8440㎡ 규모의 오창공장을 준공하고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한미약품은 지난해 4월 1200억원을 투자해 화성 팔탄공단 내 연면적 3만6523㎡ 규모의 공장 착공에 들어갔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은 바이오의약품 생산대행을 선도하고 있다. 셀트리온은 최근 1공장의 증설과 3공장의 신설 등 총 17만리터 공장 증설을 결정했다. 증설이 완료되면 셀트리온의 생산 규모는 현재 14만리터에서 31만리터로 늘어난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현재 18만리터를 생산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2020년까지 3~4공장을 착공해 총 40만리터 이상의 생산능력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유니온약품, 한국젬스 등 7곳 의약품유통업체들은 지분을 투자를 통해 한국메딕스라는 판매대행업체를 최근 설립했다. 국내 최대 도매업체인 지오영의 투자를 받은 포커스메드코리아도 지난해 출범했다. 중국 1위 임상대행업체인 우시는 한국법인을 설립했다. 임상대행업체 엘에스케이글로벌파마서비스는 임상시험실시지원기관인 엘에스케이에스엠오를 출범시켰다. 클립스는 백신 전문 임상대행업체를 표방하며설립됐다. 디오스텍은 메디헬프라인, 일본 도쿄 CRO사와 함께 줄기세포 임상전문 서울CRO를 설립했다.
일부에선 국내 제약업계 아웃소싱이 양적으론 팽창하고 있지만 질적으론 미흡한 수준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글로벌 제약업계에선 아웃소싱이 하나의 전문영역으로 자리잡으면서 대형업체가 생겨났다. 생산대행의 경우 론자, 카탈란트, 파래바가, 임상대행은 퀸타일즈, 파렉셀, 파마수티컬, 아이콘 클리니컬이, 판매대행의 경우 이노벡스, 인벤티브헬스 등이 글로벌사로 꼽힌다. 반면 국내에선 영세화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선 CRO, CMO, CSO 등 아웃소싱 활용도가 한정적이어서 대형업체로 성장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며 "아웃소싱 업체와 지속적으로 파트너십을 통해 동반성장하기보다는 일시적으로 한두 건만 의뢰하는 하청 개념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여전히 국내 제약업계는 폐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며 "의약품 개발 과정에서 어떤 부분에 중점을 둘지 확실히 정하고 나머지는 전문업체에 맡겨 파트너십을 강화해야 진정한 의미에서 아웃소싱이 성과를 거둘 것"이라고 강조했다.
◇제약업계에 R&D 생산성 확대와 비용 절감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아웃소싱 전략이 확대되고 있다. 임상·위탁생산·판매대행 업체 등의 활용도가 크게 늘기 시작했다.(사진제공=한미약품)
최원석 기자 soulch39@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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