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기자] 은행들이 구조조정이 진행 중인 조선사 관련 대출 및 리스크 관리를 놓고 딜레마에 빠졌다.
부실 기업에 대한 리스크 관리를 철저히 해야겠지만 자칫 자구계획을 이행하고 있는 조선사가 자금조달에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적당 수준을 지키는 데 애를 먹고 있다. 조선사의 돈줄이 마를 것을 염려해 정상적인 거래를 유지해달라는 금융당국의 요구도 신경이 쓰이는 부문이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특수은행으로 분류되는 농협은행은 대우조선해양 여신등급 조정을 놓고 고심중이다. KEB하나·신한·국민 등 시중은행들은 이미 새로운 신용평가를 바탕으로 여신등급을 낮췄으나 대출만기 연장 거부 등 강력한 리스크 관리에는 나서지 못하고 있다.
농협은행은 올해 조선사에 신규 대출이나 지급보증을 자제하고 기존 여신도 조금씩 줄인다는 방침을 세웠으나 상황이 쉽지 않다. 금융당국에서는 조선사의 돈줄이 마를 것을 우려해 계속 거래를 유지할 것을 주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웅섭 금융감독원장은 이달 초 열린 시중은행장 간담회에서 "조선업을 둘러싼 시장의 불안심리가 완화되도록 협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조선사들이 자구계획을 철저히 이행하고 있으니 거래를 유지해 줄 것을 요청한 셈이다.
이 때문에 농협은행의 엄격한 여신관리도 어려워진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당국이 조선사들에 대한 금융지원을 계속해 달라고 당부하는 상황에서 조선·해운사에 대한 신규 거래를 자제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같은 맥락에서 농협은행이 대우조선의 여신등급을 '정상'으로 분류하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은 대우조선 여신등급을 '요주의'로 내렸으며, 우리은행과 하나은행도 이르면 이달 말 등급 하향을 검토 중이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대우조선이 지난해 산은과 수은으로부터 4조2000억원의 수혈을 받기로 했고, 자구계획을 이행하고 있는데 공적 기능을 하고 있는 농협은행마저 여신 등급을 내려버려면 시장의 오해를 일으키는 동시에 기업에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시중은행들의 경우 조선사와 시장의 타격이 최소화하는 선에서 대출 및 리스크 관리에 나서고 있다.
업황이 어려운 조선사에 대한 리스크를 떠안을 수는 없고, 조선사와 정상 거래를 유지해야 한다는 이해관계자들의 요청을 완전히 거스르기는 힘든 상황이다.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은 최근 삼성중공업에 대한 단기차입금 만기를 연장하면서 대출 기간을 1년에서 3개월로 줄였다. 조선업황이 좋지 않으니까 리스크 관리를 강화하자는 차원에서 이뤄진 조치라는 게 은행들의 설명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조선사들이 채권단으로부터 승인을 받고 자구계획을 이행하고 있기 때문에 대출 연장을 거부하는 강력한 대응보다는 대출 기간을 축소하는 방식으로 리스크 관리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KEB하나은행의 경우 현대중공업이 수주한 선박에 선수급환급보증(RG) 발급을 재개한다.
통상 수주 계약을 맺은 조선사가 일을 진행하기 위해선 선주로부터 선수금을 받을 때 금융회사의 보증이 필요한데, RG는 조선사가 선박을 제 때 건조하지 못하거나 파산할 경우 그 선수금을 은행이 대신 갚아주겠단 증서다.
최근 조선업 구조조정으로 시중은행들은 RG 신규 발급을 꺼리고 있는 상황이지만 하나은행이 구원투수로 나선 것이다. KEB하나은행 관계자는 "현대중공업의 주책권은행으로서 책임감이 반영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종용 기자 yong@etomato.com
◇서울 중구 다동에 위치한 대우조선해양 본사 로비. 사진/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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