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종용 선임기자] 국내 주요 은행들이 가계대출과 기업대출 50대50 비중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금융당국은 기업대출 비중을 높이도록 유도하겠다는 목표로, 주택담보대출로 대표되는 가계대출을 억제하겠다는 방침입니다. 부동산으로 쏠린 자금을 기업 투자로 돌리겠다는 취지지만 자금 마련이 시급한 실수요자의 고통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만만치 않습니다.
금융당국, 기업대출 확대 유도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KB·신한·우리·하나 등 4대 시중은행의 지난해 말 기준 자산 포트폴리오는 대체로 가계대출과 기업대출이 각각 절반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전년 대비 기업대출 비중이 소폭 오르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여전히 '반반 구조'에 가깝습니다.
KB국민은행의 자산 포트폴리오를 보면 가계대출과 기업대출은 각각 183조4000억원, 194조1000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전체 원화대출금 377조5000억원 중 가계대출 잔액 비중은 48.5%에 달합니다. 신한은행의 가계대출과 기업대출이 각각 146조4000억원, 187조8000억원으로 전체 원화대출금 334조2000억원 중 가계대출 잔액 비중은 43.7%입니다.
하나은행의 가계대출과 기업대출은 각각 141조6000억원, 176조2000억원으로 원화대출금 317조8000억원 중 가계대출 잔액은 43.7%입니다. 우리은행의 경우 가계대출 기업대출은 각각 150조5000억원, 180조4000억원으로 전체 원화대출금 333조9000억원 중 45% 비중입니다.
금융당국은 이 같은 구조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습니다. 은행권이 안정성과 수익성을 이유로 담보 기반 가계대출에 집중해 온 반면, 혁신기업·중소기업·신산업 분야에 대한 자금 공급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판단입니다.
당국은 은행의 자산 포트폴리오에 따라 자본비율 규제상 부담을 차등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가계대출 비중이 과도하게 높은 은행에는 추가 자본 적립 부담을 부과하고, 기업대출을 확대하는 경우 규제상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식이 거론됩니다. 사실상 자본 규제를 활용해 포트폴리오 조정을 유도하겠다는 구상입니다.
특히 주담대의 비용을 강제로 높여 은행 스스로가 가계대출 비중을 줄이고, 대신 기업대출이나 기술금융으로 자본을 이동시키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주택담보대출을 억제하기 위해 위험가중치(RWA)를 25%까지 추가 상향하는 방안이 대표적입니다. RWA는 은행이 보유한 자산의 위험도를 가중 평가해 산출한 수치인데요. 은행은 이 수치에 비례해 일정 수준 이상의 자기자본을 보유해야 하며, RWA가 높아질수록 은행이 쌓아야 하는 자본과 충당금 부담은 늘어납니다.
당초 주담대의 평균 위험가중치는 15% 수준이었지만 금융당국은 이미 올해 초 이를 20%로 한 차례 올린 바 있습니다. 여기서 5%p를 더 얹어 25%까지 높이면 은행들이 주담대를 내줄 때 더 많은 충당금을 감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은행 경영의 최우선 과제가 자본비율과 건전성 관리인 만큼, 규제 부담을 줄이기 위해 가계대출을 기계적으로 축소하는 선택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총량 규제와 맞물릴 경우 신규 가계대출 취급이 더욱 위축될 수 있습니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주요 은행의 자산 포트폴리오를 보면 대체로 가계대출과 기업대출이 절반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날 서울 시내 한 은행 대출 창구. (사진=뉴시스)
'포트폴리오 압박' 실효성 의문
규제 강화로 대출 문턱이 가파르게 높아지면서 실수요자들이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됩니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주택담보대출, 전세자금대출, 생계형 신용대출 등은 투기 목적의 자금과는 거리가 있다"며 "은행이 자산 비중 조정을 위해 가계대출을 일괄적으로 줄일 경우 자금이 꼭 필요한 서민·중산층이 먼저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은행 한 관계자는 "은행 입장에서 RWA 상향은 곧 비용 상승으로 이어진다"며 "늘어난 자본 확충 부담은 결국 대출금리 인상이나 한도 축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실거주 목적의 대출 신청자들에게 피해가 전가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생산적 금융 확대라는 정책 목표 달성에 급급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주담대를 조인다고 해서 그 자금이 곧바로 기업대출로 흘러갈지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나오는데요. 통상 기업대출은 담보가 확실한 주담대에 비해 부실 위험이 크다고 평가받습니다. 실제로 중소기업 대출의 RWA는 평균 44%로 주담대보다 여전히 훨씬 높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단순한 규제 강화만으로는 생산적 금융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경기 둔화와 업황 불확실성으로 기업 신용위험이 높아진 상황에서 무리한 기업대출 확대는 연체율 상승과 충당금 부담 증가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금융권 관계자는 "위험도가 낮은 주담대를 줄인다고 해서, 위험 가중치가 훨씬 높은 중소기업 대출을 무턱대고 늘리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오히려 전체 대출 규모 자체를 줄이는 보수적인 영업으로 선회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종용 선임기자 yong@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의중 금융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