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유희석기자]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결정 후폭풍이 무섭다. 주요 증시가 폭락하고 환율이 요동쳤다. 세계의 정치·경제 지형도 출렁였다. 유럽과 미국, 일본 등 주요 국가의 지도자들과 중앙은행들은 긴급히 대응책을 발표했다.
며칠 후 다행히 글로벌 금융시장은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일명 ‘브렉시트 쇼크’(영국의 EU 탈퇴로 인한 금융시장 충격)로 크게 떨어졌던 유럽과 미국, 아시아 등의 주요 증시가 낙폭을 추슬렀다. 하지만 여전히 두려움에 질린 투자자들은 안전 자산에 몰리고 있다. 이로 인해 국제 금·은 가격은 고공행진 중이다.
세계 금융시장은 앞으로 어떻게 굴러갈까. 대가들의 전망은 엇갈린다. 브렉시트가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이 크지 않다는 의견과 ‘재앙’이라는 경고로 나뉜다. 세계적인 사모펀드를 이끄는 칼라일그룹의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회장이 전자의 편에 섰고, 억만장자 투자자 조지 소로스는 후자의 입장이다.
세계적 투자자 조지 소로스(왼쪽)와 칼라일그룹의 데이비드 루벤스타인 회장. 이들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이후 시장에 대해 상반된 전망을 내놨다. 사진/뉴시스·신화사
영국은 결국 EU에 머물 것
“영국은 결국 브렉시트 결정을 뒤집고 EU 안에 머물 것입니다. 브렉시트 비용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이 필요한 데다 국민투표가 법적 구속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루벤스타인 회장은 지난달 30일 블룸버그TV와의 인터뷰에서 “영국의 정치인들이 곧 정신을 차리고 그 누구도 브렉시트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이라며 이같이 전망했다.
그는 다만 “브렉시트로 영국의 경제성장률이 낮아지고 기업 간 인수·합병(M&A)도 위축될 것”이라면서 "어느 정도의 충격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브렉시트가 확실히 ‘재앙’ 수준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루벤스타인 회장이 브렉시트의 영향력을 작게 평가한 배경에는 ‘시간’이 있다. 영국이 실제로 EU를 떠나는 시점은 몇 년 후라는 계산이 깔려있다. EU 탈퇴를 원하는 회원국이 탈퇴 의사를 EU에 알리면 그때부터 2년간 협상이 진행된다. 영국은 브렉시트 협상을 내년부터 진행하길 원하는 만큼 적어도 2018년 말까지는 여유가 있다.
루벤스타인 회장은 “브렉시트로 칼라일그룹에 단기적 충격은 없다”며 “브렉시트로 인한 결과를 알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그는 다만 “대형 은행들은 운영 방식을 바꾸고 기업들은 혹시 있을지 모를 다른 나라의 추가 EU 탈퇴에 대비해 건전한 재정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도 “브렉시트가 유럽 국가들에 미칠 악영향을 최소화할 시간은 충분하다”며 루벤스타인 회장과 비슷한 발언을 했다.
난민 문제보다 더 큰 재앙
브렉시트가 촉발한 불확실성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어떤 결말을 낼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재앙 수준의 피해도 가능하다.
억만장자 투자자 조지 소로스는 브렉시트 위험성을 난민 문제보다 심각하게 평가하는 인물이다. 그는 지난달 30일 유럽의회 연설에서 "브렉시트가 금융시장에 2007~2008년 세계 금융위기와 같은 위기를 촉발했다"며 “브렉시트가 그동안 느리게 진행되던 위기 상황을 가속화시키고 디플레이션을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로스의 예언은 앞서 여러 번 들어맞았다. 그는 브렉시트 국민투표 전 여론조사 결과 ‘잔류’ 여론이 높게 나올 때에도 ‘탈퇴’를 자신하며 “브렉시트로 파운드화 가치가 20% 이상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파운드화는 지난달 24일 31년래 최저치로 떨어지며 소로스가 맞았음을 증명했다.
그는 “유럽의 은행들이 세계 금융위기에서 완전히 회복하지도 못했다”며 “파운드화가 폭락하고 스코틀랜드가 영국연방에서의 독립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브렉시트는 심각한 위협”이라고 지적했다.
브렉시트 후 EU의 붕괴는 소로스가 가장 걱정하는 부분이다. 그는 영국에 이은 다른 회원국의 추가 탈퇴와 EU 해체는 가능성도 높다고 주장한다.
소로스는 “EU가 자신이 가진 결함에 대한 우려를 무시하면서 브렉시트를 결정한 영국인들에 불이익을 줘서는 안 된다”며 “유럽의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실수를 깨닫고 EU의 결함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모든 회원국이 EU로부터 혜택을 받는다고 생각한다면 EU는 강해질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면 결국 해체 수순을 밟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로스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이 제한적인 재정정책 때문에 다른 지역에 비해 경기 회복이 늦어졌으며 곧 다가올 경기 둔화와 씨름해야 한다”며 “독일만이 효과적인 정책을 펴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유로존이 정치적 견해 차이 때문에 유럽안정화기구(ESM)를 은행의 방어벽으로 활용하지 못한다”며 “유럽 대륙의 은행 시스템은 금융위기에서 회복하지 못했으며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소로스는 “지난번 의회에서 초청받았을 때는 난민 위기가 유럽의 가장 큰 문제였다”면서 “이는 더 큰 재앙인 브렉시트의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고 말했다.
유희석 기자 heesuk@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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