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스토마토 임은석기자]공정거래위원회가 관심이 크고 조사기간이 긴 사건들에 대해 연이어 헛발질을 하면서 공정위의 칼날이 무뎌졌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6일 공정위는 신한·국민·KEB하나·우리 ·농협·SC제일 등 6개 시중 은행들의 양도성예금증서(CD)금리 담합 의혹에 심의절차종료를 의결했다. 심의절차종료는 사건의 사실 관계 확인이 어려워 법 위반 여부를 결정하기 어려운 경우 내려지는 조치다.
담합의 증거로 공정위는 통화안정증권과 은행채 금리가 하락하는 동안 6개 은행의 CD금리는 떨어지지 않았다는 점과 은행 관계자들의 메신저로 CD발행금리 등에 대해 상호간 연락을 주고 받은 점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공정위 전원회의는 심사관이 제시한 자료만으로는 담합을 판단하기 어렵다고 보고 사실상 무혐의 처분인 심의절차종료 판정을 내렸다.
공정거래위원회가 관심이 크고 조사기간이 긴 사건들에 대해 연이어 헛발질을 하면서 공정위의 칼날이 무뎌졌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에 앞서 지난 3월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 등 대형마트 3사의 담합 의혹에 대해서도 심의절차종료를 결정했었다. 2013년 설 명절 선물세트 가격을 담합했다는 의혹을 받아 온 대형마트 3사는 경미한 위법성만 인정돼 '경고' 처분만 받다.
4월에는 1년 가까이 공들인 글로벌 IT기업 오라클의 끼워팔기 의혹에 대해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 심의과정에서 위원들 간에 핵심 쟁정에 대한 의견이 엇갈리면서 심사가 수차례 지연됐고, 스테펀 셀리그 미국 상무부 차관이 올해 1월 김학현 공정위 부위원장을 만나 공정위 조사에 대해 불만을 제기한 사실과 연관시켜 '봐주기' 의혹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로부터 한달 후인 5월 공정위는 롯데·신라 등 8개 면세점이 이윤을 높이기 위해 환율을 담합한 사실을 밝혀냈다. 그러나 이때도 공정위는 면세점 업체가 얻은 부당이득이 미미하다는 이유를 들어 '시정명령'에 그쳤다.
이처럼 올해들어 CD금리 담합의혹, 오라클 끼워팔기 의혹 등 4건의 굵직굵직한 사건들에 대해 무혐의나 심의절차종료 판정을 내렸다. 3월 이후 거의 매달 한 건씩 이런 판정이 나오면서 공정위의 조사 기능이나 역할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다.
또한 법원이 '공정성 여부에 초점을 맞춰야하는 공정거래 사건'에 형사재판식의 엄격한 증거를 꼼꼼하게 요구하는 경향이 강화되고 있는데도 공정위가 '모 아니면 도'식의 무리한 조사로 경제적·사회적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윤철한 경실련 사무국장은 "담합이라는 것 자체가 확실한 증거 확보가 어려운 점도 있지만 기업들이 공정위의 결정에 대해 관행적으로 소송을 하다보니 의결을 하는데 소극적이 된 것 같다"며 "또한 위원들의 성향에 따라 의결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은데 좀 더 공정하고 믿을 수 있는 위원회 구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공정위 관계자는 "법원에 가서 패소하는 줄이기 위해 1심 기능을 강화하긴 했지만 그로 인해 무혐의나 심의절차종료 판정이 크게 늘지는 않았다"며 "늘어난 것 처럼 보이는 것은 세간의 관심이 쏠리는 사건들이 잇따라 무혐의나 심의절차종료로 의결이 났기 때문인 것 같다"고 설명했다.
세종=임은석 기자 fedor0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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