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재영기자] 저유가의 늪이 생존을 위한 구조조정 몸부림마저 힘들게 하고 있다. 자산 매각과 공적자금 지원 등으로 유동성 문제를 해결해도, 저유가 기조가 지속되는 한 근본적 업황 개선은 요원해 보인다. 해운을 시작으로 조선, 철강 등 후방산업들마저 연쇄 도산 위기로 몰아넣은 저유가의 악몽은 진행형이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20일 “저유가는 수주 가뭄을 낳고, 이는 또 다시 부실을 키운다"며 현재 강도 높게 진행되는 구조조정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든든한 지원군이 있는 삼성중공업조차 예외는 아니다. 삼성중공업은 내년 상반기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차입금이 3조원을 넘어서는데, 현금 유입은 적자다. 1조원대 유상증자로 숨통을 터도 업황이 회복되지 않으면 시간을 버는데 불과하다. 관건은 유가다.
구조조정이 한창인 조선·해운, 건설·플랜트, 철강 등은 전·후방으로 얽혀있다. 삼성물산의 경우 지난달 알제리 복합화력 프로젝트가 중단됐다. 장기화된 저유가로 중동 발주처의 재무사정이 나빠진 게 직접적인 원인으로 지목된다. 전체 영업이익 중 3분의 2를 차지하는 건설부문이 플랜트 수주 부진에 발목을 잡혔다. 유가 하락으로 중동지역에서 수주가 급감해 연간 플랜트 수주 목표액인 4조8000억원의 절반도 어려워 보인다. 발주처들의 원가인하 압박도 거세져, 조선이 밟았던 저가 수주를 답습할 수도 있다.
프로젝트가 중단되면 관련 물동량도 줄어 해운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이는 선박 발주 감소를 낳는다. 삼성중공업은 지난해 10월부터 이달까지 11개월째 신규 수주가 제로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도 연간 수주 목표에 크게 미달한다. 건설, 조선 등 전방산업의 부진으로 철강업계의 고심도 깊어졌다. 후판 수요의 76%를 차지하는 조선의 수주절벽에 철강은 공급처를 잃었다. 저유가로 에너지개발 수요가 위축되면서 강관은 상반기 수출물량이 전년 대비 27% 감소했다. 악순환이다.
해외경제연구소가 중동지역 전문지 MEED의 집계를 인용한 바에 따르면 올 들어 7월까지 GCC 6개국의 전체 프로젝트 계약 체결 누계액은 575억8000만달러다. 이는 당초 연간 전망치의 41.1% 수준이다. 특히 7월 계약 체결액은 전년 동월의 33.6%에 그쳐 저유가로 재정수지가 악화된 영향이 본격화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래에셋대우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내 기업의 해외 육상플랜트 수주액은 74억40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51% 급감했다. 대중동 수주액이 47억2000만달러로 지역별 감소폭(-32%)이 가장 컸다.
재계 관계자는 “자산 매각이나 생산량 감축 등 일시적인 유동성 대책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적극적인 M&A 등 산업 차원의 근본적인 구조개편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해외 기업들의 합병효과를 교훈 삼아 국내 기업들도 관련 논의를 위해 정부와 함께 전향적으로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 혈세로 마련된 공적자금의 무분별한 투입도 보류돼야 한다.
이재영 기자 leealive@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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