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황인표기자] 20일은 시중은행 월급날이다. 금요일까지 겹쳐 은행원들에겐 기분좋은 하루가 될 것 같지만 뱅커들의 표정은 어둡기만 하다. 금융권 전반에 몰아닥친 임금 삭감 분위기에 이전 보다 한층 얇아진 월급 봉투 탓이다.
◇ "체감 삭감율은 10% 이상"
A은행은 올해 연봉 5% 삭감에 연월차 의무사용 지침을 내렸다. 다른 때 같으면 노조에서 항의라도 했겠지만 금융위기 여파 때문에 사측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설상가상 연봉이 삭감됐는데 분기마다 받던 연월차 수당마저 줄어 체감 임금 삭감율은 10%에 달한다.
A은행 김 모 은행원은 "연월차 수당으로 3개월마다 200만원 쯤 받았는데 이번달은 30만원만 받았다"며 "연말이라 각종 행사도 많은데 월급날이 되도 그저 슬프다"라고 토로했다.
◇ "집에서 쉬면 눈치보여..."
B금융지주회사 황 모 부장은 "금융지주는 아예 연월차 수당도 없다"며 "거의 강제 연차로 집에서 쉬고 있으면 집사람 눈치만 보인다" 고 말했다.
"얼마나 월급이 줄었나?"라는 질문엔 "아직 확인도 안해봤다. 부인한테는 이미 지난 달에 '월급 줄어든다'고 말해놨다"며 "주택대출, 학원비, 공과금 등 나가는 돈은 똑같은데 들어오는 돈이 줄어드니 뭐 기분이 좀 그렇다"고 씁쓸해했다.
◇ 신입사원 "그저 붙어 있는게 어디..."
은행에 올해 입사한 이 모씨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 C은행에서 여신을 담당하고 있다. 바로 윗기수와 연봉 차이가 꽤 나는데다 연월차 수당까지 10% 줄었다.
이 씨는 "아직 놀고 있는 주위 친구들 생각하면 '직장 다니고 월급 나오는 게 어디냐'라고 자위한다"고 말했다.
◇ "월급 동결? 최고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외국계 은행 노조의 전략(?)이 새삼 부러움을 사고 있다.
외국계인 D은행 노조는 지난 5월 임금 협상을 앞두고 '임금 인상'을 전면에 내걸었다. 금융위기가 진행중이고 앞날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임금 상승'을 들고 나오니 당연히 경영진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몇차례 협상 끝에 노조는 '동결'을 주장했다. 사측은 손해 볼 것 없다는 생각에 이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 은행의 노조위원장인 K씨는 "3월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삭감 얘기를 사측이 들고 나올 것 같았다"며 "일부러 '상승'을 먼저 주장한다음 '동결'로 유도했다"고 말했다. 노조의 기민한 협상전략이 빛을 발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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