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의 국정농단으로 나라가 시끄럽다. 설마 하던 일이 현실로 벌어졌다는 사람들도 있고 진작부터 이런 사달이 날줄 알았다는 사람도 있다. 정치이야기는 하지 않겠다는 사람들도 연일 방송이나 신문, 인터넷의 메인뉴스를 외면하기란 쉽지 않다. 혹자는 현명하게 이번 기회를 통해 리더십의 중요성을 되새겨 보면 좋겠다고 한다.
리더는 나라던 가정이던 집단이나 조직의 운명을 좌우한다. 개인이기는 하지만 부여받은 힘이 크다. 리더는 흔히 ‘장(長)’의 위치에 있다. 이들 중에는 자신을 희생하고 결단력과 공명심으로 집단의 융성과 화합을 이루는 리더가 있는 반면 사익(私益)과 명예만을 챙기고 사라지는 리더도 있다. 이러한 양극의 모습만 있지는 않다. 적당히 현상을 유지하면서 평화롭고 안정된 분위기를 이끌며 주어진 역할에 충실한 리더도 많다. 즉 개인의 개성과 주어진 환경에 따라 리더의 역할도 다르다.
작금의 사태는 리더의 주변관리에서 비롯되었다. 특히 시스템과 팔로워 십(Followership)에 대한 복합적 고려가 부족했다는 점이다. 청와대와 정부의 공식적인 시스템조직보다 사적인 관계의 사람들을 가까이 했다. 그러니 공익과 사익의 경계가 모호해 최근의 사태에서 보듯 공권력을 이용한 농단(壟斷)이 가능했던 것이다. 농단의 뜻은 높은 언덕에 올라가 시장에서 가장 몫이 좋은 자리를 찾아 차지하고 거기에서 이익을 독차지한다는 뜻이다. 요즘의 박대통령을 둘러싼 사람들의 행태가 바로 그것이다.
중국 한나라의 환관 10명을 일컫는 십상시(十常侍)의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지만 명나라의 환관 왕진의 이야기는 더욱 심하다. 환관은 궁정에서 사역하는 내관이나 궁문을 지키는 수위, 궁중의 문서전달이나 소식을 알리는 전명, 왕이 외부로 출행하는 경우 수행원의 역할을 하는 거세된 남자를 일컫는다. 왕의 국가통치에 직접 관여하는 인물이 아니었다.
환관 왕진은 황제의 비위를 잘 맞추고 언변이 좋아 궁중의 실세가 되었고 이를 계기로 재산축적과 전횡을 일삼았다. 명나라 황제 영종은 1449년 몽고가 조공에 반발하여 국경을 넘어오자 여러 대신과 장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왕진의 말을 듣고 직접 전쟁에 나섰다가 포로가 되고 말았다. 이 전쟁의 과정에서 왕진은 군대가 자신의 고향을 지나면 식량보급 등의 부담으로 피해를 입을 것이 우려되자 무리한 이동경로를 택하도록 했다. 결국 토목보라는 요새에서 수만 명이 떼죽음을 당하고 전쟁에 패하였다. 왕진도 피살당했다.
이러한 사례에서 나타나는 것은 시스템이 무시되고 정실주의(Cronyism)나 연고주의(Nepotism)에 갇혀 여론을 소홀히 했다는 점이다. 정실주의는 친구나 지인에게 직업이나 권한을 주고 이익을 챙기도록 하는 것이다. 연고주의는 혈연에서 시작되었지만 학연이나 지연으로 전이된 것이다. 양자가 모두 파벌주의(Factionalism)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다. 파벌주의는 불필요한 갈등과 싸움의 근원이 된다. 소수집단의 이익을 실현하는데 크게 기여하지만 그 최후는 당사자들과 주변을 불행하게 만든다. 조직이나 구성체의 합리적인 운영을 어렵게 하며 능률을 저해한다. 폐쇄적인 정보공유로 세상에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안으로 곪는다. 이러한 것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횡행해왔다.
특히 권력주변의 부적절한 자리의 사람들이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문제를 일으키자 명나라 태조는 환관의 국정개입을 차단했다. 서양에서도 소수 귀족이 이러한 행태가 빈번했다. 영국에서는 1536년 크롬웰이 추밀원을 만들고 아예 추밀원령(Order of council)을 통해 사적인 세력의 전횡을 막고자 1855년 독립적 인사위원회를 설치했다. 그 후에는 공개경쟁시험과 계급단위의 채용시스템을 도입했다. 160년 전에 공공의 약속을 시스템으로 정하고 이를 모두가 모니터링을 할 수 있게 하여 지켜나가도록 한 것이다. 법과 규정에 어긋난 비공식적인 공무는 범죄행위가 되게 한 것이다.
우리사회는 지금 리더십의 위기에 처해있다. 많은 집단과 조직 - 그것이 크던 작던 - 즉, 사람이 모인 곳에는 리더가 있기 마련이다. 갈등과 대립도 있다. 공동체에서 리더의 가장 큰 역할은 소통과 화합이다. 리더는 먼저 모든 구성원과 고객에 귀를 기울이는 선제적 소통을 하는 게 필요하다. 구성원의 역할과 책임을 명확하게 하는 것도 혼란방지와 성과를 높이는데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다. 특히 리더는 책임을 지는 자리다. 따라서 이중 삼중의 검증과 스크린을 통해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과 결정을 해야 한다. 리더십은 평소에 딱히 인식하기 어려운 덕목이다. 그래서 최근의 사회적 혼란을 계기로 잠시 리더십을 되새겨 본다.
이의준 한국벤처캐피탈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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