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 원료로 국한됐던 약초가 대중화의 길을 열고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에 따르면 한국산 약초는 미국 시장에서 2010년 이후 연평균 4% 이상 꾸준한 성장을 기록 중이다. 자연 친화적인 대체식품의 수요가 늘면서 약초에 대한 주목도가 달라졌다. 이는 농가들의 역할에 기인한다. '규모의 경제'를 통한 대규모 재배보다, 품질을 먼저 생각하는 농가들의 고집과 땀이 이뤄낸 결과다. 특히 대규모 농가들을 중심으로 비교적 재배하기 쉬운 작물에 전념하는 현 상황에서 이 같은 결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실, 약초 농가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손이 많이 가는 약초들을 회피하려는 심리는 농가의 경제적 상황과 맞물리면서 시장의 고민으로 등장했다. 현실과 이상의 괴리를 주목한 두 사람이 있다. 답은 '판로'로 모아졌다. 약초 농가의 판로를 지원해 이들이 지금처럼 정성을 담은 약초를 생산하길 바라는 마음이 통했다. 뜻을 같이 한 농가 17곳이 모였고, 2013년 이풀약초협동조합이 만들어졌다.
[뉴스토마토 임효정기자] "판로 걱정 없이 건강한 약초를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노봉래 이풀약초협동조합 이사장이 말하는 조합 설립 배경이다. 이풀약초협동조합(이풀)은 전국의 17개 약초 농가들이 조합원으로 있는 사회적기업 단체다. 중심에는 노봉래 이사장과 문정희 이사가 있다. 이들은 농가들이 생산한 약초를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두 사람은 지난 10년간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비영리단체 한국생약협회에서 농가 인증 등 약초 관련 일을 해왔던 전문가다. 현장은 치열한 삶의 터전이었고 고민의 장이 됐다. 특히 농부들이 힘들게 갖은 정성으로 약초를 생산해도 시장에서는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풀은 '이로운 풀'의 줄임말이다. 소비자에게 다가가기 위해 브랜드는 필수였다. 이풀이란 브랜드를 만들기까지 긴 시간 고민을 했다. 문정희 이사는 "약초의 경우 소비자들은 다양한 원료를 조금씩 구매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생산자 중심에서 판로를 개척하기가 어려운 분야 중 하나"라며 "때문에 생산자와 소비자들 연결하는 중간 지점에 믿을 만한 브랜드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브랜드 선정과정에 심혈을 기울였던 이유다.
노봉래 이풀약초협동조합 이사장(오른쪽)과 문정희 이사. 사진/뉴스토마토
약초와 소비자간 벽을 허물다
농가들의 판로 걱정을 없애겠다는 이풀의 미션을 달성하기 위한 첫 걸음은 '수요'였다. 새로운 시장이 절실했다. 노 이사장은 "약초 하면 주로 한약의 원료만 떠올리는데 이는 고정관념"이라며 "다양하게 쓸 수 있음에도 한약 원료라는 생각에 외연이 위축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약초를 경험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모색했다"며 그 일환으로 디자인을 주목했다. 쓰기 간편하게 소포장으로 쉬운 구매의 길을 열었다.
이풀은 약초로 티백 차도 개발했다. 현재 온라인과 오프라인 매장에서 판매 중이며, 계속해서 신제품도 개발 중이다. 커피의 대체품으로 주목받는 등 시장 반응도 좋다. 특히 해외 바이어를 초청하는 박람회나 회의에서 약초 차의 인기가 매우 높다는 설명.
이풀은 차 이외에도 다른 제품들을 개발해 더 많은 소비자들이 약초를 찾고, 접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약초와 소비자 간의 간격을 터 주면서 수요는 눈에 띄게 늘었고, 이는 약초 농가에게 결실로 돌아오고 있다는 점이 자신감이 됐다. 노 이사장은 "아직 제조 설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포장을 달리하고 차를 만드는 것에 그치지만 앞으로는 다양한 종류의 제품을 만들어 약초의 활용도를 높이겠다"고 말했다.
관건은 '소비자와의 접점'
사실, 사업 경험이 전무했던 두 사람에게 판로 확보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조합원 구성까지는 지난 10년간 약초 농가들과 꾸준히 접촉해 왔기 때문에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소비자들에게 약초를 알리고, 판로를 개척하고, 제품을 판매하는 일은 모두 다 장벽으로 다가왔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바를 알아야 했다.
"처음에는 농가들만 모으면 수요가 저절로 따라올 것이란 이상적인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소비자들은 이 같은 제품이 있는지, 그것조차 모르더라고요. 막막했습니다." 문 이사는 당시의 어려움을 회상했다.
두 사람은 발로 뛰었다. 사회적기업들을 대상으로 하는 홍보장터마다 빠지지 않고 참여했다. 1년간 주말도 없이 여러 행사장을 찾아다니며 제품 홍보에 주력했다.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농업컨설팅업체 `쌈지농부`가 이풀의 약초에 관심을 가졌으며, 그 결과 쌈지농부가 운영하는 매장에 이풀 제품을 판매키로 했다. 또 이풀의 약초를 눈여겨본 해외 업체가 두 차례에 걸쳐 이풀의 약초 차를 구매하며 수출길도 열었다.
현재 이풀의 제품은 생협 9개 매장과 쌈지농부 10여개 매장 등에서 소비자들과 만나고 있다. 향후에는 직매장을 마련해 소비자들의 가격 부담도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문 이사는 "지금은 이풀을 알리기 위해 중간채널을 이용할 수 밖에 없는 구조"라며 "좋은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소비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직매장을 마련할 계획이고, 이를 통해 유통시장의 거품을 뺄 것"이라고 강조했다.
약초 체험프로그램 마련
그렇다고 조급함을 보이진 않고 있다. 이풀 설립 4년 차, 아직 이렇다 할 수익은 없지만 그는 멀리 내다보고 있다. 노 이사장은 "기존 시장에서 수요를 뺏는 게 아니라 약초에 대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한다는 생각으로 단기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며 "지향하는 가치를 함께 나누면 그 안에서 수요는 발생하게 되고, 자연스레 수익으로 연결될 것"으로 자신했다.
이풀은 내년에 약초 체험프로그램을 마련해 소비자들에게 약초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예정이다. 이풀공방(가칭)을 통해 소비자가 직접 약초를 섞어 차를 만들어 볼 수 있도록 기획 중이다. 문 이사는 "약초는 실생활에서 활용할 수 분야가 많은데, 많은 사람들이 방법을 잘 모르고 있다"며 "작지만 프로그램을 만들어 약초의 의미를 알리려고 한다"고 말했다.
올해 고용노동부로부터 사회적기업으로 인증 받은 것도 기회다. 공공기관의 조달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노 이사장은 "제품의 진정한 가치는 소비자들이 알아줄 것이라 믿는다"며 "한 걸음씩 천천히 가도 늦지 않다. 어떤 길을 걸어가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풀협동조합원은 17농가가 조합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이풀
임효정 기자 emy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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