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광표 기자] '사위는 백년손님'이라는 옛말이 있다. 이 말엔 영원히 대접해야할 귀한 손님이지만 결국 손님일뿐 가족은 될 수 없다는 속뜻도 담겨 있다. 그러나 최근 유통·식품업계 오너가 사위들은 '백년손님'을 넘어 '백년기업'의 주역으로 재평가 받기도 한다. 사위들이 경영 전면에 나서 기업의 성장을 주도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이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의 사위인 안용찬 부회장은 최근 6개월 사이 37억원 규모의
제주항공(089590) 자사주를 사들여 눈길을 끌고 있다. 그룹 안팎에선 그가 대표로 있는 제주항공 실적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 자사주 매입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 안 부회장은 애경그룹의 사위로 인연을 맺은 뒤 회사 성장을 주도했다. 애경그룹은 채형석, 채동석, 채승석 삼형제가 각각 그룹 총괄, 유통백화점, 부동산·골프장을 맡고 있다.
이런 가운데 장영신 회장의 유일한 사위이자 그룹의 생활·항공 부문을 도맡고 있는 안 부회장의 경영실적은 단연 돋보인다. 그는 장 회장의 외동딸 채은정 부사장의 남편이다. 연세대 졸업 후 미국 펜실베니아대 와튼스쿨에서 MBA 과정을 밟은 그는 유학 시절 잠시 귀국했을 때 당시 안 부회장과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던 채은정 부사장 외숙모의 주선으로 채 부사장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됐다.
안 부회장은 유학을 마친 후 1987년 애경산업 마케팅부에 입사했으며, 애경화학 이사, 애경유화 전무, 애경 전무까지 거쳤고 1995년 애경산업 사장으로 취임해 남다른 수완과 경영능력을 발휘해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시키는 반전을 주도했다.
저비용항공사(LCC) 설립을 적극 추진해 제주항공을 세운 것도 안 부회장의 의지다. 초반에 제주항공 재무 상태가 악화돼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그룹을 설득해 여러 차례 유상증자를 시행하면서 위기를 넘겼다. 안 부회장의 추진력 속에 제주항공은 국내 3위 저비용항공사로 대형 항공사를 바짝 따라붙고 있다. 이 같은 실적을 바탕으로 안 부회장은 애경 오너가 세 아들과 함께 그룹 후계구도의 변수로도 거론된다.
문 부사장은 미국 시카고대 경제학과와 펜실베니아 와튼스쿨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SK텔레콤(017670) 기획조정실서 근무한 경험이 있고, 2001년 소프트뱅크코리아 차장으로 근무하던 중 경기초등학교 동창인 정유경 신세계 백화점부문 총괄사장을 만나면서 새로운 인생이 시작됐다.
결혼 이후 신세계 경영지원실 부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2005년 신세계 I&C 상무로 승진한 뒤 부사장 자리에 올랐다. 탄탄대로를 걷고 있는 그는
이마트(139480) 해외사업총괄 부사장을 거쳐 2014년 말부터는 신세계인터내셔날 부사장으로 근무를 하고 있다. 그는 전략적인 사고, 국제적인 감각, 추진력을 고루 갖춰 정용진 부회장으로부터 해외사업 적임자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는 후문이다.
사위가 장남보다 더 월등한 경영성과를 보이는 사례도 있다.
크라운해태제과 윤영달 회장의 딸 자원 씨의 남편인 신정훈 해태제과 사장은 식품업계 내 가장 주목받는 스타CEO로 부상했다. 2005년 크라운과 해태제과 합병 당시 윤영달 회장은 아들 윤석빈 씨에게 크라운제과 대표이사를 맡기고, 사위에게 해태제과를 맡겨 장남과 사위간 각자 경영 체제를 구축했다.
신정훈 사장은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공인회계사 출신으로 미국 미시간대학에서 MBA를 취득한 후 삼일회계법인과 글로벌 경영컨설팅업체인 베인앤컴퍼니에 근무하며 크라운제과의 해태제과 인수작업까지 주도했다. 인수작업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윤 회장의 신임을 얻었다. 이후 해태제과 관리재정본부장으로 핵심 역할을 수행했으며 지난 2008년 '멜라민 파동'으로 홍역을 치룰 당시 성공적으로 위기를 극복해 경영능력을 입증한 바 있다.
특히 신 사장은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신제품을 개발에 적극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허니버터칩'을 탄생시킨 것도 신 사장의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산물이다.
자동차 부품업체 대경T&G에서 장인 박용수 회장과 함께 경영에 참여해오다 위스키 시장에 뛰어든 김동욱 골든블루 대표도 주류업계 대표적 사위 경영인이다.
만년 3위 골든블루를 5년만에 2위로 끌어올리며 업계에 파장을 일으킨 인물이기도 하다. 2011년 골든블루를 인수한 후 글로벌 위스키 기업들이 시장을 장악한 상황에서 토종 위스키는 태생적 한계로 경쟁 자체가 버거운 상황이었다. 그러나 김 대표는 도수가 낮은 술을 즐기는 이들이 늘 것이라는 예지력을 앞세워 저도 위스키 시장을 주도했다.
또 인수 초기 전국을 무대로 무리한 마케팅을 펼치기보다 부산, 울산 지역에 마케팅을 집중했고 가능성을 엿본 그는 전국을 호령하는 토종 위스키 브랜드로 성장을 이끌었다. 그 결과 골든블루는 현재 윈저와 임페리얼의 양강구도를 깬 첫 사례로 기록되며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보수적인 기업문화를 지닌 유통과 식품업계에서 사위가 경영 전면에서 활약하는 사례들은 당연히 돋보일 수 밖에 없다"며 "과거 철저히 장자승계 원칙을 고수하며 사위 경영을 배제하던 기업들이 많았던 게 사실이지만 경영능력만 갖추면 소위 '백년손님'에게도 가업을 맡기는 사례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왼쪽부터 안용찬 애경그룹 부회장, 문성욱 신세계인터내셔날 부사장, 신정훈 해태제과 대표, 김동욱 골든블루 대표. 사진/ 각 사
이광표 기자 pyoyo8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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