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차현정 기자] 바이오 투자 몰입도가 높던 벤처캐피탈(VC) 업계가 연초 이후 '한류' 콘텐츠 투자로 눈을 돌리고 있어 주목된다. 콘텐츠 업계가 지난해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과 한한령(한류제한조치) 악재에 무관하게 실적을 올린 반면 바이오 시장이 위축된 점도 올해 초 VC 업계의 투자방향을 바꾼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콘텐츠 투자 급증으로 확인된 최근 집계는 바이오에 쏠렸던 지난 몇 년과 크게 뒤바뀐 판세를 보여준다. 3일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올해 들어 2월 말까지 VC 업계가 유통·서비스와 영상·공연·음반 분야에 투자한 금액은 각각 463억원, 425억원이다. 이는 역대 최고 수준으로 정보통신기술(ICT) 서비스(413억원)와 ICT 제조(169억원), 바이오·의료(184억원) 투자규모가 예년만 못 미친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ICT 관련 분야와 바이오·의료 쪽은 최근 수년간 지속해 VC 투자규모 1순위를 다퉈왔다. 실제 2014년 투자규모 최상위는 바이오 분야(2928억원)가 차지했다. 이듬해엔 ICT 서비스(4019억원)였다가 지난해 다시 바이오(4686억원)가 가장 많은 투자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던 바이오와 ICT의 처지가 뒤바뀌었다. 올 들어 VC가 기록한 신규투자 규모도 이런 모습을 반영한다. 2월 말 기준 VC는 191개사에 2327억원을 투자했으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 162개사에 2625억원을 투자한 것과 비교해 11.4% 감소한 수준이다. 업종별로는 유통·서비스가 19.8%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영상·공연·음반 분야(18.3%)가 그 뒤를 잇는다. 지난해 두 업종의 전체 투자비중이 24.1%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연초 이후 투자규모에 큰 변동이 감지된다. 반면 작년 21.8%에 달하던 바이오·의료 신규투자 비중은 7.9%로 쪼그라들었다. 지난해 18.8%던 ICT 서비스 업종 투자비중도 2월 말 기준 17.8%로 소폭 감소했다.
유통·서비스와 영상·공연·음반 분야 투자가 바이오 영역 금액 규모를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류 콘텐츠 투자 확대가 바이오 분야 투자 축소로 이어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벤처캐피탈 업계 관계자는 "콘텐츠와 모바일앱 등 유통·서비스 분야는 기존 VC업계의 선호아이템이고 올해는 특히 영상·공연·음반 분야로 투자 쏠림이 이어진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일부 VC가 콘텐츠 투자로 큰 규모의 성과를 거두며 투자사들의 기대감을 키운 결과라는 설명이다.
반대로 바이오 투자에 대한 실망감은 바이오 투자 위축의 배경이 됐다. 실제 지난해는 제약 바이오 업계의 신약 개발 어려움을 재확인한 해였다. 국내와 국외 바이오업체의 연구개발(R&D) 측면에서 긍정적인 뉴스보다 부정적인 임상결과 뉴스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박사는 "바이오 투자비중이 줄어든 것은
한미약품(128940) 사태 이후 바이오 산업에 대한 평가가 보수적으로 돌아선 것이 영향을 미쳤다.
삼성바이오로직스(207940) 상장 이후 바이오 산업의 구도가 대기업 중심으로 재편된 것도 VC 투자 축소 이유가 된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콘텐츠 투자가 늘어난 것과 관련해선 '도깨비 효과'에 있다는 평가를 내놨다. 그는 "드라마 도깨비로 한류 드라마와 음악에 대한 관심도가 커졌고 VC 투자 확대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해석된다"고 진단했다.
한편 VC 업계의 업력별 신규투자 비중은 설립 3년 이하인 초기가 38.9%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후기(설립 7년 이상)는 27.6%, 중기(5년 이상)는 33.5%로 나타났다. 어느 정도 업력을 쌓은 기업보다는 시장에 진입한 지 얼마 안 된 기업 위주의 투자를 선호했다는 해석이다. 투자 유형별로는 우선주가 51.5%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했고 이어 프로젝트투자(19.3%), 보통주(14.7%), 주식관련사채(CB, BW)(10.4%) 순이다.
차현정 기자 ckck@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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