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미래연구원)"미래 먹거리 유전자 편집기술, 선점 노력 시급하다“
시장 급팽창, 2014년 2억 달러→2022년 23억 달러…정부 차원의 윤리적 검토는 필요
2017-06-07 06:00:00 2017-06-07 06:00:00
최근 유전자 편집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인공지능(AI)과 함께 향후 중요한 미래 먹거리로 각광을 받고 있다. 그 발전 속도는 놀라울 정도로 빨라지고 있고, 우리의 생활환경은 물론 국가산업 전반에 엄청난 변화를 수반할 가능성도 높다. 이러한 변화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할 경우 국가 산업경쟁력의 후퇴를 초래할 것이란 점에서 범국가 차원의 대응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오태광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정책연구위원(전 원장)의 진단과 처방을 들어 본다.<편집자>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현재의 기술의 예를 들자면 많은 사람들이 인공지능(AI)을 이야기한다. 지난해 인공지능 알파고(AlphaGo)가 프로 바둑기사 이세돌 9단와의 대국에서 4대1로 승리한 후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급속하게 커졌고, 과학기술분야 뿐만 아니라 경제, 금융, 일자리, 심지어 예술분야까지 사회 전반적으로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이러한 인공지능 외에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가장 가능성이 높은 기술을 들자면 유전자 편집(Genome Editing) 기술이 언급된다. 다른 말로 ‘유전자 가위’라고도 한다. 우리가 가위로 색종이를 잘라내 다른 곳에 붙이듯이 원하는 위치의 유전자를 잘라내 다른 유전자에 붙일 수 있도록 하는 편집 기술이다.
 
생물의 유전자를 무작위로 가위질하면 생명체가 살아갈 수 없기 때문에 생물 유전자를 조작할 때는 필요한 부분만 정확히 잘라주어야 한다. 나쁜 유전자는 정확하게 잘라서 제거하거나 또는 조금 잘못된 부분은 잘못된 부위를 다른 유전자로 바꾸어 넣는 작업이 우리가 글을 쓸 때 편집(Editing)하는 방식과 비슷해 유전자 편집이라고 불린다. 편집을 할 때 잘못된 부분만 정확히 교정해야 하는데 자칫 잘못해 문단 하나를 완전히 제거하거나 전혀 다른 문장을 집어넣으면 전체 문맥이 통하지 않아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 없듯 유전자 편집 역시 정확한 부위를 찾아 교정해야 한다.
 
학교 공작시간에서 색종이를 가위로 잘라 붙일 경우 연필로 금을 그은 후 금을 따라 가위질을 해 우리가 원하는 정확한 모양을 만들 수 있는 원리와 같이, 유전자 역시 끊고자하는 부분에 정확히 금을 긋고 제대로 잘라내고 붙이는 것이 유전자 편집의 요체다.
 
그러한 금을 긋는 물질로는 징거핑거(Zinc Finger), 탈렌(Talen)의 1,2세대를 거쳐 현재는 주로 크리스퍼(CRISPR-Cas9)를 사용하는 3세대로 기술이 진화했다. 인공지능 알파고가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는 것처럼 유전자 편집기술도 3세대 크리스퍼까지 진화하면서 더욱 정확하고 빠르며, 대중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게 됐다.
 
일부 전문가가 사용하던 유전자 편집기술은 현재 많은 실험실에서 누구나 사용할 수 있게 됐다. 비용도 1세대 징거핑거가 5000달러가 필요한 것과 비교해 현재는 30달러면 가능하게 됐다. 과거 특정 유전자를 제거한 실험용 쥐를 만드는데 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면 현재는 두 달이면 충분히 만들 수 있다.
 
인공지능 자체는 복잡한 수학과 통계자료를 활용해 만들어지지만 그 사용자인 고객은 복잡한 수학적 지식 없이도 매우 쉽게 접근해 인공지능을 사용할 수 있듯이, 유전자를 자르고 붙이는 기술도 초기에는 고도의 교육을 받은 전문가만이 사용할 수 있었지만, 제3세대 기술인 크리스퍼는 의외로 쉽게 사용할 수 있어 약간 교육을 받은 비전문가들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간편하다.
 
크리스퍼 기술 이용의 허들이 낮아지면서, 관련 시장도 급격히 팽창하고 있다. 생명공학정책 연구센터에서 지난 해 8월 발표한 ‘글로벌 크리스퍼 시장 현황과 전망’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크리스퍼 시장은 2014년 약 2억 달러에 불과 했으나 그 후 6년(2016-2022년)간 연평균 성장률 36.2%로 빠르게 성장해 2022년에는 약 23억 달러의 시장이 형성돼 10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 크리스퍼 시장도 2014년 600만 달러에서 2020년에는 7000만 달러로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적 측면에서 유전자 편집은 식품과 축산분야에서 나쁜 유전자를 편집해 생산성이나 안전성을 크게 증가시킬 수 있다. 보건 의료 분야에서도 암이나 당뇨 등과 관련된 비정상적 유전자를 정상적인 상태로 돌려놓을 수 있어 인간이 건강하게 살 수 있게 한다. 일례로 말라리아를 옮기는 모기를 유전자 편집기술을 이용하면 말라리아 병원균을 옮길 수 없는 모기로 만들 수 있어 말라리아를 쉽게 퇴치할 수 있다.
 
환자에게서 얻은 줄기세포를 만능줄기세포로 전환해 유전자를 교정한 세포를 환자에게 이식하여 근원적인 치료를 하는 방법도 연구되고 있다. 생명윤리적 관점이 해결된다면 부모에게서 물려받을 수 있는 좋지 못한 유전자를 배아상태에서 편집하여 부모의 좋은 유전자만 물려받는 기술도 가능하다.
 
이코노미스트나 타임지와 같은 해외 언론에서는 ‘Editing humanity, The Gene machine’ 등의 제목의 기사들을 통해 태어나는 아기의 유전능력을 향상시켜 지능이 아주 높고 병에 대한 위험이 적고, 운동선수 같은 근육에 시력도 좋은 ‘맞춤아기’(designer baby)에 대한 이야기가 언급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비타민 D가 함유된 상추를 비롯해 지방은 적고 단백질이 풍부한 돼지고기와 같은 연구가 이미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유전자 변형 농산물(GMO)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지만, 크리스퍼 기술을 이용하면 외부 유전자의 도입 없이도 품질이 좋은 농산물로 생산할 수 있는 기술개발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외래 유전자를 유입시키지 않고 나쁜 성질만 없애 버린 경우이기 때문에 GMO와 관계가 없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내부 유전자만 편집해 형질을 바꾸는 것이 GMO에 포함되는지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유전자 편집기술을 이용한 신약 개발시장도 활발하다. 유럽연합(EU)에서 첫 번째 유전자 치료제로 승인된 글리베라는 110만 유로(약 15.2억 원)의 사상 최고의 약가를 책정하는 신기록을 세웠다. 2번째 유전자 치료제인 스트림벨리스도 아데노신디아미나아제 결핍증(ADA-SCID) 소아환자에게 사용허가를 받았다.
 
지난 5월22일 미 사이언스지에 따르면 미국 국립보건원(NIH)도 크리스퍼 기술로 만든 면역세포를 암 치료에 사용할 수 있도록 펜실베니아 대학에 허가했다. 유전자 편집기술이 신약 개발에 이용되면서 세계 신약 발굴 시장도 2012년 414억 달러에서 연평균 14.2% 증가해 2018년에는 9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신생아나 고령인구에 발생하는 유전질환 치료에는 크리스퍼 기술이 절대적이므로 시장의 규모는 예상보다도 더욱 급격히 증가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 미국에서는 유전자 편집 기술에 대한 스타트업(Startup)이 왕성하게 일어나고 있고, 유전자 편집 벤처기업에 대한 벤처캐피탈 등 민간 차원의 투자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크리스퍼 기술을 보유한 Editas Medicines에는 13개 기업이 약 1억2000만 달러를 투자하기도 했다.
 
시장의 전망이 좋은 만큼 특허분쟁도 복잡하게 일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미국 UC 버클리와 브로드연구소(Broad Institute, 하버드-MIT 공동연구원)간의 특허 분쟁이다. UC버클리의 제니퍼 A. 다우드나 (Jennifer Anne Doudna) 교수는 지난 2012년 5월 Cas9이 특정 DNA를 선택적으로 자르는 기술을 특허 출원했지만, 브로드연구소 소속인 MIT의 장펑(Feng Zhang)교수는 같은 해 12월 크리스퍼 가위 기술로 인간이나 쥐와 같은 포유류에서 적용할 수 있음을 특허 출원했다.
 
브로드연구소가 ‘우선심사제도’로 미국특허권을 취득했지만 UC버클리는 먼저 개발했다는 사유를 들어 브로드연구소를 상대로 ‘저촉심사’(Interference proceeding)를 신청했다. 특허 심판관은 UC버클리의 저촉심사를 ‘이유 없음’으로 판정했지만 포유류에 활용한 브로드연구소의 특허권을 인정한 것이지 UC버클리의 특허 출원을 무효화 시키지는 않아 문제가 복잡하게 진행되고 있다. 올해 4월 UC버클리는 다시 연방항소법원에 항소한 상태이다. 특히 유럽특허청이 UC버클리의 손을 들어 줘 유럽 38개국에서는 특허료를 UC버클리에 지불하도록 해 특허분쟁 상황은 더욱 복잡하게 됐다.
 
우리나라의 경우 유전자 편집회사 ‘툴젠’이 2012년 10월 브로드연구소보다 앞서 동물세포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기술을 특허 출원해 현재로는 유리한 입장에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이미 개발된 유전자 편집을 응용한 연구이지 원천연구인 새로운 편집 기술에 대한 기초 연구가 없다는 아쉬움이 있다.
 
새로 떠오르는 유전자 편집기술에 대한 윤리적 이슈와 활용범위에 대해서는 주의 깊은 사회적 검토가 필요하다. 남용 우려 등은 오히려 유전자 관련 산업의 성장을 저해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는 유전자 오염분야, 생물다양성 훼손, 사회경제적 위험 및 종교적 반대 등에 대한 다양한 논의와 검정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미래 먹거리이자 떠오르는 신산업 분야의 발전을 위해서는 성장을 저해하는 단순 규제보다 연구결과를 선점하기 위한 노력이 더욱 절실해 보인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는 지난 4월7일 루게릭병의 발병 원인과 치료 연구에 중요한 단서가 될 생체시계 유전자와 그 작용원리를 생명과학부 임정훈 교수팀이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실험모델로 사용된 형질변환 초파리. 사진/뉴시스
국가미래연구원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기성 편집국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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