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기대감이 역대 최고치로 치솟았다. 국민 10명 중 8명이 현 정부의 일자리 문제 해결에 긍정적인 기대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재인 효과다.
하지만 골판지 시장에서는 다른 나라 얘기일 뿐이다. 골판지와 상자를 제조하는 2400여 기업들이 생존 위기에 내몰리면서 2만3000여명의 종사자들은 일자리를 잃을까 노심초사다. 이들 가족까지 합하면 10만 여명이 길거리로 내몰릴 처지에 놓인 셈이다.
우려는 이미 현실로 바뀌고 있다. 인건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기업들은 허리를 졸라맸고, 10여 년간 함께 일해 온 직원을 하나 둘 떠나 보냈다. 사업주는 한 푼이라도 아끼려 가족까지 모두 동원해 생계를 잇고 있다. 0.2%가 지배하는 골판지 시장의 현실이다.
과거 골판지 시장을 취재하며 만난 사장님을 다시 만났을 때 곪아버린 시장을 그의 표정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1년 반이란 시간은 그의 미소까지 빼앗아 갔다.
이 시장에 군림하는 것은 골판지의 원재료인 원지를 제조하는 메이저 4개사(아세아그룹, 대양그룹, 태림포장그룹, 삼보판지그룹)다. 4개사는 하나 둘 눈치 게임하듯 가격을 인상해왔다. 지난해 6월 원지가격을 담합한 혐의로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과징금을 부과 받은 이후 가격인상 횟수는 더 늘었다. 결국 최근 1년새 원지가격은 70~80%가 올랐다. 계란값이 오르면 부침개 가격이 오르고 밀가루값이 오르면 빵가격이 오르게 마련이다. 계란값은 올랐는데 부침개 가격을 올릴 수 없다면 상인들이 더이상 가게를 운영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골판지 시장은 다르다. 원지 가격이 올라도 상자가격은 쉽게 올라가지 않는다. 원지, 원단, 상자 제조 시스템을 모두 가진 메이저 4개사는 원지값을 올려 수익을 챙기고 상자값은 유지시키며 최종 거래처를 확보해왔다. 이는 원지로 원단을 만드는 판지사와 원단으로 상자를 만드는 지함소(상자제조사)의 경영난으로 이어지고 있다. 0.2%가 가진 위력이 만든 골판지 시장의 모습이다.
가장 최근에 본 영화이기에 생각난 것일까. 취재 과정에서 광주를 피바다로 물들였던 5.18 민주화 운동를 다룬 영화 '택시운전사'가 자주 떠올랐다. 다른 지역은 평온한 가운데 단 한 곳 광주에서 일어난 참상. 들을 수 없었고 들리지도 않은 시간이 만들어 놓은 광주의 모습이 영화 속에 담겨 있었다.
골판지 시장의 영세업자들은 오늘도 비명을 지르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주력 산업과 거리가 멀다보니 이들의 아픔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박스조합에서는 두 번에 걸쳐 청와대에 호소문을 보냈지만 아직 답은 오지 않고 있다. 이들의 외침이 허공에 흩어지지 않길 바란다.
임효정 중소기업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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