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하게 진행되던 삼성의 경영권 승계작업이 결국 큰 탈을 내고야 말았다.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씨에게 뇌물공여 혐의를 받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한 삼성그룹 전직 고위경영진이 지난 25일 모두 유죄 판결을 받았다. 지난 6월에는 1차로 삼성물산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대한 국민연금의 찬성결정과 관련해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공단 전 기금운용본부장이 나란히 징역 2년6월의 실형을 받은 바 있다.
문형표와 홍완선에 대한 재판과정에서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국민연금의 방조 아래 무리하게 진행됐고, 그 결과 국민연금에 큰 손실이 초래됐음이 입증됐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에 대한 재판에서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대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직접적인 개입은 명시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추진 등 일련의 과정이 모두 지배구조 개편을 위한 작업이었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이는 이 부회장의 승계 작업을 위한 조치였다는 것도 인정됐다. 그리고 삼성이 승계작업이라는 ‘포괄적인 현안’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의 지원을 얻고자 정유라씨의 승마지원에 나섰다는 것이 재판부는 결론이다.
그 결과 이재용 부회장은 무난히 삼성그룹 경영권의 정점에 사실상 이미 올라가 있다. 비록 아직 삼성전자 부회장이라는 직함에 머물러 있지만, 그룹 계열사의 출자구도상 그의 지배권은 거의 확립된 것이나 다름없다. 더욱이 이를 위해 이재용이 추가로 부담한 자금은 거의 없다. 반면 국민연금과 소액주주들이 입은 손실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크다. 미국의 경제신문 <월스트리트 저널>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악명 높은 합병"이 소액주주들에게 무려 70억 달러로 추정되는 손해를 입혔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합병은 정부가 통제하는 국민연금공단의 도움이 없었다면 실패했을 것이라고 이 신문은 비판했다.
이재용을 비롯한 삼성그룹 고위경영진에 대한 재판은 이제 1심만 끝났다. 문형표 보건복지부장관에 대한 재판 역시 2심 진행중이다. 일단 1심판결을 근거로 판단해본다면 ‘합병은 경영상 시너지를 위해 추진된 것이며 승계작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던 삼성측의 주장은 부정됐다. 실제로 합병을 통해 시너지가 창출됐다는 증거도 없다. 요컨대 그간 진행돼 온 이재용부회장의 삼성그룹 경영권 승계작업이 정상적인 시장경제 국가에서는 용인될 수 없었음이 분명해 보인다. 공정하고 투명한 ‘법치경제’에 대한 신뢰도 무너졌다.
법치경제의 관점에서 주목되는 재판이 또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취소 청구소송이다. 삼성물산의 주요주주였던 일성신약이 제기한 민사소송이다. 오는 9월 결심에 이어 10월 선고를 앞두고 있다. 재판부는 문형표 전 장관과 이재용 부회장 등에 대한 형사재판의 결과 등을 지켜보기 위해 최종판단을 늦춰왔다.
이재용 문형표 피고인 등에 대한 형사재판 결과에 의거한다면 합병을 취소해 달라는 원고측의 요구는 정당해 보인다. 그렇지만 민사재판부가 그런 요구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이다. 게다가 이 부회장 재판부는 지배구조 개편이 이 부회장만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렵다는 사족을 달았다.
그러나 또다시 면죄부를 주고 용인하는 것도 곤란하다.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과정에서 정경유착이 저질러졌다는 것도 드러났다. 법치경제에 대한 신뢰회복을 위해 냉정한 법적조치가 필요하다. 그렇지만 재판부의 고민도 깊을 것이다.
이럴 경우 현명한 방법은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가 매듭을 푸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그룹이 시장과 법이 납득할 만한 조치를 스스로 내놓는 것이다. 1심 선고 이후 이 부회장이 모든 직함을 내려놓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돌고 있다. 삼성전자 부회장이나 삼성문화재단 이사장 등의 자리를 내놓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아직은 더 지켜봐야 한다.
이 부회장은 지난 1월 국회 국정조사 청문회에서 따라서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취소할 수도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또 1심재판 최후진술을 통해 자신이 유죄 판결을 받을 경우 삼성의 대표하는 경영인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제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그룹은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 그래야 이재용 부회장과 삼성이 실추된 신뢰를 조금이나마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차기태(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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