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광표 기자] 맥주사업을 영위하는 대기업들이 지난해 수입맥주의 성장에 휘청거린 데 이어 올해는 수제맥주의 공세까지 걱정해야 할 처지다.
정부가 주요 대기업들이 독과점 구조를 형성한 국내 맥주시장을 겨냥해 중소 맥주제조사 활성화 방안을 확정했기 때문이다.
3일 업계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는 내년부터 맥주 등 국민 생활과 밀접한 분야에서 신규 진입을 막거나 사업활동을 과도하게 제약하는 규제 25건의 경쟁제한적 규제에 대한 개선방안을 마련했다.
특히 그동안 수제 맥주를 주로 생산하는 중소 맥주 사업자가 소매점 등으로 유통할 때는 종합주류도매업자만 이용이 가능했으나, 앞으로는 일반 소매점과 다름없는 특정 주류도매업자를 통해서도 가능해졌다. 이로인해 중소 맥주 사업자의 판로는 두 배 이상 넓어지게 됐다.
생산규모와 관련된 규제도 완화된다. 오는 2월부터 소규모 맥주사업자의 제조시설 기준은 기존 75kl에서 120kl로 상향된다. 달라진 기준에 따라 이들의 연간 생산량도 900kl에서 1440kl로 확대될 전망이다.
이로 인해 '발등의 불'이 떨어진 곳은 국내 대형 맥주회사들이다. 현재 국내 맥주 시장은 OB맥주와
하이트진로(000080), 롯데주류 등 대기업이 독과점시장을 구축하고 있다.
지난해 수입맥주가 와인, 양주를 제치고 수입주류 1위를 차지하는 등 공세를 펼치는 가운데 정부가 수제맥주 규제까지 완화하면서 가뜩이나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국내 맥주 매출의 하락이 우려되고 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맥주시장 점유율은 ▲오비맥주 60% ▲하이트진로 26% ▲롯데주류 4% ▲수입맥주 10% 수준으로 추정된다. 여전히 대기업 3사 비율이 90%에 달하는 수치이지만 소비자들 사이에서 국산 맥주의 맛과 품질에 대한 불만이 끊이지 않고 있어 달라진 시장환경은 적잖은 부담이 될 전망이다.
우선 모회사 AB인베브를 통해 수입맥주 카테고리를 대거 보유한 오비맥주는 한시름 덜은 분위기다. 실제 오비맥주는 지난해 수입맥주 공세 속에도 버드와이저, 호가든, 버드아이스, 벡스, 스텔라, 레페, 레벤브로이 등의 유통과 판매를 맡으며 반사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다만 토종 맥주회사 색깔이 짙은 하이트진로와 롯데주류는 최근 수제맥주 공세까지 겹치며 차선책으로 '수입맥주 모시기'에 한창이다.
롯데주류는 몰슨 쿠어스 인터내셔날의 '밀러라이트'와 '밀러 제뉴인 드래프트'를 지난 1일부터 유통 판매를 시작하며 처음으로 수입맥주 판매에 나섰다. 하이트진로 역시 수입맥주 품목을 대폭 확대하고 있다. 최근엔 호주 맥주 1위 라이온사의 '포엑스 골드'의 판매를 시작했다.
업계 관계자는 "새정부 출범 후 청와대 행사에 깜짝 등장한 수제맥주 덕으로 관련 시장은 10년 뒤 2조 원대까지 규모가 커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며 "최근 중국의 칭다오와 같은 지역 특화맥주에 대한 투자 붐도 일고 있어 국내 대형 맥주회사들의 영업환경이 더 악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10월 열린 그레이트 코리안 비어 페스티벌(GKBF) 2017에서 시민들이 수제 맥주를 즐기고 있다. 사진/뉴시스
이광표 기자 pyoyo8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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