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한영 기자]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위원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남북정상회담 제안을 해오면서 벌써부터 구체적인 회담 시기에 대한 관측들이 쏟아지고 있다. 회담 개최를 위해 미국 등 주변국에 대한 설득작업이 필수인 가운데, 최대 걸림돌인 북한 핵·미사일 문제를 우리 정부가 어떻게 다룰지를 놓고 관심이 집중된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11일 “남북정상회담은 9월9일 북한의 정권 수립 70주년 기념일 전, 특히 8월15일 광복절을 전후해 개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북한의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통해 마련된 남북대화 동력이 약화되기 전에 정상회담이 이뤄져야 하는 점과 준비에 필요한 시기를 감안했을 때 올해 광복절이 적절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늦어도 연내에는 회담이 이뤄져야 남북관계 발전 동력을 찾을 수 있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이른 시일 내에 본격적인 실무협상 준비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정 실장은 “청와대는 조속히 제3차 남북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태스크포스(TF) 구성에 착수해야 한다”며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핵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대해 김 위원장을 어떻게 설득할 것인지, 주변국들과 대북정책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지에 대한 치밀한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회담이 이뤄질 경우 최대 과제는 단연 ‘한반도 비핵화’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핵·미사일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북한의 양보를 요구할 경우 진척을 보기 어려운 만큼 허심탄회한 대화를 통해 답을 찾아가는 방법이 효과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북미 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비핵화 의지 표명’을 내걸고 있는 미국과, “핵문제는 협상이 될 수 없다”는 북한의 입장차이가 크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도 지난달 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한반도 비핵화는 평화를 향한 과정이자 목표”라며 남북이 공동으로 선언한 한반도 비핵화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우리의 기본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박종철 통일연구원 위촉연구위원은 최근 ‘평창올림픽 이후 한반도 평화증진 방안’ 보고서에서 “비핵화와 평화체제의 우선순위에 대해 기계적이고 단선적인 접근을 고수하기보다 평화체제 여건을 조성하는 동시에 비핵화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 현실적 대안”이라고 설명했다. 선제적인 평화여건 조성으로 비핵화를 추진할 수 있는 외적 환경을 만들자는 것이다. 박 연구위원은 “4자회담 또는 6자회담에서 ‘한반도평화선언’을 채택함으로써 한반도평화의 여건을 조성하고 비핵화 협상의 모멘텀을 확보하는 것이 예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 주변국 설득작업은 필수지만 정상회담 개최를 위한 대외 환경은 여의치 않다. 마이클 펜스 미국 부통령이 9일 평창동계올림픽 사전환영 리셉션장에서 보인 모습이 단적인 예다. 펜스 부통령 내외 자리가 리셉션장 헤드테이블에 마련되어 있었지만 그는 주빈석에 앉지 않고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제외한 나머지 정상들과 악수를 나누고는 행사장 밖으로 빠져나갔다. 문 대통령이 추진 중인 남북대화에 이은 북미대화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표현한 행동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펜스 부통령은 방한 전 일본에서 아베 총리와의 회담에서는 “북한에 곧 가장 강력하고 공격적 경제제재를 가할 것”이라는 경고도 내놨다. 미국이 북한에 대한 인권 문제를 계속 제기하고 있는 점도 양국관계를 얼어붙게 하고 있다.
아베 총리도 9일 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연기할 단계가 아니다”며 “훈련을 예정대로 진행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분히 북한을 의식한 발언이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이 문제는 우리의 주권의 문제고, 내정에 관한 문제”라며 맞받았다.
한반도 주변국과의 협력 없이는 정상회담 개최가 불가능한 가운데,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 우리 정부가 보인 노력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는 최근 펴낸 책 ‘새로 읽는 남북관계사 - 70년의 대화’에서 “6자회담이 교착에 빠지거나 북한이 대화에 소극적일 때 남북대화는 북핵문제 해결을 촉진하는 유용한 수단으로 작용했다”며 “미국은 자신들의 입장을 북한에 설명하고 동시에 북한을 설득해줄 것을 남측에 부탁했고, 북한 또한 남북대화에서 미국의 의도와 의지를 확인하고 싶어했다”고 말했다. 남북대화를 계기로 미국과 북한 모두 대한민국의 역할을 인정하며 도움을 요청한 전례가 되풀이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주변국, 특히 미국에 논의 사항을 상세히 전달함으로써 남북대화와 국제공조 간 균열 논란이 벌어지지 않게 하는 것도 필요하다. 김 교수는 “한미 양국은 (김대중정부 시기) 초기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긴밀히 협의해 ‘페리 보고서’를 만들었다”며 “1998년부터 시작된 이른바 ’페리 프로세스‘ 국면은 남·북·미 삼각관계의 선순환을 이루면서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대화의 긍정적 상호 보완관계를 가져왔다”고 덧붙였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각국 대표단이 9일 강원도 평창올림픽플라자에서 열린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을 관람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문 대통령, 김정숙 여사, 마이클 펜스 미국 부통령의 부인 캐런 펜스 여사, 펜스 부통령,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윗줄 왼쪽 세 번째부터)김영남 북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여정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사진/뉴시스
최한영 기자 visionchy@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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