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 과학 칼럼니스트·SCOOP 대표
내가 입주한 사무실 건물은 크지 않다. 한산한 곳에 있어 주차환경도 좋은 편이다. 지난해부터 전에 없던 풍경이 펼쳐졌다. 경비 아저씨가 출근 시간에 정문에 서서 인사를 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어 보였다. 10부제 위반 차량이나 다른 건물 입주자 차량 진입을 막는 일을 하는데 이런 차량이 많지 않다. 출근할 때마다 마음이 영 불편하다. 건물 소유주인 기관의 지인에게 물어보니 신임 기관장의 지시란다.
얼마 전 기관장에서 물러난 또 다른 지인을 만나 식사를 했다. 소탈한 성격에 권위와는 거리가 먼 분이다. 그의 말이 놀라웠다. “처음에는 운전기사가 차 문 열어주고 닫아주는데 그게 그렇게 불편한 거야. 그러지 마시라고 여러 번 말했는데 소용없더라고.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게 편하고 너무 자연스러운 거야. 이런 얘기 자주 들어서 그러지 말아야지 했는데 나도 어느새 그렇게 되더라고. 사람 마음 참 간사하지?”
이 정도면 양호하다. 멀쩡하던 사람이 어느 정도 자리에 오르면 돌변하는 사례를 자주 목격한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은 긍정적인 평가다. 대놓고 ‘자리가 사람을 버렸다’라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경비 아저씨의 경례를 받아야 출근길이 즐거운 기관장, 자기도 모르게 차 문을 열어 주는 게 편하고 자연스러워졌다는 지인(다시 말하지만 이 정도면 양호한 편이다). 그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높은 자리에 오르거나 권력을 쥐면 사람이 바뀔까?
캐나다 연구진이 한 가지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 참가자를 두 그룹으로 나눠 한 그룹은 자신이 명령하거나 남을 압도했던 경험을 쓰게 했다. 다른 그룹은 이와 반대로 명령을 받거나 다른 사람에게 의존했던 기억을 쓰게 했다. 힘없는 사람으로 느끼도록 한 것이다. 그러면서 하나의 영상을 보게 했다. 누군가 한 손으로 고무공을 쥐는 장면이었다. 연구진은 이때 실험 참가자의 뇌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관찰했다.
이른바 ‘거울 뉴런(mirror neuron)’. 직접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아도 마치 그런 것처럼 느끼게 해주는 신경세포다. 이 실험에서처럼 누군가 공을 쥐는 영상을 보면 거울 뉴런이 활성화돼 마치 자신이 공을 쥐는 것처럼 느껴야 정상이다. 명령하거나 남을 압도했던 경험을 쓴 실험자들의 거울 뉴런은 거의 작동하지 않았다. 반면 명령받거나 다른 사람에게 의존했던 실험자들의 거울 뉴런은 활성화됐다. 결론적으로 힘 있는 사람의 공감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졌다.
미국 노스웨스턴대 연구진도 비슷한 실험을 통해 권력을 가질수록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른바 ‘알파벳 E 실험’이다. 연구를 주도한 애덤 갈란스키 교수는 실험 참가자를 두 팀으로 나눠 한쪽에는 명령했던 경험을, 다른 쪽에는 명령받았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그러던 도중 갑자기 자신의 이마에 알파벳 대문자 E를 그리게 했다.
결과는 캐나다 연구진의 거울 뉴런 실험과 비슷했다. 고권력자 그룹은 33%가 자기가 쓰기 편한 방향으로 알파벳 E를 그렸다. 반면 저권력자 그룹은 12%만이 자기가 쓰기 편한 방향으로 그렸다. 자기가 쓰기 편한 방향으로 쓰면 상대방에게는 알파벳 E가 거꾸로 보인다. 이 실험도 한 가지 결과를 말해준다. 힘 있는 사람의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권력을 쥐면 뇌가 바뀐다. 심지어 호르몬도 변한다고 한다. 최근 한국 사회를 강타하고 있는 ‘미투(Me too) 운동’을 뇌와 호르몬의 변화로 분석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가해자의 행동을 자칫 인간의 본능, 권력자의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피해자는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았는데, 가해자는 왜 그것을 폭력이라고 느끼지 못하는지 이해하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아무리 작아도 권력에 취하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없다. 자기반성과 함께 이들의 질주를 견제하고 차단할 수 있는 장치와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것도 아주 견고한. 미투 운동은 이제 우리도 그럴 때가 되었음을 알려주는 강력한 경고이자 신호다.
글을 맺으며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하나는 반성이고, 또 하나는 다짐이다.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무심코 던진 한마디, 행동 하나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을 수 있다. 이것은 반성이다. 명령과 권력을 마음껏 휘두를 수 있는 위치에 없었던 건 그나마 다행이다. 설사 작은 권력을 주더라도 늘 내려놓고 공감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다짐이다.
김형석 과학 칼럼니스트·SCOOP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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