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현준 기자] 황창규 KT 회장이 생존의 갈림길에 섰다. 그의 운명을 가를 쟁점은 회사자금 유용에 관여했는지 여부다.
경찰은 KT 전·현직 임원들이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이른바 '상품권깡' 방식으로 90여명의 국회의원에게 약 4억3000만원을 불법 후원한 것으로 보고 있다. 후원은 KT가 주주로 있는 인터넷전문은행 K뱅크 설립에 대한 사안을 다룬 국회 정무위원회와 정보통신기술(ICT) 소관 상임위인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현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위원들에게 집중된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러한 불법 후원이 황 회장의 지시나, 최소 동조 하에 이뤄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경찰은 17일 황 회장을 서울 서대문구 본청으로 소환해 불법 정치자금을 후원하는 과정에서 그가 얼마나 관여했는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황창규 KT 회장이 17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본청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했다. 사진/뉴시스
경찰은 지난 1~2월 KT 본사와 자회사 등을 압수수색해 확보한 자료를 바탕으로 KT 임원들의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는 확인했다. 이철성 경찰청장은 지난 2월 브리핑에서 "(사용된)자금이 어쨌든 공금이므로 횡령이나 배임의 문제는 별건으로 하더라도 정치자금법 위반은 명확하다"고 자신했다. 황 회장까지 사정권에 들면서, 핵심은 경찰이 황 회장이 불법 후원에 관여한 물증을 쥐고 있느냐로 압축됐다. 만약 경찰이 임원들 진술 외에 황 회장이 관여했다는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할 경우 무리한 수사라는 비판에도 직면할 수 있다. KT는 황 회장이 불법 후원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특히 혐의를 뒷받침할 만한 증거도 없다고 보고 있다.
경찰 조사 후 검찰 수사와 재판 등으로 장기화될 가능성도 있다. 최고경영자(CEO)가 오랜 기간 수사와 재판을 이어가면 KT가 추진 중인 5세대(5G) 통신사업의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KT는 SK텔레콤·LG유플러스와 경쟁하며 2019년 5G 상용화를 목표로 준비 작업에 한창이다. 당장 오는 6월 5G 주파수 경매가 예정돼 있다. 경매 이후 하반기에는 본격적인 5G망 구축 작업에 돌입해야 한다. 또 5G에서 선보일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등의 콘텐츠 마련에도 투자가 필요하다.
정부의 통신요금 인하 압박에도 대응해야 한다. 규제개혁위원회(규제위)는 지난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회의를 열고 이동통신 요금 감면 대상자를 기초연금 수급자까지 확대하는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 개정안을 참석위원 전원합의로 통과시켰다. 규제위는 이달말 보편요금제 도입 여부에 대한 논의도 진행할 예정이다. 이처럼 난제들로 둘러싸인 상황에서 KT는 혹여 정권교체기마다 반복됐던 CEO 잔혹사가 재연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황 회장이 이번 경찰 조사를 무사히 마친다 해도 남은 의혹들은 여전히 부담이다. 무엇보다 적폐로 규정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됐다. 법원은 이달 6일 열린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1심 선고공판에서 박 전 대통령이 KT의 인사 채용과 광고대행사 선정 과정에 개입한 혐의에 대해 유죄(직권남용죄)로 판단했다. KT는 이에 대해 청와대 강요에 의한 피해로 반박했다.
KT 노조와 시민단체로 구성된 KT민주화연대는 황 회장 퇴진을 요구하며 압박을 지속했다. KT민주화연대는 이날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황 회장은 회장직에서 스스로 물러나 법적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라며 "불법 정치자금에 연루된 임원들도 즉각 퇴진하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주주총회에서 연임에 성공한 황 회장은 약 1년10개월의 임기를 남겨놓고 있다. 임기는 2020년 주주총회(통상 3월)까지다.
한편 경찰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 현재까지 7시간 이상 황 회장에 대한 조사를 이어가고 있다. 이날 조사 후 황 회장을 추가로 소환할 가능성도 있다.
박현준 기자 pama8@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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