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광연 기자] 긴급조치 제9호에 의해 영장 없이 체포돼 긴급조치위반 혐의가 아닌 다른 혐의에 관해 유죄의 확정판결을 받았다면 이 역시 중대한 하자가 있었으므로 피고인의 재심사유를 인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2일 긴급조치 제9호에 의해 영장없이 체포돼 반공법위반·사기·업무상횡령죄가 확정됐다가 사망한 A씨의 아들이 제기한 재심청구 사건 관련해 긴급조치 제9호가 위헌이라도 그에 따른 영장 없는 체포·구금은 어디까지나 당시의 유효한 법령에 따른 행위로서 형법 제124조의 불법·체포감금죄가 될 수 없으므로 재심사유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검찰의 재항고를 기각했다.
이번 사건의 쟁점은 당시 영장 없는 체포·구금을 허용하던 긴급조치 제9호에 따라 경찰이 피고인을 영장 없이 체포·구금한 것이 형법 제124조의 불법체포·감금죄에 해당하는지, 적어도 그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등으로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의 재심사유가 인정되는지였다.
대법원의 판단은 재심 허용이었다. 대법원은 "영장주의를 배제하는 법령 자체가 위헌이라면 결국 헌법상 영장주의에 위반해 영장 없는 체포·구금을 한 것이고, 그로 인한 국민의 기본권 침해 결과는 수사기관이 직무범죄를 저지른 경우와 다르지 않다"며 "형식상 존재하는 당시의 법령에 따른 행위라고 하더라도 그 법령 자체가 원시적으로 위헌이라면 결과적으로 그 수사에 기초한 공소제기에 따른 유죄의 확정판결에는 수사기관이 형법 제124조의 불법체포·감금죄를 범한 경우와 마찬가지의 중대한 하자가 있다고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이어 "이러한 경우를 재심사유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중대한 하자가 존재함에도 단지 위헌적인 법령이 존재하였다는 이유만으로 그 하자를 바로잡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 돼 부당하다"며 "이는 위헌적인 법령을 이유로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제한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확정판결에 중대한 하자가 있는 경우 법적 안정성을 후퇴시키더라도 구체적 정의를 실현하고자 하는 재심제도의 이념에도 반한다"고 지적했다.
A씨는 1979년 7월 긴급조치 제9호 제8항에 따라 경찰에 영장 없이 체포·구금돼 수사를 받고 대통령긴급조치제9호위반·반공법위반·사기·업무상횡령으로 기소됐다. 1심에서 유죄를 받은 뒤 항소심 진행 중 긴급조치 제9호가 해제되면서 대통령긴급조치제9호위반 부분에 대해서는 면소를, 나머지 반공법위반·사기·업무상횡령 부분에 대해 유죄를 선고받았다.
이후 A씨는 사망했고 A씨 아들이 재심대상판결에 대해 재심을 청구했다. 원심은 경찰의 영장 없는 체포·구금은 불법체포·감금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지만 위 경찰관들에게 적법행위에 대한 기대가능성이 없어 책임이 조각되므로 처벌되지 않는 것이라고 보고 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의 직무범죄로 인정할 수 있다는 이유로 재심대상판결 중 유죄 부분에 대해 재심개시를 결정했다.
이에 검찰은 경찰관들의 행위는 당시의 유효한 법령에 따른 것일 뿐 직권을 남용한 것이 아니므로 불법체포감금죄의 구성요건에도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재항고했다. A씨 아들도 원심이 면소 부분에 대해서는 재심을 불허한 것에 대해 재항고를 제기했다.
김광연 기자 fun350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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