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우찬 기자] 일자리 창출은 문재인정부가 강조하는 시대적 소명이다. 새 정부 출범 후 제1호 업무지시는 '국가일자리위원회' 구성이다. 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 중소벤처기업부 중심으로 벤처창업 생태계 활성화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대기업 취업 올인, 공시족(공무원 시험족) 양산 등 일그러진 일자리 생태계 복원을 위해 벤처창업붐의 부활은 필수적인 요소로 꼽힌다. 그러나 정책의 초점이 너무 창업 자금 지원에만 쏠려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창업 안전망 구축 전 벤처창업 정책들이 추진될 경우 구멍 난 독에 물 붓기 꼴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다. 실패하더라도 재창업, 3차 창업이 수월해지도록 제도적 개혁이 필요하며, 실패를 용인하는 사회적 인식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벤처기업협회를 중심으로 협회·단체 13곳이 있는 혁신벤처단체협의회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혁신 벤처생태계 발전 5개년 계획'에서도 12개 중점 분야 중 3번째가 창업 안전망일 만큼 그 중요성은 크다. 벤처생태계 내 창업 안전망의 실태를 살펴보고 개선 방향을 짚어본다. (편집자)
재도전이 사실상 불가능한 벤처창업생태계 환경은 국내 산업계 발전을 가로막는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된다. 허술한 창업 안전망 속에 '모 아니면 도' 식의 창업이 많고, 한번의 실수 또는 실패는 영원한 실패로 규정돼 또 다른 도전을 원천 차단해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재도전 없는 창업생태계의 원인에는 잘못된 제도와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문화적 유산 등이 혼재돼 있다. 이를 일괄 해결하지 않고서는 벤처창업생태계를 둘러싼 장밋빛 전망은 공염불로 그칠 가능성이 크다.
각종 수치화된 지표들은 국내 벤처창업생태계의 창업 안전망이 얼마나 부실한지 보여준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실패한 기업인의 재기준비 비율은 19%(부도기업인재기협회, 2013)에 불과하다. 10명 중 사업 재도전에 나서는 기업인이 2명이 채 안 된다는 이야기다. 사업 시작보다 사업을 끝내는 일은 더욱 어렵다. 회사 정리 비용은 평균 2억여원 가까이 드는 것으로 추산되며, 사업을 종료하고 재도전하기까지는 평균 55.2개월(중소기업학회, 2014)이 걸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창업 안전망이 헐겁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각종 통계는 창업 자체를 꺼리는 사회 인식과 현실로 굳어지고 있다. 실패하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발판이 없는데 왜 무모한 창업에 나서느냐는 시각이다. 2013년 현대경제연구원 조사를 보면 '자식이 창업하면 만류하겠다'는 응답은 52%, '사업 실패하면 신용불량자가 될 것'이라는 응답은 92%를 기록했다. 벤처창업계 기업가들은 "사람 뽑기가 정말 힘들다. 창업은 대기업, 공무원 취업보다 하위 수준에 있다는 인식이 만연해있다 보니 유능한 인재들이 창업생태계에 유입되지 않는다"고 하소연한다.
우수한 인력들이 대부분 공무원시험에 몰리는 사회현상도 부실한 창업 안전망과 떼놓고 볼 수 없다. 청년들에게 모험정신이 부족하다고 비판하는 시각이 있지만 창업과 관련된 척박한 환경을 보지 못한 채 청년 개인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는 꼴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사람은 합리적인 결정을 한다. 우수한 청년 인력들이 공무원시험에 몰리는 건 안정적인 보수에 정년이 보장되기 때문”이라며 “현재 창업 환경은 보수, 지위 등 모든 면에서 청년들에게 매력적인 게 없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창업 안전망의 중요성은 이 같은 사회적 인력 배분뿐만 아니라 일자리 창출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는 것과도 맞물려있다. 문재인정부는 일자리 창출 방안으로 중소기업 중심의 소득주도 성장과 벤처창업 생태계 활성화를 꼽고 있다. 최근 정부의 추가경정예산을 봐도 이 같은 정부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올해 1차 추경예산 3조8300억원 중 41% 수준인 1조5651억원(총지출 기준)이 중소벤처기업부에 최종 편성됐다. 특히 벤처창업 활성화를 위해 7116억원이 투입된다.
막대한 재정이 투입되는 만큼 정책이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재도전, 3차 도전, 4차 도전이 가능한 창업 안전망 구축은 필수라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벤처업계 한 관계자는 "첫 번째 사업으로 성공할 확률이 굉장히 낮은 건 분명한 사실이다. 기업가 개인뿐만 아니라 생태계 차원에서도 실패를 자산화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 벤처창업계에 막대한 돈을 붓는 정부 입장에서도 실패를 무릅쓰고 다시 도전하는 기업가가 늘어나야 투자자본수익률이 나오는 셈"이라며 "창업 안전망이 부실한데 계속 창업하라고 자금을 대주는 건 마이너스 게임이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20대 창업가인 럭스로보 오상훈 대표의 사례는 창업 안전망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코딩 교육용 로봇 플랫폼 '모디'를 만드는 럭스로보는 현재 기업가치가 약 800억원으로 평가된다. 미래창조과학부, 중소기업청(현 중기부) 등에서 여러 차례 지원을 받으며 아이템을 사업화하는 데 성공했다. 사업 성공 가능성을 정부로부터 인정받은 셈이지만 오 대표 역시 연대보증의 덫은 피하지 못했다. 오 대표는 "지금까지 아이템을 7번 바꿨다. 만 26세인 제 이름으로 걸린 연대보증이 67억원에 달한다"며 "정부가 무조건 지원하기는 어렵겠지만 실패해도 더 도전할 수 있는 생태계가 구축된다면 창업자들에게 큰 장점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창업 안전망이라는 튼튼한 다리를 세우기 위해서는 제도 개혁과 함께 사회적 인식의 대전환 두 가지를 한 번에 해결하는 해결책이 제시돼야 한다는 게 벤처스타트업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실패비용을 극대화하는 현행 제도적 모순을 극복하고, '기업실패=개인실패, 사업실패=인생실패'라는 프레임을 깨뜨려야한다는 주장이다.
벤처창업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창업 자금 지원 외에 창업 안전망 구축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중국 청두에서 열린 한 창업캠프에 참가한 학생들의 모습. 사진=뉴시스
이우찬 기자 iamrainshine@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김나볏 테크지식산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