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광표 기자] 롯데그룹 중국 내 철수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으로 연이어 타격을 받으면서 최근 중국내 마트와 제과공장에 이어 백화점 사업까지 정리수순에 돌입했다. 이는 1994년 롯데제과로 중국 시장에 첫 발을 내딛은 지 24년만의 결단이다.
31일 재계에 따르면 롯데는 사드 부지를 제공 여파로 중국 현지에서 숫자로 나타나는 매출 하락 외에도 사업 기회 손실 등 유무형의 피해 규모가 2조 원에 육박한 것으로 추산된다.
롯데그룹은 1994년 롯데제과를 시작으로 마트, 백화점 등이 중국 소매유통 시장에 진출한 바 있다. 현재는 유통 외에 화학, 관광 등 20여 개 계열사가 진출해 있다. 그러나 사드 보복으로 인한 직격탄을 맞은 뒤 손실을 보이는 사업부터 철수작업을 단계별로 진행하고 있다.
롯데백화점 중국 톈진점 전경. 사진/롯데
철수 1순위는 롯데마트였다. 롯데마트는 누적된 피해를 견디지 못하고 가장 먼저 매각을 결정했다. 8월 중순에는 중국 사업에서 완전 철수키로 했다.
롯데마트는 2007년 네덜란드계 대형마트 체인 '마크로(Makro)'를 인수하면서 중국에 첫 발을 내딛은 후 2009년 중국 토종 대형마트인 '타임스(Times)'까지 인수하면서 단기간에 유통망을 빠르게 확장했다. 이후 신규 점포 출점을 지속해 중국 내 마트 99개, 슈퍼 13개 등 총 112개의 점포망을 구축했다.
그러나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74개 점포가 영업정지 처분을 받고 폐점했고, 13개 점포도 안전 상의 이유로 자체 폐점을 하는 등 총 87개의 점포가 영업을 중단하면서 사업 지속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이같은 상황이 1년여간 지속되자 롯데마트는 두차례에 걸쳐 6000억원 가량의 자금을 긴급 수혈해가며 버텼지만 누적된 피해는 감당할 수 없었다. 롯데마트는 110개 매장 중 96개 점포를 운영 중인 화동법인과 화북법인은 지난 5월 매각됐고, 남은 14개 점포는 중국 현지 기업 4~5곳과 막판 매각 협상 중이다.
롯데는 중국의 제과 공장 2곳도 매각을 추진 중이다. 공장 매각을 통해 생산 효율성을 높이겠다는 복안이다.
롯데측은 연내 중국 제과 공장 3개 중 가동률이 낮은 2개를 판다는 내부 전략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의 제과 공장 매각 역시 현지 사업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분석된다. 이미 롯데는 롯데칠성음료와 롯데제과 등의 중국사업장을 통폐합하거나 영업직원을 줄이는 등 구조조정을 진행 중에 있다.
최근엔 백화점 사업도 일부 점포를 정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2008년 8월 1일 베이징의 최대 번화가 왕푸징 거리에 중국 인타이그룹과 50대 50으로 합작해 1호점을 열었으나, 인타이 측과 의견 충돌이 빈번해지면서 개장 4년만에 1134억원 적자를 내고 폐점했다.
베이징점 오픈을 시작으로 중국 내 주요 도시로 점포를 확대할 것이란 목표를 세웠지만 톈진, 청두, 웨이하이, 선양에 총 5개 점포를 직접 운영하는 것에 그쳤다. 여기에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일부 점포의 매출이 급감하자 일부 점포 정리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상황이 이어지면서 롯데는 '탈중국' 프로젝트를 가속화하고 있다. 대상은 동남아시아, 러시아 극동 지역이 꼽힌다. 최근 롯데는 이 지역에 투자를 확대하며 성장잠재력이 높은 해외 신시장 개척에 분주하다.
특히 베트남에서는 1990년대부터 식품과 외식부문을 시작으로 유통·서비스 부문까지 진출해 활발하게 사업을 펼치고 있다. 베트남에는 약 16개 롯데 계열사가 진출한 상태로, 임직원 수는 1만1000여명에 이른다. 인도네시아에서도 유통부문과 화학부문을 중심으로 지속적인 투자가 진행 중이다. 인도네시아에는 10여 개의 롯데 계열사가 진출해 있으며 약 8000여명의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다.
러시아 시장 공략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 12월엔 현대중공업으로부터 블라디보스토크에 위치한 현대호텔과 연해주 지역 3000만평 규모의 토지농장권 및 영농법인을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지난 4월 인수 관련 절차를 모두 마무리하며 극동지역까지 새롭게 진출했다.
이미 러시아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호텔을 운영 중인 호텔롯데는 최근 '롯데호텔 블라디보스토크'를 재개관 했고, 연내에 러시아 사마라에도 호텔을 추가 오픈할 예정이다. 또 롯데상사는 미래 식량자원 확보 및 개발사업 추진의 일환으로 러시아 수산산업 등 유관사업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이외에도 롯데는 중앙아시아 지역의 몽골에도 적극 진출하고 있다. 롯데GRS는 지난 6월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 햄버거 프랜차이즈 브랜드 '롯데리아'의 1호점을 공식 오픈했고, 롯데마트도 내년 상반기쯤 몽골 1호점을 오픈할 예정이다.
재계 관계자는 "롯데가 정리수순에 들어간 중국시장이 워낙 규모가 컸기 때문에 동남아 외에도 다양한 신시장에 동시다발적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당장은 중국 리스크가 상쇄되긴 힘들겠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탈중국 프로젝트는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이광표 기자 pyoyo8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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