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윤 칼럼니스트
줄 잘 못 서면 ‘꽝’이나 들러리가 되는 정치-사회는 근본적으로 봉건시대와 다를 바 없다. 그러므로 줄서기는 후진성과 비민주성의 표지(標識)다. 2017년 촛불대선은 보수진영에서 누가 나오든, 출마구도가 어떻게 짜여지든 민주당후보의 승리가 100% 확실했다. 그러므로 촛불정부가 빚을 진 건 ‘시민’뿐이다. 박근혜-이명박정권이 나라를 그렇게 거덜내고 농단질을 해댔으니 승리는 당연했다. 그러니 ‘아무개가 1등 공신’이라는 류의 말은 촛불대선의 본질을 호도하는 자가발전이다.
줄서기란 아마도 당내 경선 때 누구를 지지했느냐를 두고 따지는 말일 게다. 거기서 비롯된 친소관계가 이리 저리로 나뉘는 계기일 터이다. 여기까지는 한국식 붕당정치 속성 상 당연하게 여겨져왔고, 불가피한 점도 있다. 문제는 그 이후다. ‘자리’를 놓고 경쟁이 격화되면서 어느 그룹 출신인지 따지다보니 암투와 마타도어가 벌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붕당정치는 가치와 이념을 바탕으로 한 정당정치로 발전하지 못하고, 머릿 수로 우열을 가르는 패거리정치에 그칠 수 밖에 없었다.
선거 후 용인(用人) 과정에서 꼭 챙길 사람과 덜 그런 사람이 나뉠텐데, 그거야 말로 인사권자의 흉중에 달린 일이다. 곳곳에서 레벨에 따른 청탁이나 이력서가 실력자들 책상이나 ‘카톡’에 쌓였을 것이다. 자리는 100개인데 이력서가 500장이라면 추천인의 ‘힘’에 따라 명단 앞부분에 가기도 하고, 서랍속에서 햇빛을 보지 못하는 일도 있을 것이다. 정부직에 ‘어공’(어쩌다 공무원)으로 배치되기도 하고, 공공기관-공기업에 둥지를 틀기도 한다. 주특기나 전문성과 별 상관 없는 경우도 나온다. 왜? 여지껏 그래왔으니까. 이 모든 과정이 집권세력의 당연한 권리로 여겨지면서 낙하산·코드인사라는 말은 사전에 올라도 좋을 일반명사가 돼버렸다. 일반명사 자격을 얻었다는 건 공식화나 제도화와 동의어라는 얘기다.
코드인사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본다. 생각과 가치관이 비숫한 사람들이 기용돼 해당 정부의 정체성을 지키고, 공약을 역동적으로 추진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 요소가 훨씬 많다. 그런데 코드와 정실의 경계가 모호해서 혼동하기 쉽다는 게 치명적 문제점이다. 악마는 여기에 숨어있다.
비정무 공직자 임용의 경우, 법규에 따라 공모제로 선발한다. 문제는 공모의 상당수가 형식적으로, 즉 내정 후 치러진다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권력 언저리에서 이러한 내정 관행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점! ‘내정 후 공모’의 부당함을 지적하면 물정 모르는 청맹과니로 취급된다. 이는 공모제가 형식적 절차로 전락됐다는 반증이자, 정부가 ‘정부 공고문’의 신뢰를 스스로 짓밟는 행위다. 특정인에게 합격증을 쥐어주고 입시를 치르는 꼴인데 더 이상 부연할 게 뭐가 있겠는가.
대통령께서는 “기회는 균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해오고 있다. 시대정신을 명확히 압축한 이 아름다운 문장이 과연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가. 검증과 전형의 잣대는 포청천의 그것처럼 엄격한가. 이런 항간의 의문을 ‘떨어진 사람들의 볼멘 소리’라고 자신있게 반박할 수 있을 만큼 심사는 투명하고 공정했는가, 공정하게 작동되고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들려오는 말은 꼭 그러하지는 않다. “모 부처 어느 자리는 아무개가 내정된 채 공모가 진행됐는데, 아니다 다를까 소문대로 됐다”는 얘기가 아직도 심심찮게 들린다. 그 중에는 상당 수준의 팩트나 정황증거가 제시되는 곳도 있다. 정부 부-처 서너 곳이 그러하다. 합격자를 정해놓은 공모는 촛불정부의 정체성을 뿌리부터 흔드는 일이자, 촛불에 대한 배반이다. 정히 써야 할 사람이 있으면, 형식적 공모 대신 차라리 특채는 어떠한가. 단, 엄격한 검증과 능력테스트를 거쳐 임용 사실을 떳떳하게 알리는 특채. 그게 짜고치는 고스톱보다 골백번 정의롭지 아니할까.
정부 공고문만 믿고 지원한 최소 수백명을 바보 천치 들러리로 만드는 ‘내정 공모’는 한 마디로 사기다. 촛불정부조차 불공정 인사관행을 혁파하지 못한다면, 이 악습은 영구히 고착될 것이다. ‘정치’라는 미명 하에. “이게 촛불정신인가”라는 일부의 지적, 깊이 새기고 고쳐야 한다. “어제까지의 익숙함과 철저히 결별하라”는 게 촛불정신이자 시민의 명령이다. 이 정부에 대한 유일한 채권자는 시민이다.
이강윤 칼럼니스트(pen33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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