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셋이서 무언가 함께 해보자는 것은 꽤 오래 전 해묵은 생각이었는데 5년 만에 후배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찾았습니다.”
사단법인 '올, 젠더와 법 연구소'에서 대표이사를 맡은 전수안 전 대법관이 밝힌 연구소 설립 동기다. 젠더평등 실현을 위해 전 전 대법관과 함께 전효숙 전 헌법재판관과 강금실 법무부장관이 뭉쳤다. 젠더평등을 주제로 하는 조직도 처음이거니와 전직 고위 여성법조인이 모여 만든 연구소도 국내 최초라 의미가 남다르다.
연구소 전신은 1997년 법원 내에 만들어진 만든 여성관계법 연구회다. 여성법관들이 연구하는 모임을 가져야하지 않겠냐는 분위기에 여성관계법 연구회가 생겼고, 같은 흐름 속에서 젠더법연구회도 만들어져 법원 내 연구모임이 활성화됐다. 연구회에서는 형사공판절차에서 법규정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범죄피해자에 대한 방안을 논의했다.
여러 연구단체가 생기고 있지만 여전히 대한민국 젠더평등 실현의 길은 멀다. 세계경제포럼의 성격차지수나, 유엔개발계획의 성불평등지수 조사에서 하위에 머물고 있다. 전 전 재판관은 “우리나라는 산업화나 발명이 빠르게 이뤄졌으니 젠더평등 문제도 20년이면 되겠지, 늦어도 30년이면 되겠지 싶었으나 세월이 흐른 뒤 보니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다.
젠더평등은 한 사회의 작은 부분을 차지하는 정도의 담론이 아니다. 우리 자신에게 가장 필요한 문제이기도 하다. 사회 전반에서 성범죄와 미투현상이 만연하며 이에 대한 해결보다는 남녀갈등으로 번져 사회통합이 실현되지 않고 있다. 또 정치·사회·경제·문화 등 다양한 분야와 직접적인 영향이 있다. 정치·경제적으로 의사를 결정하는 지위의 여성이 적어 그 역할이 미미하다는 것 역시 매우 심각한 현상이다.
'올, 젠더와 법 연구소'와 같은 새로운 젠더평등을 위한 개척이 시도로만 끝나선 안된다. 대법원은 최근 대학교수의 제자 성희롱 사건에서 ‘법원은 성희롱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양성평등을 실현하도록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않아야 한다’고 판시해 2차 피해 가능성을 염두에 뒀다.
국내 미투운동이 시작된 법조계에서, 그것도 남성주의적 입장을 고수했던 사법부에서 새로운 변화가 보이고 있다는 평이다. 문제 제기에 대한 법적 판단을 내리는 법원에서도 시대적 흐름에 맞는 발걸음을 맞춰나가야 한다.
최영지 사회부 기자(yj1130@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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