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영지 기자] “법관의 정의를 상징하는 저울이 기울어지면 국민의 신임을 잃어버릴 것이다.”
'응우웬 꿕 호이' 베트남 하노이시 인민법원 행정부 수석부장판사는 한국의 '사법농단 의혹 사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난 9월부터 동료법관 11명과 함께 베트남 법관 대표로 한국을 방문해 ‘베트남 관리자 과정 중기초청 연수’를 받고 있다. 베트남 법관연수단 단장 자격으로 한국에 왔다. 다소 민감할 수 있는 기자의 질문이었지만, 응우웬 수석부장은 분명하게“사법부 전체 위신을 떨어뜨릴 수 있으므로 엄정한 법적 처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응우웬 꿕 호이' 베트남 하노이시 인민법원 행정부 수석부장판사. 응우웬 수석부장은 사법연수원 초청을 받아 지난 9월부터 국내에서 연수 중인 '베트남 법관연수단' 단장 자격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 사법부의 현 상황에 대한 견해를 들어보기 위해 지난 23일 서울 서초동 소재 한식당에서 응우웬 수석부장을 만났다. 통역은 사법연수원의 도움을 받았다. 그의 시각이 주목되는 이유는, 해외 고위법관이기도 하지만 한국과 베트남간 사법부 측면의 역사적 배경 때문이다. 베트남은 다른 어떤 국가보다도 한국 사법부로부터 시스템적인 영향을 많이 받고 있는 나라다.
올해 법원 연수프로그램에 처음 참여한 응우웬 수석부장이지만, 연일 보도를 통해 쏟아져 나오는 ‘사법농단 의혹 사건’을 모를 리 없었다. 그는 “신문을 통해 봤는데 (대한민국 법관 일부가) 법원 구성원으로서 품성과 도덕성을 유지하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 국민들의 정당한 권리에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공분을 살만하다”고 말했다. 또 “(사법농단이) 대법원과 관련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더욱이 사법부 전체의 위신을 떨어뜨릴 수 있다”며 “물론 어떤 나라든 그런 일이 발생하기 마련이지만 그런 사건 일어났을 때 엄정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자에게 베트남 법복에 패용하는 저울이 그려진 배지를 보여주며, “이 저울은 법원 정의를 상징하는데 실제로도 이 저울이 기울어지면 안 된다”며 “법관이 갖고 있는 저울이 공정하지 않은 저울이라면 국민의 신임을 잃어버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응우웬 수석부장판사는 그러나 한국 사법부에 대한 변함없는 신뢰를 보냈다. 그는 “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느끼는 한국 법원 분위기는 매우 긍정적”이라며 “법원에서 일하는 분들이 전문적으로 책임감 있게 일처리를 해, 국민들이 법원에 방문했을 때 편안하고 친밀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고 평가했다.
특히, 한국 법원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으로 전자소송을 꼽으면서 상당한 호감을 보였다. 응우웬 수석부장판사는 “베트남에서는 모든 사건이 종이서류로 진행되고 있다”면서 “한국은 사법서비스 측면에서 아시아 국가 중에서도 상당히 진보돼 있어 베트남이 배워야 할 점이 많다”고 부러워했다. 또 “이번 프로그램에서 전자소송에 대해 많이 배웠는데, (베트남에 도입된다면) 국민들이 쉽고 편하게 소장을 접수 할 수 있어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라며 “(한국의)전자소송 같은 시스템은 베트남에 도입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법원이 발간한 ‘2018 사법연감’에 따르면 민사와 특허사건에서 국민들의 전자소송 접수가 크게 증가하면서 ‘소송의 경제화’가 시공간적으로 눈에 띄게 발전했다. 특허소송 1심의 경우 모두 전자소송으로 접수됐고, 전자소송으로 접수된 민사소송도 전체 접수건수 가운데 72%에 달해 성공적으로 정착했다.
응우웬 수석부장은 한국 사법부의 베트남 지원 사업에 대해서도 감사의 말을 잊지 않았다. 그는 “베트남 법원연수원 준공에 한국의 도움이 있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며 “500만 달러 상당의 큰 비용을 들여 베트남 사법체계에 지원을 많이 해줬고, 한국 법관들을 베트남으로 파견해 콘텐츠 부분에서도 많이 도와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대법원은 2008년부터 베트남 법원연수원 역량강화 사업을 시작해 베트남 최고인민법원 직속기관인 법원연수원을 2012년 준공했다.
이후 대법원은 베트남 법원과 베트남 내 전자소송 실현을 궁극적 목표로 하는 ‘사법정보화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이 사업은, 온라인에서 재판 일정이나 진행 상황, 결과 등 정보를 제공하는 대한민국 법원 홈페이지의 ‘나의 사건 검색’ 서비스를 베트남 법원에도 그대로 도입하는 것이다.
‘베트남 관리자 과정 중기초청 연수’는 매년 사법연수원 국제사법협력센터가 베트남 법관을 초청해 3개월간 진행하는 연수 프로그램 중 하나다. 사법연수원은 한국과 베트남 간 사법교류 차원에서 대법원의 지원을 받아 2013년부터 베트남 법조인들을 대상으로 연수 프로그램을 진행해오고 있다. 응우웬 수석부장 등 베트남 법관들은 오는 12월 중 연수를 마치고 출국할 예정이다.
최영지 기자 yj1130@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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