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치성 뇌전증 환자를 진료해 보면 대부분 정도차이만 있을 뿐 감정기복이 크고 짜증도 많아서 가족들을 힘들게 하는 경우가 많다. 이른바 뇌전증에 나타나는 우울증의 표현이다. 대부분 뇌전증 치료제인 항경련제를 복용하기 시작하며 만들어진 증세들이다.
환자 자신이야 자신의 감정변화를 스스로 인식하기 힘들지만 가족들은 아이의 성격이 변하였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런 우울증 증세가 심각하게 나타나는 것이 간질이라 불리는 뇌전증 증상의 일종이라고 당연시하는 것이다. 담당 신경과 의사도 뇌전증에서 만들어지는 증상인 듯 이야기를 하니 보호자들은 별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뇌전증이란 경련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성격도 변하게 만드는 무서운 병이구나’ 하고 체념한다.
뇌전증 환자에게 나타나는 우울증을 간질, 뇌전증의 합병증으로 인식하는 주장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반대 주장도 있다. 뇌전증 치료제로 복용하는 항경련제가 우울증을 심하게 만든다는 주장이다. 10여 년 전에는 소수의견이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어느 정도 공감대가 형성된 듯하다. 대부분의 항경련제에는 우울증과 자살충동 등의 부작용을 경고하는 글이 쓰여 있다.
다음은 케프라, 트리렙탈, 오르필, 데파코트 등 모든 항경련제에 적혀있는 ‘사용 중 주의사항’ 경고문의 첫 문장이다.
“자살충동과 자살행동 : 항전간제를 복용한 환자에서 자살충동 또는 자살행동을 보이는 위험성이 증가되므로 항전간제를 치료받은 환자는 자살충동 또는 자살행동, 우울증의 발현 또는 악화 및 기분과 행동의 비정상적 변화에 대하여 모니터링 되어야 한다...중략... 따라서 처방자는 항전간제 처방 시 환자의 치료기간 동안 자살충동 또는 자살행동과 치료 될 질병간의 연관성 유무 및 이 약의 유효성을 함께 고려한다.”
즉 항경련제 복용 중에 나타나는 우울증과 자살충동은 뇌전증 약 때문에 발생하는지 확인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항경련제의 도움과 부작용을 비교하여 유리한 선택을 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필자가 만난 난치성 간질 환자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울증 양상을 보인다. 어린 아이들은 부모에게 짜증과 공격성을 보이고, 청소년기나 성인기는 우울증과 더불어 자살충동을 보인다. 이런 경우 담당의사는 항경련제를 줄이거나 빼거나해 우울증의 양상변화를 관찰해야 한다. 우울증의 원인을 밝히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뇌전증 환자들에게 권고 되는 것은 정신과 치료다. 우울증은 정신과 약을 먹으면 진정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듯하다. 그래서 항경련제와 우울증 약을 같이 복용하는 환자들이 많아진다. 그야말로 병 주고 약주는 격이다. 이런 방식은 해결책이 되지 못한 채 더욱 복합적인 신경과적 부작용을 만드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울증과 자살충동은 삶의 질을 파괴시키는 무서운 질환이다. 뇌전증으로 인한 경련도 나쁘기는 하지만 일과적인 반면 우울증과 자살충동은 지속적인 경향을 보여 건강한 삶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한다. 환자들이나 보호자는 뇌전증 자체의 어려움보다 정신과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항경련제 복용 중에 이유 없이 우울증이나 짜증, 자살충동이 증가하는 경우라면 뇌전증 약의 부작용을 강력하게 의심해봐야 한다. 그리고 항경련제의 종류를 바꾸던가 아니면 항경련제의 복용 양을 줄여야 하는지를 담당의사와 의논해봐야 한다. 이때 경련조절이 어려워서 항경련제 감량이 어렵다면 한방치료는 매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항경련제를 소량 사용하거나 중지해도 경련을 조절할 수 있으면 더불어 우울장애등 신경과적 이상도 조절 가능하기 때문이다.
항경련제 복용 중 짜증증가, 신경질증가. 우울증증가 경향이 있다면 결코 가볍게 넘어가서는 안된다. 오래되면 증상은 더 격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뇌전증약 부작용인지 확인하고 대책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 김문주 아이토마토한의원 대표원장
- 연세대학교 생명공학 졸업
- 가천대학교 한의학과 졸업
- (현)한의학 발전을 위한 열린포럼 운영위원
- (현)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부원장
- (현)플로어타임센터 자문의
- (전)한의사협회 보험약무이사
- (전)한의사협회 보험위원
- (전)자연인 한의원 대표원장
- (전)토마토아동발달연구소 자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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