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진양 기자] 새해를 맞이하는 재계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다. 경기 불황에 따른 내수 부진, 미·중 무역분쟁 격화, 선진국 통화 긴축, 신흥국 금융 불안 등 대내외 경제 환경이 악화되고 있는 동시에 국회에서는 공정거래법, 상법, 근로기준법 개정안 등이 집중 발의돼 기업의 활동 영역을 제한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정부가 요구하는 투자와 고용에 적극 동참했지만 나아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볼멘 소리도 적지 않다. 대한상공회의소를 필두로 전국경제인연합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무역협회 등 4대 경제단체가 일관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점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연초부터 경제계에는 찬바람이 가득하다. 정부가 올해 경제성장률 목표치를 2.8%로 제시하며 경기 둔화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고, 한국경제연구원(2.4%)과 무디스(2.3%) 등 민간경제연구소들은 보다 보수적인 시각을 보였다. 실제 기업들의 체감 경기도 바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경연이 국내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기업경기실사지수(BSI) 1월 전망치는 92.7이었다. 문재인정부 출범 후 최저치였던 전달의 88.7보다는 다소 개선됐지만 경기 회복을 의미하는 기준선 100에는 여전히 못 미쳤다. 기업들 사이에서는 "IMF 외환위기 시절보다 더 어렵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지난 한 해 주요 그룹들은 대규모 투자와 고용 정책을 쏟아냈다.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자 하는 정부의 요청에 적극 화답한 결과다. 향후 3년간 180조원을 투자하고 4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삼성을 비롯해 현대차(5년간 23조원·4만5000명), SK(5년간 80조원·2만8000명), LG(연간 19조원·1만명), 롯데(5년간 50조원·7만명), 포스코(5년간 45조원·2만명), GS(5년간 20조원·2만1000명), 한화(5년간 22조원·3만5000명), 신세계(3년간 9조원·3만명) 등 9개 그룹은 총 448조원의 중장기 투자를 약속했다. 정부와의 관계 개선이 절실한 기업일 수록 더 많은 것을 내놓기 위해 고심을 거듭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한 해 주요 그룹들은 400조원이 넘는 대규모 투자를 약속했다. 사진은 지난 8월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찾은 김동연 경제부총리(오른쪽 두 번째)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오른쪽 첫번째)의 모습. 사진/뉴시스
이와 함께 재계는 투자 효과를 극대화 할 수 있는 경영 환경의 개선을 희망했다. 하지만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 최저임금 인상 등을 위시한 노동 정책과 기업지배구조, 신산업 등 각종 기업 규제 강화 등 기업 경영을 힘들게 하는 정책들이 도처에 가득했다. 기업들에게 경영상의 어려움을 물으면 노동정책과 규제 등은 주요 답변에서 빠지지 않았다. 재계 관계자들은 "대기업을 적폐로 바라보는 인식이 강해진 점이 무엇보다 힘들다"며 "경영 환경의 개선이 시급하다"고 토로했다.
정부가 새해에도 기존의 정책 기조를 유지하기로 한 만큼 재계의 긴장감은 크다. 2018년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통과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포함해 기업들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법안들이 줄줄이 대기 중이다. 개별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기업들이 속앓이만 하며 위기 대응에 집중하는 사이 경제단체들이 전면에 나서 재계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이들은 국회에 계류 중인 주요 법안에 대한 경영계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개진하며 "기업의 기를 살려달라"고 호소한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손경식 경총 회장 등 경제단체장들은 재계의 얼굴마담을 자처하며 정부 고위 인사들과 연달아 만나 쓴소리를 쏟아냈다. 특히 최저임금 인상과 관련해 손 회장은 기자들과 만날 때마다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현행의 방식은 불합리한 면이 있다"며 "지난 2년간 30% 가까이 올라 영세 기업 뿐 아니라 대기업들도 부담스럽다"고 수 차례 언급했다. 그는 "최저임금을 매년 올려야만 하느냐"고 반문하며 "지금까지 그래왔듯 대한상의, 중소기업중앙회 등과도 의논해 공동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해년 신년사에서도 경제단체들은 이구동성으로 규제 완화를 촉구했다. 수 년간 일관되게 규제 개선을 요구했지만 달라지지 않는 현실에 대한 불만의 어조가 강했다. 그간 상대적으로 말을 아껴왔던 허창수 전경련 회장도 "규제개혁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동시에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에도 선제적으로 나설 것임을 약속했다. 협력이익공유제와 같은 규제의 틀을 들이대기 보다는 기업들의 자발적인 상생 생태계 구축을 유도하자는 것. 김영주 한국무역협회 회장은 "글로벌 경쟁력을 보유한 대기업은 자신이 속한 영역에서 새로운 가치를 끊임없이 창출하고 이를 혁신 중소기업들과 공유해야 한다"며 "우리 경제가 건강한 체질로 거듭나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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