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현준 기자] "일은 하게 해줘야 할 것 아닙니까. 고객이 있는 IT 서비스 업종은 업무 내용이 수시로 바뀌고 기간도 정확히 산정하기 어려워요. 이런 사정을 무시하고 제도를 만드니 답답합니다."
최근 기자와 만난 한 중견 IT서비스 기업의 임원은 탄력근로제 기간에 대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현장과 맞지 않은 제도로 인해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고, 범법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연신 탄식을 쏟아냈다.
IT 서비스·소프트웨어(SW)·정보보호 업계에서 탄력근로제 기간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탄력근로제는 일정 기간 내에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조절하는 제도다. 근로시간을 일일 단위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탄력적으로 조절함으로써 현장 상황에 맞는 노동력 분산이 가능하게 한다. 현재 단위기간은 최대 3개월이다. 3개월 내에서 근로시간을 늘리고 줄이며 주당 평균 근로시간을 최대 52시간으로 맞추면 된다.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내 인터넷침해대응센터 종합상황실에서 직원들이 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IT서비스·SW·정보보호 기업들은 이 단위기간을 현실에 맞게 6개월 이상으로 늘려달라는 입장이다. 공공기관이나 금융·일반 기업을 대상으로 시스템통합(SI) 사업을 수주하는 IT서비스 기업들은 보통 3개월~2년의 프로젝트를 수행한다. SI 프로젝트는 분석·설계-구축-테스트·시스템 오픈의 과정을 거친다. 시스템 구축과 테스트·오픈 단계에서 고객사의 요구사항이 변경되거나 추가되는 경우가 잦아 업무량이 몰린다. 자연히 특정 기간에 업무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단계별 업무량의 불균형이 심하다보니 현재 탄력근로제의 단위기간 3개월로는 주당 평균 최대 52시간의 근로시간을 맞추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IT서비스 기업들이 회원사로 있는 한국IT서비스산업협회(이하 협회)는 최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찾아 탄력근로제 준수를 위한 세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협회는 △단위기간 6개월 이상으로 확대·근로일별 업무 설정 완화 △주 최대 72시간 이상 근무 가능 △근로 환경에 대한 경영자·노동조합 대표 합의시 프로젝트 팀장이 대표로 참여 등의 조건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채효근 한국IT서비스산업협회 전무는 29일 "일본 등 해외는 IT 업종은 이미 근로시간 제한의 특례 업종으로 지정됐다"며 "탄력근로제의 단위기간을 6개월 이상으로 설정해 프로젝트를 제대로 수행하며 법도 지킬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법 위반을 피하기 위한 제도 정비가 시급한 상황인데도 국회 논의가 지지부진해 IT서비스 기업들은 애간장만 태우고 있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등 노동 현안에 대해 합의를 이루기로 한 대통령 직속 자문위원회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는 민주노총의 불참으로 논의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협회는 경사노위에서 탄력근로제에 대한 의견을 내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이를 참고해 2월 임시국회에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에 대한 안건을 처리하길 희망하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탄력근로제의 단위기간을 기존 3개월에서 6개월이나 1년 등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들이 계류돼 있는 상태다.
박현준 기자 pama8@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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