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정초원 기자]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연이어 통화정책 기조를 완화하고 있어 한국은행도 갈수록 기준금리 인하 압박을 크게 받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특히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비둘기파(통화완화)적 성향으로 돌아섰다는 시각이 짙어지면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도 높아지는 분위기다.
9일 금융시장에 따르면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기준금리를 잇따라 인하하고 있다. 사진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금융통화위원회를 개회하는 모습. 사진/뉴시스
9일 <뉴스토마토>가 금융시장을 분석한 바에 따르면 지난달 뉴질랜드와 말레이시아, 필리핀, 아이슬란드, 스리랑카가 기준금리를 인하한 데 이어, 이달 4일에는 호주중앙은행(RBA)이 기준금리를 1.50%에서 1.25%로 인하했다. 호주가 기준금리를 낮춘 것은 지난 2016년 8월 이후 3년 만으로, 역대 최저치였던 금리를 이번에 추가로 내린 것이다.
시장에서는 호주중앙은행이 올 하반기에 다시 한 번 금리 인하를 단행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필립 로우 RBA 총재는 통화정책회의 이후 "노동시장의 진전 상황을 관찰하면서,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과 물가상승률 목표 달성을 위해 통화정책을 조정할 것"이라고 밝혀, 앞으로도 금리를 추가 인하할 수 있다는 신호를 내비쳤다.
유럽중앙은행(ECB)은 전날 열린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를 0%로 동결하고, 금리 인하 가능성을 시사했다. 내년 상반기까지 금리를 종전 수준으로 유지하되, 미중 무역분쟁과 같은 불확실성에 대비해 통화정책을 더 완화하는 방향도 열어 놓겠다는 것이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통화정책회의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지정학적 요인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장기화되고 있으며, 보호무역주의의 위협이 커지고 신흥시장의 취약성이 증가하고 있다"며 "향후 ECB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행동할 각오가 돼있다. 필요할 경우 금리를 인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선진국뿐만 아니라 신흥국들도 통화정책 완화에 일찌감치 동참 중이다. 지난 4월 인도와 우크라이나, 5월 말레이시아와 필리핀이 줄줄이 금리 인하에 나섰다. 특히 인도중앙은행(RBI)은 지난 6일 기준금리를 6.00%에서 5.75%로 내려, 올 들어 3차례 연속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이처럼 주요국들이 통화정책을 완화하는 것은 어두운 경기 전망 때문이다. 미중 무역협상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글로벌 경기가 둔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진 탓에, 각국이 완화적 통화 스탠스에 힘을 싣는 모습이다.
더욱이 그간 금리 인하 가능성을 부인했던 미 연준마저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은 지난 4일 미국 시카고 연방준비은행에서 회의를 갖고 "무역전쟁이 미국 경제전망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주시 중이다"라며 "경기의 확장 국면이 유지될 수 있도록 적절히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간 기준금리와 관련해 인내심을 내세우며 "어느 쪽으로든 움직일 강력한 근거가 보이지 않는다"고 일축했던 태도와는 달라진 모습이다. 존 윌리엄스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 또한 "금리를 조정해야 할 필요성이 있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에 따라 올 하반기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르면 7월에서 10월께 기준금리를 낮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이미 국고채 금리가 기준금리인 1.75%를 하회하는 상황이라, 시장의 압박을 손놓고 보기는 힘들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지난 5일 기준 국고채 장기물의 금리만 따져봐도 30년물이 1.70%로 기준금리보다 0.05%포인트 낮다. 그만큼 국내 경기 둔화를 둘러싼 우려가 크다는 뜻이다.
허태오 삼성선물 연구원은 "미 연준이 최근에 금리에 대한 스탠스를 바꾼 만큼, 우리나라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금리 인하 쪽에 무게가 실리는 것은 맞다"고 했다. 정민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도 "하반기에는 기준금리 인하 가능성이 커지지 않을까 한다"고 전망했다. 정 연구위원은 "당장 미국도 금리 인하 가능성을 두고 있고, 최근에 국내 경기가 안좋아 정부 차원의 소비진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상황"이라며 "시장의 통화 완화 압력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시장의 눈은 이달 말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 쏠리고 있다. 미중 정상이 이번 회의에서 무역갈등을 다시 봉합하는 분위기를 형성느냐에 따라 미 연준의 금리 결정도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마크 키젤 핌코 최고투자책임자는 미국 경제방송 CNBC와의 인터뷰에서 "10일 멕시코 제품에 대한 관세가 발효되고 G20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만나지 못한다면 금리가 0.5%포인트 인하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한국은행도 미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시기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허 연구원은 "그동안 한국은행의 스탠스를 보면 선제적으로 금리 조치를 하는 것보다는 대외 여건을 살펴보고 후행적으로 하는 경향이 있었다"며 "미 연준이 금리 인하를 단기간에 할지, 미중 무역분쟁 상황을 좀 더 지켜보고 할지 그 결정에 달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초원 기자 chowon616@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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