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박주용 기자] 더불어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 수장으로 양정철 원장이 부임하면서 정치권이 술렁거리고 있다. 양 원장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민주연구원을 '선거 병참기지' 역할로 규정, 자당 소속의 광역단체장을 잇달아 만나는 등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 '정당 싱크탱크의 위상 변화'를 먼저 시작한 쪽은 자유한국당 김세연 의원이다. 김 의원은 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 원장으로서 중도로의 외연 확장을 꾀하고 있다. 내년 총선은 김 의원에게 적지 않은 부담이지만, 청년과 여성 등 그동안 당의 지지기반이 취약했던 부분에 초점을 맞추며 조금씩 변화를 모색 중이다.
"작은 명함 하나에 이렇게 많은 관심을 가져주실 줄은 예상을 못했다. 그만큼 당의 변화가 그동안 부족했기 때문 아니겠나." 김세연 의원은 26일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자신의 사무실에서 '밀레니얼 핑크색'을 적용해 만든 여의도연구원의 명함이 화제가 된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김 의원은 "밀레니얼 세대와의 소통을 위해 우리당의 뜻을 어떻게 상징적으로 드러낼 것인가 고민하다가 밀레니얼 핑크색을 적용한 명함을 시험적으로 제작했다"며 "작은 명함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하기도 했고, 의아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자유한국당 김세연 의원이 2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사진 촬영에 임하고 있다. 사진/박주용 기자
"내년 총선 '밀레니얼 핑크' 충분히 사용 가능"
최근 한국당에는 '밀레니얼 핑크' 바람이 불고 있다. 한국당의 상징색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새누리당으로 당명을 바꾸던 시절 도입한 '빨간색'이다. 이 때문에 '밀레니얼 핑크' 출몰을 두고 한국당이 강경 보수의 이미지를 벗고, 젊은층과 중도보수로의 외연확장에 나선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김 의원도 이를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다른 주파수로 아무리 이야기 해봐야 듣는 입장에서 주파수가 다르면 안 들리기 때문에 (젊은층과) 주파수를 맞추는 과정에 있다고 보면 된다"고 밝혔다. 내년 총선에서 '밀레니얼 핑크' 사용 가능성에 대해서도 "현재 상징색과 비슷한 계열 색상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다양성 차원에서라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다"고 했다.
김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등 '정치적 격변기' 속에서 이뤄진 당의 극우화 현상이 아직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고 진단하고 최근 당을 건전한 중도보수정당으로 거듭나도록 하는 데 총력을 다하고 있다. 여의도연구원 명함의 변화도 이런 기조속에서 이뤄진 하나의 작은 흐름이다. 그는 이날 인터뷰에서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서는 '무당층'과 '수도권', '2030세대'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고 특히 강조했다. 그는 "지금 상황에서는 중도 유권자들과 세대적으로 20·30대, 지역적으로는 수도권 유권자들의 신뢰와 지지를 다시 이끌어내야 한다"며 "이들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세연 의원(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지난 3월 부산 해운대구 벡스코 컨벤션홀에서 열린 '자유시민정치박람회'에서 황교안 대표와 대화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젊은 세대와의 공감 능력 갖출 필요 있어"
특히 청년층의 지지기반 확대를 우선 과제로 꼽았다. 최근 20·30대 밀레니얼 세대와의 소통 강화에 역점을 두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 의원은 "한국당이 최근 정치적 격변기를 거치면서 외연이 상당히 위축된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중도층까지 지지 기반을 넓혀야 하는 과제를 현재 지도부가 안고 있다"며 "특히 세대를 뛰어넘는 감수성을 익히고 유권자들이 피부에 와닿는 정책들을 개발하는 것이 저희가 해야할 일"이라고 했다. 그는 지지율이 30%대 초반으로 고착화된 원인에 대해 "젊은 세대와의 공감 능력을 좀 더 갖춰야 할 필요가 있는데, 이런 부분이 부족했다"고 진단했다. 총선 공천과 관련해선 "훌륭한 젊은 인재들이 더 많은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장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단순히 젊은 세대와의 소통 강화 뿐 아니라 정책에서도 변화를 추구했다. 청년층이 관심을 보이고 있는 현안을 선점해 토론하고 이를 통해 정책과 입법으로 성과를 내는데 주력 중이다. 김 의원이 최근 주목하고 있는 현안은 '게임질병코드 도입' 문제다. 그는 게임 이용 장애를 질병코드로 등록하는 것에 대해 "가상공간에서의 소통과 취미로서 자리를 잡은 게임을 일방적으로 질병으로 바라보고 접근하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일"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여의도연구원 산하 차세대브랜드위원회를 통해선 당의 정체성 문제를 짚어보고 대안을 제시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김 의원은 최근 당내에서 이따금씩 논란이 되고 있는 막말 문제에 대해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그는 "기본적으로 관점을 업그레이드 할 필요가 있다"며 "열린 마음으로 선입견 없이 현재 있는 세상을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모든 사람이 해야 될 것"이라고 밝혔다. 황교안 대표의 '아들 무스펙' 발언 논란에 대해선 "좋은 취지로 말씀하려고 했는데, 전달 과정에서 오해가 빚은 측면이 있어서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시행착오가 있지만 황 대표가 진정한 소통을 하겠다는 의지가 강한 만큼 앞으로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비례대표 폐지'가 당론인 당에서 황교안 비례 출마 있을 수 없어"
당의 외연확장을 위한 바른미래당과의 통합 가능성에 대해 김 의원은 "정당의 통합이 한쪽에서만 바란다고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정치공학적으로 접근해서는 바람직하지 않다"며 "각당이 충분한 여건이 되고 자연스럽게 통합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면 그때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인위적으로 추진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당내에선 '원외 인사'인 황교안 대표의 출마 방식을 놓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앞서 김 의원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황 대표의 종로 출마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황 대표가 종로에 출마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기본적으로 비례대표 폐지를 당론으로 하는 당에서 당대표가 비례대표로 나가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당에선 전략적으로 훨씬 더 많은 경우의 수를 고려해서 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인터뷰하는 동안 '당의 체질 변화'에 대한 고민을 드러낸 그는 "당이 새로운 보수정당으로 거듭나야 할 기회를 여러번 놓쳤다"고 위기감을 드러냈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에는 반드시 한국당이 탈바꿈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는 "당 전체가 한 번에 바뀌는데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고 그만큼 어려운 일"이라며 "한국당이 보수층 뿐만 아니라 중도층 유권자까지 믿고 맡길 수 있는 정당이 될 수 있도록 거듭나는 데 여의도연구원이 선도적인 역할을 해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김세연 의원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지난달 1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공천혁신, 어떻게 할 것인가' 공동세미나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박주용 기자 rukaoa@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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