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떠난 폐허가 강소기업 새 둥지로…'전기차 메카' 도약 꿈꾼다
중소·중견 수평적 협력 추구…지역위기 극복·노사민정 화합 의의
2019-10-24 15:20:00 2019-10-25 09:43:04
[뉴스토마토 김진양 기자] 24일 상생 협약을 체결한 '전북 군산형 일자리(이하 군산형 일자리)'는 대기업이 중심이 됐던 기존의 상생형 일자리들과 달리 중견·중소·벤처기업들이 중심에 섰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는다. 특히 한국GM 등 대기업이 떠난 자리를 중소기업이 메우고, 이곳에서 새로운 산업의 기틀을 마련하겠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2단계를 거친 임금 협약 등 노사민정 대타협의 결과물이 곳곳에서 확인된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문재인 대통령이 24일 열린 전북 군산형 일자리 상생협약식에서 참석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뉴시스
 
군산형 일자리에 참여하는 곳은 크게 명신컨소시엄과 새만금컨소시엄이다. 명신컨소시엄은 엠에스오토텍의 자회사인 명신이, 새만금컨소시엄은 에디슨모터스, 대창모터스, 코스텍, MPS코리아 등이 협약의 주체로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모두 전기차 분야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는 강소기업들이다. 에디슨모터스는 국내 최초 전기버스 상용화에 성공한 기업이다. 최근에는 현대자동차와 전기시스템 공급 협력을 맺기도 했다. 대창모터스는 리튬이온 배터리팩이 탑재된 초소형 전기자동차를 만든 데 이어 자율주행차까지 개발을 하고 있으며 우정사업본부에 픽업트럭 500대를 납품하는 것도 예정돼 있다. 코스텍은 군산의 대표 자동차 부품 회사이고, 골프 카트를 주력으로 하는 MPS코리아는 일본 산요의 골프카 부문을 인수, 동남아 등지에서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명신은 GM 군산 공장 부지를 인수해 생산라인 구축 작업을 진행 중인데, 컨베이어벨트 방식의 기존 생산 라인을 유동형 셀 생산 방식으로 전환해 생산성을 높이려는 시도를 병행하고 있다. 
 
군산형 일자리에 참여하는 협약기관들. 자료/중소벤처기업부
 
중견·중소기업들이 주체가 되는 만큼 군산형 일자리는 수평적 협력 관계를 꾀한다. 부품 회사들이 완성차 업체에 부품을 납품할 때 원청의 입김을 최대한 줄여 한 곳이 아닌 여러 곳에 동시에 납품을 할 수 있도록 울타리를 넓힌 것이 대표적이다. 김근영 중진공 전북서부지부 지부장은 "군산형 일자리는 다른 어떤 지역보다도 상생이라는 가치를 놓고 고민을 많이 했다"며 "한 기업이 산업단지를 떠나더라도 나머지 기업들이 건재해 전체 산업 혹은 지역 경제에 영향을 적게 주는 구조를 만드는 것에 주안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군산형 일자리는 현재 심의가 진행 중인 전북도의 규제자유특구 신청 결과에 따라 기대 이상의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도 보인다. 전북은 현재 LNG 상용차 주행 실증, 이동식 LNG 충전사업 실증 등을 골자로하는 '친환경 자동차' 규제자유특구 계획을 제출한 상태다. 군산 등지에 자동차융합기술원 등 연구기관과 새만금 주행시험장, 전기자율차 테스트베드 등 전기차 관련 기반시설이 집적돼 있던 것과 연계해 전세계적인 '전기차 메카'로 키워낼 수 있는 여건이 풍부하다. 40㎞에 이르는 새만금 방파제는 자율주행 군집주행 도로로도 활용할 수 있다. 배지철 중기부 지역기업정책관은 "규제자유특구 사업으로 최종 선정이 되면 규제 특례 적용과 함께 사업자에 대한 R&D 자금 지원 등을 받을 수 있다"며 "특구 사업자들에게 가는 혜택이 풍성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4일 열린 전북 군산형 일자리 상생협약식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임금 책정에서도 다수가 만족할 만한 결과를 이끌어냈다는 평가다. 군산형 일자리의 임금은 2단계로 결정이 된다. 우선 협약 체결 당사기업 5개사로 구성된 상생협의회를 개최해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이에 근거해 개별 기업이 교섭을 한다. 가이드라인은 종업원 규모별로 고시된 전북도 평균 임금을 기준으로 하며, 기업의 영업 성과등에 따라 최종 금액이 정해진다. 협의 결과 평균 임금 수준에 못 미치는 경우에는 지자체의 복지 기금 등에서 지원을 한다. 이 외에 '근로시간 계좌제' 등 비금전적 보상도 계획하고 있다. 이 같은 대타협의 배경에는 생존의 기로에 선 전북·군산의 지역 경제 현황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이다. 배 정책관은 "보통은 노사간 합의가 어려운데 군산은 열악함과 절박함이 되레 장점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한편 이번 협약을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중소벤처기업부(중기부)와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중진공)의 역할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상생모델 발굴부터 자금지원까지 중기부가 주도를 하며 연결자로서 측면 지원을 아끼지 않은 것. 특히 중진공은 지난 1990년대 옛 대우자동차가 부평에서 군산으로 공장을 이전하려 할 때 30여개 협력 업체들을 협동화 사업으로 군산에 자리를 잡게 하며, 이 지역을 자동차 부품 산업의 중심지로 발전시킨 인연이 있다. 김 지부장은 "전기차는 기존 완성차와 달리 중소기업도 만들 수 있는 다양한 모델이 있고, 수요 자체도 대량생산보다는 니치를 찾는 것"이라며 "중기부와 중진공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서 이번 협약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고 자평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24일 열린 전북 군산형 일자리 상생협약식에 참석해 박수를 치고 있다. (왼쪽부터) 강임준 군산시장, 송하진 전북도지사, 문 대통령, 이태규 명신 대표, 강영권 에디슨모터즈 회장,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사진/뉴시스
 
중기부는 앞으로도 군산형 일자리가 제대로 뿌리내릴 수 있도록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겠단 방침이다. 혁신 중소·중견기업이 보유한 기술적 평가를 기반으로 필요한 경우 협동화자금 범위 내에서 제한적으로 자금 지원을 할 계획이다. 보증이나 R&D 자금도 추후 검토할 예정이다. 중기부 내의 사업전환자금을 활용해 군산 지역에 뿌리를 둔 내연기관 부품업체들을 전기차 부품사로 전환시키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또한 전북지방중기청과 중진공 전북서부지부 등 상주 기관이 중심이 돼 협약안의 구체화에 주력할 방침이다. 협약안의 세부 내용에 따라 해외 지분 참여 가능 여부, 대기업으로의 투자 확장 가능성 등이 윤곽을 드러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더 나아가 국회에 계류 중인 '국가 균형 발전 특별법'이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를 통과하면 중앙 정부 차원의 지원도 기대할 수 있다. 배 정책관은 "법적 근거가 마련되면 비수도권 지자체에서 정부에 상생일자리 인정 신청을 할 수 있다"며 "그렇게 된다면 중기부를 포함한 여러 부처들이 다양한 지원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진양 기자 jinyangkim@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신형 정치정책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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