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종연 기자] 대전지역 문화계의 성토가 쏟아졌다. 악기 제작자, 연극배우, 공연 기획자, 관객과 공연자의 사이에 서 있는 이가 한데 모인 자리에서였다. 이들은 지금까지 지역 예술계가 전보다 나아졌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문화가 지닌 다양성처럼, 이들이 바라보고 겪는 거의 대부분의 자리에서 여러 문제가 제기됐다.
대전문화재단이 주최하고 대전문화정책포럼(대표 이희성)이 주관하며, 대전시가 후원한 '문화프로젝트 문화정거장 제3차 토론회'가 지난 27일 오후 6시 만년동에서 열렸다. '문화생산자와 문화소비자, 그 경계선에서'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토론회는 생업에 종사하는 문화예술인들과 그들을 지켜보는 이의 시선이 밖으로 표출됐다.
28일 문화프로젝트 문화정거장 3차토론회 장면. 사진/뉴스토마토
주제발표에 나선 한남대학교 허윤기 겸임교수는 지역에서 만들어졌던 연극과 뮤지컬을 설명하면서 "대전이 노잼(No재미)도시라고 하는데, 사실 대전에는 많은 공연이 있고, 실력도 높다. 대전 연극 '경로당 폰팅사건'은 대학로로 진출하기도 했다"며 "메르스로 인해 다른 공연들은 대부분 간판을 내리는 상황에서도 ‘삽질’이라는 나무시어터 연극협동조합의 연극은 많은 관람객들이 마스크를 하고 5회 공연 내내 자리를 차지하기도 했었다. 이런 이유는 문화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유대관계라는 협동조합이 있었고, 그 연결고리로 인해 지속됐었던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지역의 한 공연기획자가 가진 노력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아신극장 이인복 대표는 대전에서 대학로를 꿈꿨다. 처음에는 지역 내 순수연극인들로부터 상업연극, 서울공연, 서울배우가 내려왔다는 이유로 좋지 못한 평가를 받았다"면서도 "2017년 대전의 유명 제과점인 성심당 이영진 대표와 함께 체험 뮤지컬인 '베이킹'을 기획해 무대에 올렸다. 공연 전 빵 만들기 체험을 하고 오븐에 넣은 뒤, 공연 후 자신의 빵을 찾아가는 것까지 이어져 아동들과 가족단위까지 많은 이들이 이 공연을 봤었다"고 전했다. 이어 "윤상호 감독이 만든 뮤지컬 '나비'는 학생들을 모집해 매년 치르는데 7회까지 이어지고 있다. 뮤지컬에 참가한 이들은 문화소비자에서 문화생산자가 됐고, 다시 열성적인 문화소비자이며, 생산자의 꿈을 꾸게 됐다"며 긍정적인 문화 확산 사례를 소개하기도 했다.
허윤기 교수가 토론 중 발언하는 장면. 사진/뉴스토마토
하루를 버텨야 되는 생계 문제 해결도 연극인들에게는 절실했다. 그들의 생계가 절실한 이유는 자신들이 해오던 일을 꾸준히 하는데 필요했기 때문이다. 연속된 악순환 속에서도 절실함을 놓지 못하고 있다. 이어진 토론회에서 패널들은 앞선 사례들이 겪었을 법한 여러 그늘을 자신이 처하고 바라봤던 입장에서 토로했다. 배재대학교 교수합창단 지휘자이자 한남대에서 융합디자인을 가르치고 있는 이민호 교수는 "대전 사람들이 낸 세금을 어딘가에서 많이 가져간다. 공연을 주최한, 공연을 이끌어갔던 곳에서 대전의 세금을 가져갔다"며 기획자들의 '폭식'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대전의 연극인들은 아르바이트로 하루 1~2만원을 벌며 생계를 유지한 채 극단에서 연습을 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그들이 왜 배고파야 하느냐"고 빗댔다.
개런티 문제도 지역 문화예술인들에게는 당장의 역차별로 다가왔다. 서울에서 오는 연주자나 연극인들의 개런티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이들보다 많았다. 교통비, 숙박비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지역 문화인들은 '소홀'한 대접에 실망한 눈치였다. 이 교수는 "대전예술의전당에서 하는 공연을 보면 서울에서 오는 공연자들이 많은 돈을 가져가게 된다. 대전의 음악가들은 몇 십만 원의 게런티를 받고도 감동을 하는 현실이다. 정부부처에서 이런 격차를 얼마나 없애줄 것인지, 문화소비자와 함께 이런 것들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윤기 교수는 "서울에서 기획한 공연은 재정지원 자체가 달랐다. 시민의 세금들이 이렇게 쓰인다"며 "대전에서 오페라 할 때 주연을 봤더니. 대전 예술인들 참여하는 것을 보면,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질문 있다. 어찌 보면 외부에서 데려와서 더 많은 대우를 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저변에 있었다. 대전 배우들과 같은 금액을 줘도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역차별'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대전 예산으로 대전을 위한 공연이 아니라, 서울을 위한 공연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전시가 투입하는 예산의 배정도 이들에게 온전히 돌아가진 못했다. 대부분 시설 운영비였다. 대전문화예술의전당, 연정국악원운영비 등 시설관리나 위탁비에 대부분이 소모된다. 대전시는 올해부터 2021년까지 '대전방문의 해'를 운영 중이다.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관광명소나 축제 등은 소개하고 있지만, 정작 시민에게 다가갈 문화콘텐츠를 구축하지는 못해 소개는 거의 없다. 심지어 으능정이거리에서 열렸던 '토토즐페스티벌' 같은 특정 기획사들의 배만 불리는 행사조차 제대로 홍보되지 않고 있다.
문화정거장 3차 토론회 참석자들. 사진/뉴스토마토
극단 나무시어터 사회적협동조합 이은영 배우는 "저희 배우들끼리 약속을 했었다. 1년에 1000만원을 넘게 버는 사람을 1위로 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실제로 연봉이 1000만원이 조금 넘은 사람은 단 한 명 밖에 없었다"며 "늘 있는 일이기 때문에(실망하지는 않는다), 다른 수입원을 찾지 않으면 돈을 벌고 산다는 것은 상상도 못한다"고 했다. 절박하지 않은 듯 한 '간절함'처럼 들렸다.
이어 "'대전 중구에 (연극)공연장이 몇 개나 있는 줄 아느냐'는 질문을 하면 사람들은 보통 평송청소년수련원이나 대전예술의전당 정도로만 대답한다. 그런데 대전 중구처럼 공연장이 밀집해 있는 사례도 굉장히 적다"고 강조했다. 또 "'연극을 본 적이 있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봤다. 서울 대학로에서'라는 대답이 돌아온다"며 "문화재단 등에서 많은 지원을 받는다. 그런데 단발성이다. 장기적인 계획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악기제작자이자 공연기획자인 비노클래식 구자홍 대표는 "누구보다도 예술인들과 호흡하고, 후배들이 어떤 처지에 놓여 있는지 공감하고 있고, 그 처지에 놓여 있던 사람 중 하나"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실용음악이나 클래식 종사자들은 생존경쟁의 경계선에 있다. 비노클래식에 몸을 담았던 사람들을 보면, 누군가 봐주는 사람이 없어도 최선을 다해온 사람들이었지만, 본인의 열정을 접어야 되는 냉혹한 현실이었다. 누군가는 열어줘야 된다, 우리는 그 부분에 침묵했었다. 착각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수도권은 테크니컬 한 인재 자원능력이 훨씬 풍부하다. 하지만 대전도 자원능력이 있다. 음대에서 1년에 몇 백 명씩 배출된다. 하지만, 예술 활동을 할 수 있는 선택의 폭은 적다. 먹고사는 문제에 초점을 맞출 것인지, 일자리에 초점을 맞출 것인지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전만의 색을 가지고 융합해 바꿀 수 있는 무언가를 찾지 않으면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다. 구자홍의 악기는 ‘메이드 인 대전’이라고 표기한다. 색을 꼭 찾아야 한다. 그게 핵심”이라고 자신의 예로 대전만의 특징을 만들어내야 함을 호소했다.
또, 여러 정부지원이나 보조사업에 예술인들의 접근성이 떨어지는 현실도 과제로 거론됐다. 바로 '페이퍼'로 불리는 제안서 때문이다. 구자홍 대표는 "연극이나 국악도 마찬가지고 기획해서 받는 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경력과 제안서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기획자들의 페이퍼는 대부분 책 한권 수준"이라고 말을 꺼냈다. 이민호 교수도 "정부 출연기관이 굉장히 많다. 문화예술과 어떻게 연결시키고 활용할 것인지 문제다. 예술인들은 문서 쓰는 능력이 부족하다. 문서는 공부한 사람들이 쓴다. 그런 사람들이 지원금을 받게 된다"고 덧붙였다.
왼쪽부터 박범계 국회의원과 송행수 중구지역위원장. 사진/뉴스토마토
이날 토론회에 참석했던 정치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더불어민주당 송행수 중구지역위원장은 "문화가 융성하지 못하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따로 노는 부분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아비뇽을 갔을 때 도시 전체가 미친 것처럼 보였다. 늘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는 문화가 될 수 있도록 서 있는 위치에서 노력하겠다"고 했다.
박범계 의원(서구을,민주당)은 행사 초반에 참석해 "대전 국제전시컨벤션 센터가 들어서며 환경 변화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무엇을 가지고 (방문객들을)잡아놓을 것인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면서 "제가 계획하고 있는 센트럴파크와 중구를 중심으로 하는 전통의 문화 인프라를 잘 조화를 이뤄야 된다. 그런데 그것에 대한 마스터플랜이 없는 것 같다. 대중과 함께 즐기는 문화가 되도록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이날 정책토론회를 진행한 대전문화정책포럼 대표 이희성 단국대 교수는 "오늘 나온 의견들을 토대로 현실가능하고 지속가능한 정책을 발굴 또는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왼쪽부터 구자홍 대표, 이민호 교수, 허윤기 교수, 이은영 배우. 사진/뉴스토마토
대전=김종연 기자 kimstomat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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