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위안부 피해사 바로 쓰기
2020-06-11 06:00:00 2020-06-11 06:00:00
전재경 사회자본연구원장
정의기억연대(구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기부금 회계에 관하여 세간에 말들이 많다. 검찰 수사가 진행 중임에도 각자 이 문제와 윤미향 의원의 처신에 나름대로 예단을 가진다. 심지어 소녀상을 훼손하는 사태도 빚어진다. 급기야 대통령까지 위안부 문제와 기부금의 투명성을 거론하였다. 위안부 비극의 본질보다 기부금을 둘러싼 논쟁이 부각되어 유감스럽다. 차제에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관한 역사적 성찰에 이바지하고자 한다.
 
국내에서 출간된 '제국의 위안부-식민지 지배와 기억의 투쟁'(2013)은 위안부의 자발성을 주장하여 파문을 일으켰다. 자발성론은 위안부 사업자들이 일제 말년에 경성신문(1944.7.26.)과 매일신보(1944.10.27.)에 낸 광고에 근거하는 것으로 보인다. 경성신문 광고는 "근무지가 후방부대이며 월수 300엔(당시 제국대학 졸업자 월급의 4배) 이상을 올릴 수 있고 3000엔까지 가불이 가능하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 광고들은 위안부를 합법적이라고 주장하는 일본 지식인이나 단체들이 즐겨 인용하는 자료이다.
 
역사적·법률적 안목이 다르면 사료 선택을 그르치기 쉽다. 이 광고를 사료로 쓰려면 세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첫째, 일제 말 한국의 미혼여성들이 일간지 광고에 쉽게 접할 수 있었어야 한다. 둘째, 계약 당사자(청약인 사업자 갑과 승락인 위안부 을)가 대등한 교섭력을 가지고 있었어야 한다. 셋째, 위안부 계약이 정상적으로 이행되었어야 한다.
 
하지만 식민통치기 일제의 행태나 태평양 전쟁 말년 일본군의 형편으로 미루어, 이 세 가지 전제는 거의 충족되기 어렵다. 평시에도 힘없는 을들은 악덕 사업주에게 돈을 뜯기는데 전시에 정상적인 거래들이 과연 얼마나 있었겠는가. 위안부 알선사업자들의 광고는 견본에 불과하였다.
 
어려서 들은 집안 어른들의 옛날 말씀에 따르면, 원산 등지에서 어떤 위안부 사업자들은 양두구육(羊頭狗肉)처럼 근로정신대를 모집하고 위안부로 끌고 가거나, 일제 순사와 함께 마을마다 여성들을 색출하러 다니기도 했다. "정신대에 갔다 왔다"면 위안부로 오해받을까 봐, 아예 말을 꺼내지 못한 분들도 있었다.
 
전시 일용 노동자를 관리하는 야마구치현 노무보국회 시모노세키 지부에서 동원 부장을 맡았던 요시다 세이지(1913~2000)씨는 1983년에 펴낸 자신의 책 '나의 전쟁 범죄'에서 자신의 체험으로 "제주도에서 전쟁 중 약 200명의 젊은 여성을 잡아냈다"고 썼다. 용기 있는 고백이다.
 
아사히신문은 당시 그를 인터뷰한 기사를 냈다. 언론 본연의 자세였다. 하지만 30년 후 문제가 커지자, 아사히는 "언론인, 역사가, 한국 연구자를 제주에 보내 보강 조사를 벌였지만 어느 누구도 아무런 증거·증언도 얻지 못했다"며 옛날 보도를 취소한다고 밝혔다. 역사를 새로 쓰고 싶었을까? 일본 산케이신문사 출판부는 2017년에 요시다씨 장남(大高未貴)의 독백(?)을 담은 ‘부친의 사죄비를 철거합니다’라는 책을 펴내 요시다씨의 증언을 부정하였다.
 
제주에서 75년 전에 벌어진 위안부 피해자 역사를 누가 어떻게 증언하겠는가. 요시다씨를 기억하는 주민이 아직 생존한다고 하더라도 잠시 다녀간 조사자들이 그들을 만나기란 불가능하다. 역사가 크로체의 말처럼 시대가 바뀌면 역사를 새로 쓸 수 있겠으나, 아사히와 산케이는 역사를 새로 쓰기보다 왜곡시킨다. 작금 일부 일간지들은 비판론자들의 글(페이스북)을 전재하거나 인터뷰하여 정신대와 위안부 피해자 운동단체 또는 여성단체들을 공박한다. 대체 어디를 향하여 돌을 던지는가?
 
이용수 할머니는 지난달 25일 대구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정신대와 위안부가 다름에도 흔히 같은 것으로 혼동한다"고 비판하였다. 말씀처럼 정신대는 여자정신근로령(1944.8.23.)에 근거한다. 그럼에도 일반인들은 거의 구분하지 못한다. 정신대와 위안부가 다르다면, 정의기억연대는 강령상 위안부 문제에만 전념할 수 없음에도 정신대를 표방하면서 위안부 피해자들의 우산 아래 모금하였고, 그 일부를 정신대 문제에도 지출했다는 가정이 성립한다. 명분과 실질이 갈린 셈이다.
 
아직 단정할 수 없는 정의기억연대와 윤미향 의원 측의 회계 오류는 차치하고, 이용수 할머니와 윤 의원의 불화 그리고 이를 틈탄 정치권의 아전인수식 공방은 이 땅의 페미니즘과 여성운동에 찬물을 끼얹는다. "넘어진 김에 쉬어 간다..." 위안부를 합법화시키기에 몰두하는 집단들의 노력에 비하여 그 반대측의 역사적 성찰이 아쉽다. 위안부 피해를 둘러싼 운동을 넘어 '역사 바로쓰기'에 충실할 때이다.
 
전재경 사회자본연구원장(doctorchun@naver.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최병호 공동체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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