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서윤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경제정책 실패를 사실상 자인하고 내년 8차 당대회를 기점으로 변화를 시사해 북한의 개혁개방 속도에 관심이 쏠린다. 전문가들은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당면한 코로나19 사태 진정과 주변국의 여건 조성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종전선언을 포함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진전을 통해 북을 개혁개방으로 이끄는 정부 역할이 필요하다는 조언이다.
12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인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 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통일부 국정감사에 출석해 북한의 내년 경제정책 수정 방향과 관련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질의에 "북이 상업화 단계 초기를 넘어 중기 수준으로 진입하려면 최소한 공업화 과정이 초기 단계라도 시작할 필요성이 있기 때문에 경제적인 내부 요구로 일정한 변화의 시점이 내년 상반기 도래한다고 분석하고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 장관은 개혁개방 효과를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에 대해서는 "(북이) 상대적으로 북미·남북관계를 개선하는 결단을 이루고 나오는 점을 볼 때 한국과의 코로나 방역 협력이라든가 중국의 안정 등을 감안하면 동북아에서의 경제협력이 전혀 불가능한 건 아니라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북한은 지난 8월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경제정책 실패를 인정한 이래 재차 변화를 시사해오고 있다. 노동신문에 따르면 당시 회의에서 북은 "7차 당 대회 결정 관철을 위한 사업에서 나타난 편향과 결함들을 전면적으로, 입체적으로, 해부학적으로 분석·총화하고 당과 정부 앞에 나선 새로운 투쟁 단계의 전략적 과업을 토의·결정할 것"이라면서 "당 중앙위원회 사업을 총화하고 다음해 사업 방향을 포함하는 새로운 국가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지난 10일 당 창건 75주년 열병식 연설에서도 "혹독한 고난 속에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있다"며 "8차 당대회에서 실현을 위한 방략과 구체적 목표를 제시해 인민의 행복을 마련하는 새로운 단계로 가겠다"고 말했다. 8차 당 대회 시점과 관련해서는 지난 5일 정치국회의에서 "80여일 남아있다"고 강조한 바 있어 내년 1월 초가 유력한 상황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10일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조선노동당 창건 75주년 경축 열병식'에 참석, "8차 당대회에서 구체적 목표를 제시해 인민의 행복을 마련하는 새로운 단계로 가겠다"고 말했다. 노동신문 보도. 사진/뉴시스
전문가들도 북이 경제정책 수정 과정에서 개혁개방을 강화할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봤다. 김용현 동국대 북한학연구소 소장은 <뉴스토마토>와 통화에서 "미국 대선 결과가 나오게 되면 북미관계도 새 판을 짜야 하고 북한이 지금 코로나와 대북제재, 수해 등 '3중고'를 돌파해야 하는 상황에서 지금 상태로 계속 가기는 어렵다고 볼 것"이라며 "북 당국이 좀더 적극적인 (개방) 의지를 보일 가능성은 있다"고 전망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도 "김 위원장이 정상국가를 지향한다고 계기가 있을 때마다 밝혔고 남북·북미관계가 어느 정도 진전됐을 때 6·28조치(협동농장과 공장 등에서 성과에 따라 생산물을 분배한다는 방침)나 5·30조치(소규모 기업소의 경영자율권 강화), 경제특구 등을 추진했다"며 "남북 간 4·27, 9·19 회담에서의 동·서해 벨트 합의 등을 볼 때 북이 개혁개방에 무게를 둘 수 있다는 추론은 가능하다"고 봤다.
다만 대내외적 변수가 있다. 양 교수는 "내년도 당대회에서 전략노선을 결정할 때까지 코로나가 상당히 진정돼야 한다"고 짚었다. 그는 또 "남북·북미관계가 진전된다는 보장, 다시 말해 생존권 보장이 가능해야 한다"면서 "북이 개혁개방에 나설 수 있도록 미국과 한국, 중국 등 주변국가들이 환경 여건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한 대목"이라고 강조했다.
종전선언을 포함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지속 추진 동력을 확보하고, 미국도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하든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든 북미 정상 간 선언이 이행되도록 한국이 중재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중국이 한반도 정책에 대해 대외원칙상 '내정불간섭' 원칙을 고수하는 상황에서 종전선언은 사실상 남북미간 정치적 선언의 성격이 크다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와 관련 이수혁 주미대사는 이날 화상으로 열린 외통위 국감에서 "미 고위 관리를 접촉한 결과 북한만 동의한다면 미국은 아무런 이견이 없다고 했다"며 '비핵화를 위한' 종전선언에 대해 미국 정부도 공감하고 있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최서윤 기자 sabiduria@etomat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