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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자본의 욕망 앞에 선 기본소득
입력 : 2021-05-10 오전 6:00:00
전재경 사회자본연구원장
국제사회가 막연하게 합의한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의 이면에는, 동의하기 어렵겠지만, 생태경제학자들의 상상을 뛰어넘어, 자본주의 체제를 지속시키려는 의도가 담겨있다. 자본주의의 동력은 잉여가치를 무한 확장하려는 시장의 욕망이다. 시장은 더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기 위하여 갈수록 더 많은 자본과 노동을 갈구한다. 가속도의 법칙이 적용되는 시장에서 소비인구와 생산인력의 부족은 자본주의의 덫이다.
 
자본의 확장과 더불어 조선족들과 제3세계인들이 한국에 대거 진출하여 부족한 인력을 충당하였다. 내륙의 농촌마을에서 또 머나먼 섬에서 동남아시아인들이 온실에서, 배에서 또 선창에서 열심히 일한다. 한국인들의 3D 업종 기피와 ‘코리안 드림’이 서로 맞아떨어졌고 인격과 유리된 자본의 욕구가 외국인 유입을 부채질하였다. 돌이켜보면 자본주의는 부족한 인력을 메우느라 자연인 외에 동업조합이나 회사와 같은 법인을 만들었고 이것으로 부족하여 드디어 세 번째 사람, 즉 전자인(電子人, AI)을 창안해 냈다.
 
자본의 이러한 흐름이 진화인지 발전인지는 확신하기 어려우나 자본의 전진은 우리가 딛고 있는 경제와 사회 기반을 근본적으로 흔들어 놓는다. 종래 주식, 채권, 외환과 이를 기반으로 출현한 선물은 자본주의 3.0의 꽃이었지만, 중앙은행의 통제를 갑갑하게 여긴 자본주의 첨병들은 드디어 가상화폐(암호화폐)를 만들었다. 가상화폐는 외환처럼 거래수단(화폐)이 투자대상(객체)으로 되었다. 화폐부족은 시장의 외연을 속박하는데 가상화폐는 이 한계를 돌파하였다. 하지만 가치가 급변하는 가상화폐는 가치 척도가 될 수 없어 거래나 투자의 수단이 될 수 있을지언정 화폐가 될 수는 없다.
 
가상화폐로 돈을 버는 방법에는 네트워크 채굴과 거래소를 통한 투자가 있다. 가상화폐는 이를 통제하는 중앙은행이 없어 거래내역(데이터)을 기록한 원장을 분산된 네트워크(블록체인)에 저장한다. 어떤 채굴자가 블록을 처음 구성하고 작업증명을 마치면 그에게 일정량의 가상화폐가 보상으로 주어진다. 채굴 기술자가 될 수 없는 사람은 가상화폐거래소를 통하여 코인과 현금을 교환할 수 있다. 구입한 코인 값이 오르면 돈을 벌고 내리면 돈을 잃는다. 하지만 코인 가격은 급변하기 때문에 주식처럼 묻어두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자본은 AI를 시켜 실물이 없는 가상의 경제를 굴린다. 이 정도면 자본주의는 가히 마법이다. 부동산 거품은 이러한 마법의 경제를 부추긴다. 강남의 어떤 청년은 재개발 아파트를 더 높이 지을 수 있어 집값이 올랐다고 좋아한다. 그러나 모든 부동산 값이 올라도 국내총생산(GDP)이 덩달아 늘어나지 아니한다. 부동산이나 주식·가상화폐 거래로 얻는 시세차익은 개인소득을 늘리지만 재화나 서비스를 새롭게 창출하지 아니하므로 국민계정상 생산활동으로 간주되지 아니한다. 마법세계에서 경제주체들은 실물경제의 규모를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잉여가치의 왜곡과 불균형이 심화된다. 변방의 EU 국가들이 유러화의 가치체계 속에 실물경제 감각이 무디어진 것과 같다. 허상을 즐기던 사람들은 마술이 끝났을 때 벼랑에 서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역동적인 시장경제와 마법의 자본주의에 적응하지 못하는 계층들에게 기본소득제가 점차 관심을 끈다. 각종 사회보장 정책을 모두 기본소득으로 통합하여 사회구성원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지급하는 체계에서는 누구나 그 돈만으로 살만하면 일할 필요가 없고 부족하면 생산활동으로 다시 나오면 된다. 기본소득은 자본주의 체제가 간과하는 사회안전망으로 작동할 수도 있으며 어느 일면 공동체경제에 적합하다. 공동체경제는 자본주의와 결별하더라도 어느 정도 유지될 수 있겠지만 북한의 경험으로 미루어 시장과 담을 쌓는 폐쇄경제는 ‘성장의 한계’에 직면하고 지속가능성이 없다.
 
가상화폐에 몰두하고 부동산 값이 기하급수적으로 뛰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계속 자본주의 마법 속에 살아갈 것이다. 기본소득은 시장의 마법과 탐욕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유용할 것이다. 그러나 기본소득이 통용될 수 있는 공동체 기반이 취약하고 시장경제를 건전하게 굴릴 수 있다는 실증이 없는 상황이라면 기본소득 주창자들은 시장경제와 공동체경제의 분업과 협업에 유념하여야 할 것이다. 공동체정신이 수반하지 아니하는 기본소득 체계가 허상의 시장경제에서 통용될 수 있을 것인가 또 새로운 재화나 서비스를 얼마나 창출할 것인가에 관하여서는 실증이나 시뮬레이션이 필요하다.
 
이 시대의 많은 청년들은 대부분 가파른 집값에 좌절하고 분노하면서 결혼과 육아의 부담 때문에 결혼도 포기하지만, 소설이나 시나리오보다 만화(웹툰)를 대본으로 쓰는 드라마나 영화를 선호하며, 주식과 선물거래에 뛰어들고 AI를 동원하여 가상화폐 블록체인을 채굴하거나 투자한다. 점차 가상세계에 편입된다. 하지만 허상 속의 거품경제는 실물경제를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기본소득의 효과를 상쇄할 수도 있다. 기성세대가 자본의 욕망 앞에 허상과 거품을 방치한다면, 미래세대들은 어느 날 갑자기 좌절하거나 분노할 것이다.
 
전재경 사회자본연구원장(doctorchun@naver.com)
안창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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